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사일 맹폭에 우크라 ‘블랙아웃’… 원전 폐쇄, 몰도바도 정전

입력
2022.11.24 09:26
수정
2022.11.24 17:1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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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크라에 5,400억 원 규모 대공무기 추가 지원

23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비슈고로드에서 소방대원들이 러시아 미사일 공습을 당한 아파트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키이우=AP 뉴시스

23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비슈고로드에서 소방대원들이 러시아 미사일 공습을 당한 아파트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키이우=AP 뉴시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재개, 에너지 기반시설을 파괴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암흑과 추위에 갇혔다. 공습 여파로 원자력발전소 3곳을 비롯해 화력ㆍ수력발전소 대다수가 가동을 중단했고, 이웃나라 몰도바까지 전기가 끊겼다. 미사일 일부는 주거지역과 병원을 강타해 또 다시 무고한 목숨을 앗아갔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대공 무기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러 미사일 70발 공습에 우크라 전역 정전

23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과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 화상으로 참여해 “우크라이나는 오늘 하루 동안 미사일 70발을 맞았다”며 “러시아는 병원, 학교, 교통, 주거시설을 모두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있고, 에너지 공급도 없고, 난방도 할 수 없고, 물도 이용할 수 없는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면 이것은 명백히 반인륜적인 범죄”라면서 “전 세계가 매우 확고한 대응 조치를 취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호소했다.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가 순항 미사일 67발을 발사했고, 이 중 51발이 격추됐다”고 전했다. 공격용 무인기(드론) 5대도 날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도 방송 인터뷰에서 “군에 따르면 미사일 30발이 키이우를 향해 발사됐고 20발이 격추됐다”며 “격추되지 않은 미사일 이 주요 기반 시설을 타격했다”고 말했다.

키이우를 비롯해 북부 하르키우, 서부 르비우, 체르니히우, 키로보그라드, 오데사, 흐멜니츠키 등 러시아 전역에서 도시 전체 또는 일부가 정전 사태를 겪었다. 집중 공격을 받은 키이우에선 시민 80%가 전기와 수도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파악됐다. 우크라이나 국영 전력운영사 우크레네르고는 “에너지 인프라 시설이 타격을 입어 모든 지역에서 긴급 정전이 발생하고 있다”며 “공습경보가 종료되는 즉시 수리를 시작할 것”이라고 알렸다.

몰도바도 국토 절반 정전… 생후 2일 아기 사망

23일 러시아군의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빌니안스크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소방관들이 현장을 수색하고 있다. 빌니안스크=AP 뉴시스

23일 러시아군의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주 빌니안스크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소방관들이 현장을 수색하고 있다. 빌니안스크=AP 뉴시스

우크라이나로부터 전력 일부를 공급받고 있는 이웃나라 몰도바에도 불똥이 튀었다. 안드레이 스피누 몰도바 부총리 겸 인프라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토의 절반 이상이 정전 피해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공습 여파로 우크라이나 내 원전 3곳이 가동을 중단했다. 다행히 원자로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그간 우크라이나 전역에 있는 화력발전소와 수력발전소 대다수가 공격을 당해 파괴되거나 폐쇄된 탓에 우크라이나는 전기 생산에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각 지역에서 인명 피해도 속출했다. 러시아 미사일 일부가 키이우 북쪽 교외 비슈고로드에 있는 한 아파트에 떨어져 주민 3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쳤다. 남부 자포리자 빌니안스크에 있는 산부인과 병원도 간밤에 공습을 당해 생후 2일 된 아기가 숨졌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애도를 표하며 “이 끔찍한 고통을 우리는 절대 잊지 않고 러시아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공습 빈발… 미국 대공무기 추가 지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 최근 탈환한 헤르손을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헤르손=AP 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4일 최근 탈환한 헤르손을 방문해 둘러보고 있다. 헤르손=AP 뉴시스

우크라이나 남부 요충지 헤르손을 점령한 지 8개월 만에 퇴각하는 수모를 겪은 러시아는 최근 몇 주간 우크라이나의 주요 기반 시설을 목표로 공습을 퍼붓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우크라이나에 미사일 100발을 무더기로 발사하는 등 대규모 공습을 단행했다. 겨울철 추위를 또 다른 대량살상무기로 이용하려는 의도다. 우크라이나 전력운영사는 우크라이나 전역이 내년 3월 말까지 상시적으로 정전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기반시설이 초토화된 헤르손에서 주민들을 다른 안전한 지역으로 대피시키는 계획도 내놨다.

러시아의 공습이 잇따르자 미국 정부는 이날 우크라이나에 4억 달러(약 5,400억 원) 규모 추가 군사 지원을 발표했다. 열영상 조준경을 갖춘 대(對)드론용 대공포 150기를 비롯해 러시아 미사일 요격 100% 성공률을 보이고 있는 첨단 지대공미사일시스템 나삼스(NASAMS),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적 레이더 공격을 위한 대(對)레이더 미사일(HARM) 등이 포함됐다.

미국 국방부는 “러시아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대공 무기 지원을 최우선에 뒀다”며 “나삼스와 대공포는 우크라이나가 시급한 위협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 규모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래 197억 달러(약 26조6,300억 원)에 이르게 됐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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