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중 2명 한 달에 연차 하루 쓰기도 힘든데...몰아서 한 달 쉬라고?

입력
2023.03.20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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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55.1% "작년 휴가 6일 미만 사용"
업무 과다와 인력 부족, 상사 눈치 주된 이유
"정부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2030자문단과 가진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2030자문단과 가진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장인 중 절반 가까이가 근로기준법상 최소 연차휴가(15일)의 50%도 소진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차 사용에 눈치를 주는 직장 분위기와 업무 과다, 동료에게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일할 때 몰아서 일하고 쉴 때 몰아서 쉬자"는 게 핵심인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 반발 여론이 강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19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이달 3~10일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지난해 연차휴가를 '6일 미만' 사용했다는 응답자는 41.5%나 됐다. '6~8일' 사용은 13.3%, '9~11일'은 12.0%였다. '12일 미만' 사용했다는 응답률이 66.8%라 직장인 3명 중 2명은 한 달에 하루 연차휴가를 쓰기도 어려웠던 셈이다. 15일 이상 연차휴가를 사용했다는 응답자는 19.4%에 불과했다.

법에 정해진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들은 대체로 일터 내 약자였다. 지난해 연차휴가를 6일 미만 사용했다는 응답자는 △비상용직(고용형태별) △5인 미만 사업장(직장 규모별) △일반 사원급(직급별) △150만 원 미만(임금 수준별)에서 많았다.

지난 1년간 연차휴가 사용 일수(단위: %) *사례 수 1,000명
(자료: 직장갑질119)

특히 윤석열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이 가능한 근로시간 개편안의 '잠재적 지지층'으로 여겼던 20대는 절반이 넘는 55.1%가 지난해 연차휴가를 6일 미만 사용했다고 답했다. 15일 이상 사용했다는 20대는 9.7%에 불과했다. 40대(23%)나 50대(18.9%) 응답률은 이보다 두 배 정도 높았다. "몰아서 휴식하자"는 정부 구호가 일으킨 역풍 뒤에는 청년들의 팍팍한 현실이 있었던 것이다.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답한 직장인은 40.6%로 절반을 넘지 못했다.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이유로는 △동료의 업무 부담(28.2%·중복응답) △직장 내 분위기(16.2%) △업무 과다(15.1%) △상급자 눈치(12%) 등을 많이 꼽았다. 직장갑질119는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요새 MZ세대는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라고 하는 등 권리의식이 뛰어나다'고 말했지만 현실에서는 20대의 18.8%가 '상급자의 눈치' 때문에 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했다"며 "장관의 인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이 지난해 9, 10월 전국 만 19~59세 2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취업자들이 받은 평균 연차휴가는 17.03일이었으나 실제 사용은 11.63일로 5일 이상 차이가 났다. 연차를 다 쓰지 못한 이유는 본인의 의사가 아닌 △대체 인력 부족(18.3%) △업무량 과다(17.6%) △상사 눈치(11.4%) △조직 분위기(5.1%)가 과반이었다.

'MZ세대'가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지 못한 이유(단위: %) *만 19~29세 응답 비율
(자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부 인식과 청년들이 처한 현실에 괴리가 있다는 점은 실태조사에서도 확인됐다. 고용노동부는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대비 한 달 이상 긴 이유를 "근로자가 휴가를 많이 가지 않아서"이며, 휴가를 쓰지 않는 이유는 "연차를 돈으로 보상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왔다. 연차수당을 받기 위해 연차휴가를 다 쓰지 않았다는 전체 응답률은 20.1%였지만 연령대별로는 차이가 컸다. 50대(25.6%)만 높았고 20대 이하(14.1%)와 30대(16.4%)는 낮았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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