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맥주, 미나리맥주, 대나무맥주... '한국 맛'으로 미국을 홀리다

김치맥주, 미나리맥주, 대나무맥주... '한국 맛'으로 미국을 홀리다

입력
2023.01.30 04:30
구독


김치 유산균으로 만든 '김치 사워'(Kimchi Sour) 맥주, 대나무 잎 차를 활용해 양조한 '뱀부 필스너'(Bamboo Pilsner), 영화 '미나리'의 아카데미 수상을 기념해 미나리를 주재료로 쓴 '미나리' 맥주까지.

이보다 한국적일 수 없을 것 같은 실험적 맥주들이 있다. 그것도 미국에.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듯, 맥주캔 디자인엔 한국 전통 문양을 새겼다. 브랜드 이름까지 한국 전통 잡귀의 이름을 딴 '도깨비어'(DOKKAEBIER)다.


[곧, 유니콘] 이영원 도깨비어 대표

"일부러 한국의 DNA를 이름에 새겼어요. 미국 사람들이 못 읽지 않느냐고요? 우리도 독일 맥주, 프랑스 와인 이름 제대로 읽을 수 없지 않나요?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팔리죠."

도깨비어는 이영원(35) 대표가 2019년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설립한 회사다. 도깨비어의 모든 맥주는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되고, 미국에서만 판매된다.

국산 맥주보다 한국적인 맥주를, 왜 굳이 미국에서 선보인 걸까? 최근 만난 이 대표는 이같은 질문에 "미국에 수제맥주 회사가 몇 개인 줄 아느냐"고 되물었다. "모른다"고 답하자 이어진 말. "(2021년 말 기준) 9,000개가 넘어요. 한국도 수제맥주 시장이 많이 커져서 2,000억 원 정도 규모라는데, 여긴 무려 268억 달러(약 33조 원)죠. 그런데 동양인이 참여한 브랜드는 2%도 안 돼요. 그나마 유명한 브랜드가 일본인이 운영하는 건데, 일본 느낌은 전혀 없어요. 그래서 오히려 한국적인 게 눈에 띌 거라고 생각했어요."

캘리포니아에는 미국에서도 가장 많은 1,000여 개의 수제맥주 회사가 몰려있다. 수제맥주의 본진. 미국 공략을 결심한 이 대표가 캘리포니아로 직진한 이유다. 수제맥주의 성지지만, 동양적 맥주엔 불모지나 다름 없는 곳에서,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도깨비어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수제맥주 스타트업 '도깨비어'의 이영원 대표가 지난 19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한 맥주 양조장에서 도깨비어의 대표 맥주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수제맥주 스타트업 '도깨비어'의 이영원 대표가 지난 19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한 맥주 양조장에서 도깨비어의 대표 맥주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1. 배달

창업 직후, 할 수 있는 건 배달뿐이었다.

2019년 회사 설립 후 2020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 팝업스토어(한시 매장)를 열었다. 정식으로 매장을 열기 전 3개월 동안 운영한 건데, 꽤 반응이 좋았다. 기쁨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하필 그때 터져버린 팬데믹으로 모든 계획이 멈췄다. 뽑았던 직원 15명도 어쩔 수 없이 내보냈다.

사람들이 술집에 모이긴커녕 집에서 나오지 못하는 날이 계속 되면서 홈페이지에서 주문을 받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 열자마자 망할 것 같은 게 안쓰러웠는지 지인이 실리콘밸리 한인 커뮤니티들에 홍보를 해줬어요. 팝업스토어 덕에 입소문도 좀 타서 주문이 계속 들어왔는데, 직원을 고용할 여유는 없었죠. 그래서 제가 직접 배달을 다녔어요."

