"안쓰러워 데려오다 보니"… 개 88마리까지 키우게 된 노부부

입력
2022.08.04 11:00
수정
2022.08.0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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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간 개들 데려 키우다 개체 수 늘어
비쩍 마른 채 치료 시급한 88마리
동물자유연대, "3차 걸쳐 구조, 입양 보낼 것"


"눈도 안 보이고 아픈 애들이 먼저 (보호소로) 갔어… 잘 좀 부탁해요."

충남 아산시 주민 A(70)씨

충남 아산시 한 주택에서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채 길러지던 개들이 사람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충남 아산시 한 주택에서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채 길러지던 개들이 사람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지난달 21일 오후 충남 아산시 순천향로 한적한 주택가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 주택에서 길러지던 개 88마리를 구조하면서다. 동물보호단체 활동가, 아산시 관계자 등 10여 명이 현장을 분주히 움직였다.

개들은 덩치에 따라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개들은 사람이 다가가자 짖으면서도 꼬리를 흔들며 반겼다. 노부부(A씨 부부)가 쓰는 방에서는 2, 3㎏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작고 마른 개들이 눈망울을 반짝였다. 애니멀 호더(동물을 모으는 데 집착하나 무관심하여 방치하는 사람)의 집이라고 하기엔 정돈된 편이었지만, 개들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잘 먹지 못해 비쩍 말랐고,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아 임신한 개들도 여럿이었다.

88마리까지 불어나게 된 사연은

충남 아산시 한 주택가에서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한 채 길러지던 개들을 동물자유연대가 3차례에 걸쳐 구조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충남 아산시 한 주택가에서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한 채 길러지던 개들을 동물자유연대가 3차례에 걸쳐 구조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A씨 부부로부터 들은 사연은 이렇다. 부부는 20여 년 전 충남 아산시 송악면 강당골 계곡 부근에 살면서 등산로에 버려진 개들을 하나둘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거나 피부병이 심한 개들이었다. 하지만 사료만 챙겨줄 뿐 중성화 수술의 중요성은 간과됐고, 개체 수는 늘어만 갔다. 부부는 개들을 돌보기 위해 마당이 있는 주택(거주 중)으로 이사 왔다.

A씨는 "키우는 개들끼리 번식해 늘기도 했지만 개를 많이 키우는 게 알려지면서 집 앞에 개를 놓고 가는 사람도 많았다"며 "사료비 때문에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아내가 식당에서 일하며 사룟값에 보탰다. 우리는 얘네(개)들을 위해 살았다"며 "이제 아프면 애들을 누가 돌보나 하는 생각에 (소유권 포기를)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지역 주민이 우연히 발견해 도움 요청

이나혜 동물자유연대(동자연) 활동가가 임신한 개를 안고 있다. 활동가들은 개에게 아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고은경 기자

이나혜 동물자유연대(동자연) 활동가가 임신한 개를 안고 있다. 활동가들은 개에게 아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고은경 기자

동물자유연대(동자연)가 개들 구조에 나설 수 있게 된 건 6월 초. 해당 지역을 지나던 주민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면서다. 주민은 우연히 개 짖는 소리를 듣고 A씨 집을 방문해 현장을 확인한 후 동자연에 도움을 요청했다. 송지성 동자연 위기동물대응팀장은 "보통 현장 조사를 한 다음 구조 방법을 결정하고 구조를 시도한다"며 "이번 경우는 할아버지가 개들이 동요할 가능성을 우려해 현장 조사 없이 구조를 하길 원해 곧바로 1차 구조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개의 부러진 다리에 테이프가 감겨져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개의 부러진 다리에 테이프가 감겨져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1차 구조는 앞서 지난달 12일에 이뤄졌다. 부러진 다리에 테이프를 감아 놓은 개, 심한 피부병에 시달리거나 임신한 개, 눈 한쪽을 아예 뜨지 못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심각한 23마리가 구조 대상이었다. 2차 구조가 이뤄진 지난달 21일에는 치료가 시급한 개뿐 아니라 입양을 빨리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개들까지 포함한 41마리를 보호소로 옮겼다. 이나혜 동자연 활동가는 "보호소 수용 능력이 한계가 있어 먼저 구조한 개들을 입양 보낸 다음 순차적으로 나머지 24마리를 데려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 순한 성격에 겁 많아… 무리 없이 구조

창고에 있던 개들은 구조 당시 겁을 먹어 이리저리 피해 다녀 활동가들의 애를 태웠다. 고은경 기자

창고에 있던 개들은 구조 당시 겁을 먹어 이리저리 피해 다녀 활동가들의 애를 태웠다. 고은경 기자

방에서 기르던 2, 3㎏ 작은 덩치의 개들은 처음 본 사람의 손길을 갈구할 정도여서 구조에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창고에 따로 키우던 10㎏ 안팎의 개들은 겁이 많아 사람을 피해 다녀 활동가들의 애를 태웠지만 큰 저항 없이 모두 구조에 성공했다.

활동가들이 구조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다른 데 있었다. 노부부가 함께 사는 공간이다 보니 오히려 구조과정에서 환경을 더럽히거나 손상시키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더욱이 동물을 나름의 방식으로 아꼈던 A씨 부부를 설득하는 과정도 힘들었다. 실제 A씨는 1차 구조 이후 공황장애가 와 사흘간 입원하기도 했다.

창고에 지내던 개들도 구조돼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창고에 지내던 개들도 구조돼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송지성 팀장은 "구조하는 동안 할아버지가 '얘는 두고 가면 안 되겠느냐'고 애정을 보였고, 그 심정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며 "할아버지 부부와 개들의 행복을 위해 보내야 한다는 점을 누차 설득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4마리 새 가족 만나… 나머지도 입양 기다리는 중

3개월 추정의 갈래는 새 가족을 찾았지만 여전히 입양을 기다리는 개들이 많이 남아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3개월 추정의 갈래는 새 가족을 찾았지만 여전히 입양을 기다리는 개들이 많이 남아 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A씨 집 앞에는 더 이상의 동물 유기를 막기 위해 '동물 유기는 형사처벌 대상이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렸다. 아산시와 지역 동물단체는 앞으로 A씨가 또다시 동물을 데려와 키우지 않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구조한 개들은 현재 경기 남양주시 소재 동자연 입양센터 '온센터'와 협력 동물병원에 나뉘어 지내고 있다. 구조한 64마리 가운데 일부 임신한 개들이 11마리를 출산하면서 총 75마리로 늘었다. 이 가운데 입양이 확정된 수는 4마리뿐이다. 이규원 동자연 활동가는 "개들이 대부분 작고 어린 데다 사람을 잘 따르는 편"이라며 "이들이 입양을 가야 나머지 개들도 구조할 수 있다,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입양문의: 동물자유연대

위 사이트가 클릭이 안 되면 아래 URL을 주소창에 넣으시면 됩니다.

https://www.animals.or.kr/center/adopt/60977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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