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세대교체 물결이 다가온다

입력
2023.01.07 09:00
13면

편집자주

자기 주장만 펼치는 시대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찰력’(인사이트)이 아닌 ‘기존 틀을 깨는 새로운 관점’(아웃사이트)이 필요합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격주로 여러 현안에 대해 보수와 진보의 고정관념을 넘은 새로운 관점의 글쓰기에 나섭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았다. 2024년 4월에는 총선이 있다. 2023년 하반기부터 총선 이슈가 정치권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총선 향방은 윤석열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한 국민적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와 별개로 2024년 총선은 ‘세대교체 바람’이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2가지 전조(前兆)가 이를 예고한다. 첫 번째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존재감 상승이다. 2021, 2022년 기간 동안, 정치권에서 가장 ‘핫한’ 정치인 10명을 뽑는다면, 이준석과 박지현을 빼놓을 수 없다.

두 번째 전조는 지난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출된 8ㆍ28 전당대회였다. 8ㆍ28 전당대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97세대’(1990년대 학번, 1970년대생)의 부상이다. 강병원, 강훈식, 박주민, 박용진. 4명의 ‘97세대’ 정치인이 당 대표로 출마했다. 결선 투표에서는 이재명, 강훈식, 박용진 3명이 대결했다.

이준석과 박지현의 정치적 존재감 상승, 97세대의 부상은 향후 한국 정치에서 ‘세대교체론’이 더욱 커질 것을 보여준다. ‘97세대’는 ‘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한국 정치에서 세대교체론의 향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세대론을 둘러싼 몇 가지 개념과 특징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박지현(왼쪽사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한국일보 연합뉴스 자료사진

박지현(왼쪽사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한국일보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대교체 정치학 ‘30년 주기설’

첫째, 세대효과와 연령효과 개념이다. 먼저 ‘세대효과’다. 사람은 보통 20대 때 경험한 문화 및 세계관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20대 때 나훈아, 남진을 좋아하면 죽을 때까지 나훈아, 남진을 좋아하는 게 일반적이다. 20대 때 김광석, 서태지를 좋아하면 죽을 때까지 김광석, 서태지를 좋아한다. 이처럼 특정 세대의 경험이 ‘지속되는 것’을 세대효과라고 한다. 연령효과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변하는’ 경우다. 변화 방향이 보수인지, 진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둘째, 세대교체는 약 30년 주기로 작동한다. 세대교체 주기가 왜 30년일까? 세계관 형성은 20대 때 이뤄지고 그 사회에서 의사결정 주도권을 잡는 것은 50대인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20대 때 형성된 세계관으로, 50대 때 의사결정을 한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압축 성장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변화, 가장 굴곡이 심한 근현대 150년을 살았다. 앞 세대의 30년과 자기 세대의 30년은 독립 여부, 냉전ㆍ탈냉전ㆍ신냉전 여부, 경제발전 단계, 민주화 여부에 따라 질적으로 달랐다. 그 어떤 나라보다 한국에서 ‘세대교체 30년 주기’는 더 드라마틱하게 작동해왔다. 새롭게 등장한 20대 입장에서, 그 이전 세대 행태가 ‘꼰대’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항이 수반되지 않은, ‘얌전한’ 세대교체가 어려운 이유다.

한국 정치사에서 세대교체는 크게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세대교체는 1960~1970년대 ‘1박 3김’(박정희ㆍ김대중ㆍ김종필ㆍ김영삼)의 등장이다. 두 번째 세대교체는 2000년대 초반에 본격화된 학생운동 출신 86세대의 대규모 부상이다. ‘세대교체 30년 주기론’을 한국 정치에 적용해보면 현재 한국 정치는 세 번째 세대교체 국면의 초입에 있는 셈이다.

1966년 4월 25일 청와대를 찾은 상춘객들이 승마복을 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나는 모습을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6년 4월 25일 청와대를 찾은 상춘객들이 승마복을 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나는 모습을 신기한 듯 지켜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삼(왼쪽부터)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영삼(왼쪽부터)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 정치사에서 첫 번째 세대교체는 1박 3김의 등장이다. 박정희(1917년생) 전 대통령, 김대중(1924년생) 전 대통령, 김종필(1926년생) 전 국무총리, 김영삼(1927년생) 전 대통령이다. 최초의 세대교체는 1961년 5ㆍ16 군사 쿠데타였다. 1961년을 기준으로, 박 전 대통령은 44세, 김 전 총리는 35세였다. 집권 여당인 공화당이 ‘젊은 정당’이었다. 반면 민주당ㆍ신민당 계열의 정치 지도자들은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총리보다 20~30세 정도 많았다. 1971년 대선에서 신민당의 ‘40대 기수론’은 이런 배경에서 등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보다 일곱 살 적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 전 총리보다 한 살 적었다. 세대교체는 공화당이 주도하고 10년 후 신민당이 뒤쫓는 형국이었다.

