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부부의 구조조정 대처법

입력
2023.03.18 00:00
수정
2023.03.20 14:45
22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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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구조조정 대처 프로토콜을 만들어야겠어."
몇 주 전 저녁, 남편과 마주 앉아 꺼낸 얘기다. 웃으며 말했지만 농담은 아니었다. 그와 내가 몸담은 업계는 최근 몰아닥친 경제 불황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는 중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어느 회사가 한 팀을 통으로 날렸다더라, 어디는 투자금을 모두 소진하고 구조조정을 시작했다더라 하는 동종 업계의 흉흉한 소식이 들려왔다. 다행히 그와 나는 아직까지 그 대상이 되지 않았으나,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이들이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실무자들이라는 점을 보면 이것이 언제까지나 남의 일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먼지가 내려앉듯 불안감이 쌓였다. 생계와 직결된 문제라서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그 경험이 가져올 심리적 후폭풍이 두려웠다. 우리는 또래 대부분이 그렇듯 취업 과정에서 눈물 젖은 사연 몇 개씩을 갖게 되었으므로,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직장을 잃는 경험은 말 그대로 영혼에 상처를 입힌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찢긴 자존감은 쉬 아물지 않는다는 것도. 매뉴얼을 만들자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직업이 흔들린다고 인격과 인생마저 그렇게 되도록 둘 수 없었다. 사고를 막을 수 없다면 충격을 줄일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우리는 그날 밤늦도록 한 사람이 잘리면 다른 한 사람은 그날 반차를 쓰고 나와 아주 맛있는 저녁을 먹자, 쫓기듯 일자리를 구하려면 더 불안해질 수 있으니 차라리 한두 달 정도 푹 쉴 수 있도록 방학을 주자, 그걸 대비해 지금부터 매달 얼마씩은 비상금으로 빼 두자는 등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한편, 다음 날 회사에서의 점심시간 이야깃거리는 '미먹찾'이었다. '미래 먹거리 찾기'를 농담 삼아 줄인 이 말은 요즘 나와 동료들이 가장 자주 꺼내는 주제인데, 말 그대로 명함을 뗀 개인으로서의 우리가 오래 일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나이 든 뒤에도 현역으로 일할 수 있도록 경력을 특화할 방법을 찾거나 반대로 아주 새롭게 준비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생각과 정보를 나누었다.

사무실 안에서야 다들 더 좋은 조직원, 쓸모 있는 직업인이 되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와 별개로 조직 밖의 삶을 살아갈 전략은 반드시 필요했다. 이제 겨우 30대 중반에 들어선 우리에게는 아득하도록 긴 시간이 남아 있었고 그 시간 내내 회사원일 리는 없으니까. 핵심은 속한 조직의 크기나 명성과 관계없이 나 자신의 가치와 삶의 만족도에 일정 수준의 항상성을 부여할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 잘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한다 하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지만 무언가 결론을 내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구조조정 대처 프로토콜'과 '미래 먹거리 찾기'. 20대보다는 여유롭지만 여전히 40대를 낙관할 수 없는 나의 30대는 이 두 단어 사이에서 스스로를 지키면서 쓸모를 갱신할 방법을 찾기 위해 좌충우돌하고 있다. 무엇 하나 불안하지 않은 것이 없는 세상에서 최선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함이라고 스스로 다독이지만, 나이를 불문하고 최근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따금 두려워진다. 우리는 정말 끝이 있는 고민을 하고 있는 걸까.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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