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에 돌아보는 새해 작심삼일 전력

입력
2023.01.07 00:00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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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내가 서른 살이 되었다. 이제 곧 파멸을 맞이할 한국식 나이로 말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언젠가 서른 살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순간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별것 아니게 다가올지는 몰랐다. 난 30대가 되면 내가 록스타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록스타는 무슨… 함부로 인터넷에 쓴 글 때문에 돌은 많이 맞았지만.

PT 트레이너님이 제안한 30대의 새해를 맞는 방법은 인바디였다. 그러니까 체성분 측정을 하자는 것이었다. 요즘 세상은 어찌나 좋아졌는지, 간단한 기계 위에 1분 정도 서 있는 것만으로도 내 몸에서 체지방과 근육량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하지 않아도 결과를 뻔히 알 수 있는 것에 굳이 아까운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지 강력한 의문을 표했다. 지난 11월부터 나는 말 그대로 술독에 빠져 살았던 것이다.

어쨌든 제대로 된 값을 직접 두 눈으로 목도해야 이번 해에 정신을 차릴 수 있다는 게 트레이너님의 생각이었다. 이집트 사후세계에서 내 심장을 심판의 저울에 올리는 참담한 심정으로, 인바디 기계에 그려진 발 모양 위에 내 발을 얹고,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나는 지난 3개월 동안 내가 체지방률이 5%포인트 올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살을 빼는 건 외모 복권을 긁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다. 난 차라리 번개를 맞는 게 더 쉽지 않겠나 싶었지만, 어쨌든 이번엔 정말 충격을 받았다. 나는 매일 운동하고 햄스터만큼만 먹겠다고 마음먹었다. 단 하루라도 빠지면 나는 실패자인 거야. 돌이킬 수 없어… 과거처럼 살지 않겠어.

그런데 강력한 데자뷔가 느껴지는 것이다! 맞다. 난 2022년의 1월에도 똑같은 고통을 받으면서 인바디를 쟀고, 2021년에도 이랬고, 2020년에도 이랬다. 그리고 조금씩 운동을 하는 척하다가,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나를 불리는 데 모든 힘을 다 썼다. 다만 장소만이 서울시 중구 어딘가, 마포구 어딘가, 서대문구 어딘가로 조금 바뀌었을 뿐.

매일 운동하겠어! 햄스터만큼만 먹겠어! 알코올은 오직 소독용으로만 쓰겠어! 그치만 나는 그만한 완벽주의를 내게 강요할 만큼 스스로 강인하지 못하다. 첫 2~3개월 동안만 뭔가 열심히 목표를 세우는 듯하다가, 충동적으로 기준을 깨뜨려 버리는 순간, "이미 망했는데 뭐 어쩌겠어?" 하며 매우 적극적으로 기준을 깨 버린다. 그러면 결국 연말에는 자기혐오와 고통에 빠져 술을 꼴꼴꼴 마시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할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이라 믿고.

내일은 온다.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결말인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길고 지루한 삶은 지속된다. 삶이 한 번 번쩍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긴 시간 동안 유지할 수 있을 자세를 추구하는 것이 낫다. 이런 생각을 예전에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절대 오지 않을 거 같던 서른 살이 실제로 오니까 그 생각이 가슴에 와닿는다. 아니, 이래서 사람이 나이가 들어야 보이는 게 있다는 건가?

올해의 목표는 정해졌다. 그것은 가능한 느슨한, 30대 내내 유지 가능할 만큼만 운동하고, 식이를 조절하고, 일을 하고, 그렇게 잘 사는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완벽에 대한 희망이 망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심너울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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