세대별 정치인 및 주요 이력. 강준구 기자

세대별 정치인 및 주요 이력. 강준구 기자

한국 정치사에서 두 번째 세대교체는 86세대의 대규모 부상이다. 86세대의 최대 공적은 직선제 쟁취와 민주주의의 공고화다. 86세대의 국회 진입은 1996년 총선에서 화려하게 당선된 김민석 새정치국민회의 의원(1964년생)을 출발로 한다. 만 32세 나이로 당시 여당의 거물급 정치인이었던 나웅배 후보를 꺾었다. 학생운동 출신의 ‘득표력’이 입증됐다.

2000년 총선은 아예 ‘젊은 피 수혈’을 표방하며 여야가 경쟁적으로 86세대를 영입한다. 역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 출신들은 대부분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소위 SKY(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 역시 정치권이 선호하는 영입대상이었다. 86세대 정치인들 대부분이 2000년 총선과 2004년 총선에 국회에 진입했다.

86세대의 정치권 유입에서, 민주당에선 학생운동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국민의힘 계열은 전문가 비중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국민의힘에서 86세대를 대표하는 오세훈(1961년생), 나경원(1963년생), 원희룡(1964년생), 남경필(1965년생)은 모두 화려한 학생운동 경력을 갖고 있지 않다. 변호사, 판사, 검사, 방송인 등 전문직이 더 일반적이었다. 오세훈의 경우 39세 국회의원을 시작하고 45세 나이로 2006년에 서울시장을 지냈다. 김민석의 경우 32세 국회의원을 시작하고 38세 나이로 2002년에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유권자 3분법... ‘20대 세계관이 평생 간다’

셋째, 세대효과에 입각한 유권자 3분법과 각 세대의 입체적 이해다. 한국의 유권자 집단은 크게 세 덩어리로 구분할 수 있다. ①6070 이상 세대 ②4050세대 ③(18~19세 포함) 2030세대다. 이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2022년 3월 대선을 기준으로, ①6070 이상 세대는 30% ②4050세대는 38% ③2030세대는 32%다. 2030세대는 6070 이상 세대보다 2%포인트 정도 더 많다. 다만 세대별 투표율을 고려하면 조금 달라진다. 6070 이상 세대가 2030세대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더 많이 투표한다. 유권자 규모는 2030세대가 더 많지만, 투표 동원력은 6070 이상 세대가 더 빵빵하다.

각 세대별 특징과 관심사. 강준구 기자

각 세대별 특징과 관심사. 강준구 기자

우리는 앞서 ‘세대효과’ 개념의 핵심이 20대 때 형성된 세계관이 죽을 때까지 지속되는 것임을 살펴봤다. 세대효과 개념은 유권자별 특성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분석 틀을 제공해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경험했던 20대’를 한국 현대사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20대 시절의 경험 및 세계관을 전제로, 각 세대의 특성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①먼저 6070 이상 세대의 경우, 이들이 살았던 20대는 1960~1970년대였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북한’과 ‘가난’이다. 북한의 남침야욕을 막고, 가난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권위주의를 감내하며 살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00달러가 되지 않던 후진국 시절을 살았다.

②4050세대의 경우, 이들이 살았던 20대는 1980~1990년대였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군부독재 타도’, ‘권위주의 세력의 회귀’를 막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사건은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다. 권위주의 세력에 맞서 민주화 이행기를 살았고,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돌파하던(1995년) 중진국의 시대를 살았다.

③2030세대의 경우, 이들이 살았던 20대는 2000~2010년대다. 이들은 새로운 환경을 살고 있고, 새로운 어젠다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젠더, 중국의 부상, 경제환경의 변화, 기후위기를 비롯한 에너지 전환, 외교안보 환경의 변화 등에 관심이 많다. 민주화의 안착 시대에 살고 있고,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원래’ 선진국이었다.

세번째 세대교체, 무엇을 이룰 것인가

세대론의 관점에서 한국 정치사를 복기해보면, 이승만, 김구, 여운형, 윤보선 등 1세대 정치인들의 최대 업적은 독립과 건국이었다. 1박 3김으로 집약되는 2세대 정치인들의 최대 업적은 산업화의 성공과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86세대로 상징되는 3세대 정치인들의 최대 업적은 직선제를 쟁취하고, 권위주의 체제의 회귀를 막고 민주주의를 안착시킨 것이다.

세대교체는 나이 교체가 아니라 세계관의 교체여야 한다. 97세대가 되었건, 2040세대의 청년 정치인이 되었건, 단순한 나이 교체는 정치인들끼리의 ‘밥그릇 교체’에 불과하다. 국민들의 지지와 엄호를 받을 수 없다. 성공하는 세대교체는 오직 ‘세계관의 교체’를 이룰 때다. 나이를 바꾸려 하지 말고, 세계관과 어젠다를 바꿔야 한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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