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은 누가 정하나

입력
2023.03.23 13:0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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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빈곤의 가격'


빈곤의 가격·루퍼트 러셀 지음·윤종은 옮김·책세상·448쪽·2만2,000원

빈곤의 가격·루퍼트 러셀 지음·윤종은 옮김·책세상·448쪽·2만2,000원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푸념이 넘치는 물가폭등의 시기.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에 일상을 위협받으면서도 정작 그 '물가'가 누구의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지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과연 우리가 받아든 이 가격은 경제학이 가르치는 것처럼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과정을 거쳐 정해지고 있는 걸까. 원자재 가격의 흑막을 파헤친 책 '빈곤의 가격'은 바로 그 의문에서 출발한다.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자 루퍼트 러셀은 프랑스·독일 합작 국영방송국인 아르테(ARTE)의 지원을 받아 경제학의 상식을 거스르며 날뛰는 원자재 가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파헤친다. 국경을 넘나들며 헤지펀드 매니저, 경제학자, 난민 등 다양한 이들을 만난 그는 전례 없는 원자재 가격의 혼돈이 금융투기세력이 벌인 소리 없는 전쟁으로부터 출발했음을 간파했다.

저자는 원자재 가격이 금융시장에서 헤지펀드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과정을 생생하게 전한다. 책에 따르면 파생상품이 커지기 시작할 무렵 표준화돼 있지 않은 원자재 파생상품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장외' 파생상품이라 불린 금융상품은 기관 투자자 사이에서 사적으로 거래되면서 근본적인 수요 공급과 관계 없이 가격을 밀어 올렸다. 실제 가격이 오를 이유가 없더라도 가격을 끌어올리는 '자기실현적 예언'으로 가격이 폭등하고, 그 거품이 다시 가격을 끌어내리는 역거품 현상이 반복되며 시장은 가격 변동을 완만하게 조정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탐욕의 날갯짓을 따라 불평등과 빈곤이 만연한 지구촌 곳곳의 현장에 도달한 저자의 진단은 긴박하면서도 섬뜩하다. "지구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 되더라도 £와 € 같은 기호가 찍힌 종잇조각이 가치를 잃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미로 한가운데 있는 괴물 미노타우로스이자 시장의 진정한 광기다."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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