샌프란시스코에서 새너제이, 월넛크릭까지. 그냥 찍고 돌아오는 데만 약 200㎞ 정도인 거리를 매주 1~3회씩 다녔다. 손님 집 앞에 도착하면 제품을 포장하고 창문을 통해 신분증을 확인한 뒤 문에 걸어두는 식으로 배달했다. 이 대표의 자가용 세단을 이용한 탓에 미리 포장해 두면 차에 물량이 다 실리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번 배달을 나가면 12시간 이상 걸리는 날이 많았다. 단 한 캔만 배달한 경우도 있었다. 수익을 내는 것보다 알리고 경험시키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생활을 2020년 7월부터 10달 정도 했어요. 그러다 직접배송을 그만두게 된 게 재택근무가 풀리면서부터에요. 차가 막히기 시작하니까 도저히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 때를 회상하면 힘들기도 힘들었지만, 제일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문 닫은 가게가 태반이었고, 그나마 연 가게는 화장실을 닫아놓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다. 그의 사정을 아는 한인들이 "화장실 쓰고 가라"고 문을 열어주려 했던 게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수제맥주 스타트업 도깨비어의 맥주들. 제품 포장지에 한국 전통 문양을 새겨 넣은 것이 특징이다. 도깨비어 제공

수제맥주 스타트업 도깨비어의 맥주들. 제품 포장지에 한국 전통 문양을 새겨 넣은 것이 특징이다. 도깨비어 제공


#2. 유일무이

미국 시장을 뚫은 비결

도깨비어는 한 달에 한 개 꼴로 신제품을 낸다. 달고나, 쌀, 유자, 오미자 등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를 주로 사용하려 한다. 이 대표도 만족하고, 직원들도 반응이 좋으면 소량 생산과 판매를 통해 시장 반응을 본 뒤 정식 출시한다. 대나무잎 차와 김치 유산균으로 만든 맥주가 가장 인기가 많다.

비슷한 맛의 맥주가 없다는 게 강점으로 작용했다. "미국 대형마트나 주류 체인은 입점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요. 보통 입점 심사를 길면 1년에 한 번밖에 안 하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난이도는 높지 않았어요. 그들 입장에서도 매장을 운영하려면 다양한 제품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 맥주는 대체품이 없다 보니까 대부분 통과됐죠."

2021년 180곳이었던 입점 매장은 지난해 400개까지 늘었다. 캘리포니아 내 대형마트 홀푸드, 주류 체인 베브모와 토탈와인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올해는 네바다와 오레곤, 워싱턴 등 인근 주까지 영역을 넓힐 계획이라고 한다. 도깨비어는 소규모 양조장 여러 곳에서 맥주를 생산해 왔는데, 요즘은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최근 대형 양조장과 계약을 맺었다. 매장 오픈도 준비 중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수제맥주 스타트업 '도깨비어'의 이영원 대표가 지난 19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한 맥주 양조장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수제맥주 스타트업 '도깨비어'의 이영원 대표가 지난 19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한 맥주 양조장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3. 이민자

미국에서 '한국적인 맛'으로 승부하는 이유


이 대표는 어릴 적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아왔고, 지금은 미국에 사는 이민자다. 9,000여 개나 되는 수제맥주 회사 가운데 동양인 회사가 거의 없는 현실이 보여주듯, 이민자로서 그가 경험한 미국은 여전히 백인 중심 사회다. 이 대표가 가장 한국적인 맛으로 미국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이유다.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이 도깨비어란 브랜드에 녹아있는 셈이다. "라티노, 흑인, 여성 등 백인이 아닌 이들끼리 함께 만든 맥주도 조만간 출시할 계획이에요. 다른 모든 업계처럼 맥주업계도 다양성과 평등이 중요하니까요."

한국인이 꼭 빅테크에 들어가거나 전문직이 되지 않아도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동양인이 특히 적은 분야를 개척해서 다른 한국인들에게도 좋은 선례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래서 오늘도 새로운 한국의 맛을 고민한다. 요즘 가장 만들어보고 싶은 맥주는 굴소스로 만든 맥주라고 한다. "한국말에 '단짠'(달고 짠)이라고 있잖아요. 흑맥주에 굴소스를 넣어서 감칠맛 나는 단짠 맥주를 선보이고 싶습니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