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점검해드립니다"…'자동차 명장 1호' 선행, 만학도 제자가 잇는다

입력
2023.03.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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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권 교수, 21년간 장애인차 무료 정비
'50대 14학번' 카센터 사장님 제자가 이어
"대중교통 문턱 높은 장애인에게 차는 날개"

김관권(왼쪽) 폴리텍대학 자동차학과 명예교수와 박정호 자동차정비업체 '카사랑' 대표. 원다라 기자

김관권(왼쪽) 폴리텍대학 자동차학과 명예교수와 박정호 자동차정비업체 '카사랑' 대표. 원다라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성동구 한 카센터. '오늘은 쉽니다'라는 팻말이 걸렸지만, 정비사들은 분주하게 자동차 엔진오일을 갈고 고장난 부품을 교체했다. '대한민국 자동차 명장 1호' 김관권 한국폴리텍대 자동차학과 명예교수는 박정호 카사랑 대표와 함께 차주들을 맞았다. 김 교수의 정년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맞물려 3년간 중단했던 장애인 대상 자동차 무료 점검 봉사를 재개한 날이었다.


김관권 한국폴리텍대학 자동차학과 명예교수와 학생들이 2013년 4월 13일 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에서 장애인 차량 무료 자동차 정비 봉사를 한 후 촬영한 단체사진. 김 교수 제공.

김관권 한국폴리텍대학 자동차학과 명예교수와 학생들이 2013년 4월 13일 폴리텍대학 서울정수캠퍼스에서 장애인 차량 무료 자동차 정비 봉사를 한 후 촬영한 단체사진. 김 교수 제공.


뇌출혈로 얻은 지체장애 2급, 21년 무료 점검 봉사 계기

김 교수는 1998년부터 2019년까지 21년간 대학에서 학생들과 함께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 운전자를 대상으로 무료 점검 봉사를 했다. 이 기간 무료로 점검을 받은 차량은 3,000대가 넘는다.

김 교수가 무료점검 봉사를 시작했던 계기는 어려움을 딛고 정점에 올랐던 그의 인생에 다시 한 번 주어졌던 시련 때문이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 대신 자동차 정비 공장에 취업해야 했던 김 교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경야독한 결과 1990년 대한민국 자동차 명장 1호로 선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93년, 그는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8일 만에 깨어났지만 휠체어를 사용해야 하는 수준인 후유장애를 얻은 뒤였다. 김 교수는 좌절하는 대신 "다시 얻은 제2의 인생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재활 과정에서 절감한 것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는 자신이 필요할 때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자동차가 무척 소중한 이동수단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운전하는 차는 많은 비용을 들여 특수 개조한 차인 경우가 많아 교체 주기가 길고, 경제여건이 어려운 경우 정비 비용은 큰 부담이었다. 김 교수는 학생들에게 정비 실습을 하게 해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학교측을 설득했고, 점검 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박정호 카사랑 대표(오른쪽)가 2월27일 성동구 옥수동 자신의 사업장에서 직원과 함께 장애인 대상 무료 자동차 점검 봉사를 하고 있다. 원다라 기자

박정호 카사랑 대표(오른쪽)가 2월27일 성동구 옥수동 자신의 사업장에서 직원과 함께 장애인 대상 무료 자동차 점검 봉사를 하고 있다. 원다라 기자


교수님 선행 명맥 끊길까 나선 만학도 제자

김 교수의 무료 점검 봉사는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현업에 나가기 전, 실제 정비를 해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날 카센터를 내어준 박정호 카사랑 대표도 김 교수 제자였다. 박 대표는 정년을 맞은 김 교수가 2021년 8월 명예교수직으로 물러나며 불가피하게 정비 봉사를 중단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김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김 교수는 제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여러차례 고사했다. 대학에서 점검 봉사를 할 땐, 학교에서 정비 장소와 부품 비용을 제공해줬지만 일반 카센터에서 할 경우에는 부품비용 뿐 아니라 카센터 하루 매출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게다가 노후 차량이 많은 만큼 점검 차량 대부분은 손볼 곳도 많다. 그러나 박 대표는 "제가 해보겠다"며 거듭 의지를 전해왔다.

박 대표는 김 교수의 무료 정비 봉사를 잇기로 한 이유에 대해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여건이 된다면 교수님처럼 정비기술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가 학생으로 김 교수를 만난 건 50대 나이에 새내기로 대학에 입학했던 2014년. 만학도였던 그는 배움에 간절했다. 김 교수는 몸이 불편했지만 제자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쳤고,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사비를 털어 장학금도 주기도 했다고 한다.


핸드컨트롤러가 설치되어있는 박해열(59)씨 차 내부. 박씨는 페달 대신 핸드컨트롤러를 사용해 브레이크와 액셀을 조작해 운전 한다. 박씨 제공.

핸드컨트롤러가 설치되어있는 박해열(59)씨 차 내부. 박씨는 페달 대신 핸드컨트롤러를 사용해 브레이크와 액셀을 조작해 운전 한다. 박씨 제공.


점검 받은 차주들 "낡은 차가 나에겐 날개"…장애인 이동권 지원 절실

이날 정비를 받은 박해열(59)씨도 점검 봉사에서 김 교수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열아홉 살 때 바이러스성 척수염을 앓은 후 걸을 수 없게 됐던 그가 서른살 무렵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은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되면서였다고 했다. 박씨의 차에는 발로 작동하는 브레이크와 액셀 페달 대신 손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한 핸들컨트롤러가 설치돼 있었다. 그는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이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는 사실상 전혀 불가능하다"며 "장애인용 콜택시가 있기는 하지만, 서너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갑자기 아플 때 병원조차도 가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오래된 차가 나에겐 다리이자 날개"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장애인에게는 때로 카센터 문턱마저 높다. 이날 오후 카센터에서 만난 김종순씨는 "장애인들이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카센터가 많지 않은데, 김 교수에겐 항상 편한 마음으로 점검을 받으러 갈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불편한 몸을 보면 눈빛부터 달라지거나, 핸들컨트롤러 등 장애인이 운전할 수 있도록 개조한 차량의 경우 '작동 방법을 모른다'며 아예 문전박대하는 경우도 있다고도 귀띔했다.

제자가 매달 1회씩 무료 점검을 하기로 하며 무료 점검 봉사를 다시 할 수 있게 됐지만, 김 교수는 장애인 이동권 차원에서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장애인들은 이동 수단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며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지만 자동차 점검 지원 관련 제도가 마련된다면 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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