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시장의 한계?…흔들리는 가스공사의 가격 경쟁력[천연가스 시장 재편, 위기인가 기회인가]

입력
2023.03.22 04:30
수정
2023.03.22 17:58
12면
구독

<하>가스공사 가격 경쟁력 하락, 왜?
①수요 예측 실패하면서 비싼 현물 구입
②독점 공급에 따라 관성적으로 물량 확보
"가스공사 독점 LNG 수급 구조는 효율성 떨어져"

지난해 10월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중부발전 서울발전본부 굴뚝에서 LNG 전력발전으로 인한 수증기가 나오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0월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국중부발전 서울발전본부 굴뚝에서 LNG 전력발전으로 인한 수증기가 나오고 있다. 뉴시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서민들의 요금 부담이 커지면서 국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을 책임지는 한국가스공사의 가격 경쟁력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국제 에너지 시장 등 대외적 여건이 좋지 않았던 상황임을 고려해도 가스공사가 수요 예측과 가격 협상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비싼 값에 사 오게 되고, 이는 '가스 소비자'인 국민들이 더 많은 에너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①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비싼 현물 구입 비중↑

장기천연가스 수급계획 대비 LNG 수요오차. 그래픽=신동준 기자

장기천연가스 수급계획 대비 LNG 수요오차. 그래픽=신동준 기자



21일 가스공사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천연가스 수급계획 대비 LNG 수요 예측 오차율은 2017년 13.1%, 2018년 15.8%, 2019년 16.5%, 2020년 18.7%로 증가해 왔다. 예상보다 더 많은 LNG를 쓰자 2021년 14차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을 세우면서 예측 수요를 늘렸지만 2021년에도 404만 톤(t) 상당의 오차가 발생했다. 가스공사가 부족한 재고를 채우기 위해 나중에 돌려주기로 하고 민간 업체에서 급하게 빌린 LNG 물량 또한 지난해 94만 톤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가스공사는 최근 전력수급계획상 원전 및 석탄 발전이 예상보다 줄어들면서 두 연료의 대체재인 LNG 발전 비중이 커져 예상보다 많은 천연가스를 썼다고 설명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원전 설비 점검 기간이 길어지면서 원전이 멈춘 동안 LNG를 전기 원료로 사용해 오차율도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요 예측에 실패하면 더 비싼 값을 치르고 LNG를 사 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가스공사, 그리고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실무위원회는 전력수요 전망과 전력설비별 발전 비중을 다루는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년마다 장기 천연가스 수급계획을 세우고 도시가스 사용과 LNG 발전 수요를 전망해 장기 계약 물량과 스폿 물량(단기 현물 매매)을 수입한다. 보통 장기 물량은 국제 LNG 시세 변동 영향이 적어 저렴한 반면 스폿 물량은 장기계약 가격보다 두세 배 비싸 가스요금을 올리는 주요 원인이 된다. 장기 물량을 예측한 수요만큼 들여왔는데 더 많은 LNG가 필요하면 결국 비싼 스폿 물량을 사 와야 하는 것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현물은 비싸기 때문에 전체 LNG 수입량 중 10% 정도만 사 오지만 지난해는 현물 비중이 29% 정도였다"며 "수요 예측을 제대로 못하고 장기 계약보다 현물 가격이 다섯 배 이상 높은 상황에서 가스공사가 국내에 LNG를 공급할 때의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고 설명했다.



②비축 의무 탓 가격 협상보다 공급 안정에 초점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 건물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 뉴스1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 건물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 뉴스1


가스공사가 국내 도매 시장을 독점하는 LNG 공급 구조도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거세다. 가스공사는 도시가스사업법상 유일한 도매 사업자로서 국내 천연가스 수급을 책임져야 한다. 가격이 비싸든 싸든 일정 물량의 천연가스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탓에 가격 협상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정 물량을 반드시 조달해야 하다 보니 가격을 최우선으로 삼는 계약을 맺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들은 가스공사의 구매 협상력을 다시 따져 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승훈 교수는 "가스공사는 전 세계 3위의 LNG 구매자인 만큼 가격 경쟁력도 높아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라며 "많이 사면 값을 깎아주기 마련인데 도리어 비싸게 사 온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구자근 의원은 "발전소에 쓰일 LNG를 비싸게 들여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이 지고, 결국 발전사들에 좀 더 저렴하게 직접 사 오는 것을 장려할 수밖에 없다"며 "가스공사는 공급 안정을 이유로 안일하게 대처해 온 것을 인정하고 좀 더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 민간업자에게도 일정량의 LNG 비축 의무를 주고 대신 천연가스 도입·도매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대안이 나온다. '누가 더 싸게 LNG를 사오는지' 경쟁 체제를 받아들여 천연가스 시장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제외한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공기업과 민간업체가 함께 LNG 도매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독점 체제를 깨고 시장이 개방되면 가스공사도 저렴하게 LNG를 살 이유가 생기고, 전력 생산 비용도 줄일 수 있다"며 "무엇보다 저렴하게 에너지를 쓸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나주예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