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RGB' 긴즈버그 대법관과의 25년간 인터뷰 [책과 세상]

입력
2023.02.23 17:00
수정
2023.02.23 17:5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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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

편집자주

책, 소설, 영화, 드라마, 가요, 연극, 미술 등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젠더 이슈를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봅니다.

2018년 미국 국립 기록 보관소에서 열린 권리장전의 날 귀화 행사에서 연단에 오른 긴즈버그. 이온서가 제공

2018년 미국 국립 기록 보관소에서 열린 권리장전의 날 귀화 행사에서 연단에 오른 긴즈버그. 이온서가 제공

"법원은 사회적 변화를 선두에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방향으로 무게를 실어가는 것."

'판사들의 판사' '시대의 아이콘'으로 여겼던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말이다. 오랫동안 남자만 입학을 허용했던 '버지니아 종합군사학교'에 여학생도 입학할 수 있게 한 '미국 대 버지니아주 사건(1996)' 판결과 '동성 결혼 합헌(2015)' 결정을 주도하는 등 평생 여성과 남성을 다르게 취급하는 법적 차별과 싸웠고,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헌신했던 그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터뷰집이 최근 번역, 발간됐다.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는 무려 25년에 걸쳐 이뤄진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1991년부터 2020년 그가 사망하기 전까지 긴밀하게 교류한 베테랑 저널리스트이자 법조인인 제프리 로즌이 썼고, 긴즈버그가 원고를 직접 검토했다. 신중한 성품인 긴즈버그는, 역대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서 역사에 남을 판결문과 소수의견을 쓰고도 정작 자서전 하나 남기지 않았다. 긴즈버그를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의 가치가 상당한 이유다.

책에는 첨예한 법적 쟁점부터 대법원의 미래, 가장 좋아하는 소수의견, 뒤집어졌으면 하는 판결들, 미투운동에 대한 견해 등 긴즈버그의 솔직하고 단단한 답변이 담겼다. 이뿐만 아니라 그가 오페라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캐나다 공군 수칙 훈련'으로 체력을 단련하며, 사사건건 대립했던 보수성향 앤토닌 스캘리아 대법관과 가장 진실한 우정을 나눴다는 인간적 면모까지 엿볼 수 있다.

왜 지금 긴즈버그를 읽어야 할까. 그의 사법 철학과 인권 의식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기 때문이다. 2015년 한국을 방문한 그는 국내 성소수자들을 만나 "한국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격려했는데, 8년 후 그 말은 현실이 됐다. 다음은 지난 21일, 서울고법이 동성 커플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며 쓴 판결문 속 한 문장. "다수결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소수자 권리에 대한 인식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는 인권 최후의 보루인 법원의 가장 큰 책무이기도 하다."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ㆍ제프리 로즌 지음ㆍ이온서가 발행ㆍ302쪽ㆍ1만8,000원

긴즈버그의 마지막 대화ㆍ제프리 로즌 지음ㆍ이온서가 발행ㆍ302쪽ㆍ1만8,000원






이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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