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해법 '1타 강사'의 두 장면

입력
2023.03.22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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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여론 호응 얻은 도쿄 회견 비해
정부 입장만 강변한 국무회의 발언
때늦고 고압적인 대국민 설득 유감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부족하면 제가 더 답변을 해드릴 수 있는데… 질문을 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16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회담을 마친 한일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 자리. 윤석열 대통령은 정부안대로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금을 우리 측에서 대신 지급(일명 '제3자 변제')한 뒤 일본 가해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한참 설명하고선 질문했던 일본 기자에게 저렇게 덧붙이며 웃었다.

군소리였지만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얼마든지 보충 설명을 해줄 수 있다는 저 적극적 자세에서, 윤 대통령이 이번 회담 성사 과정에 얼마나 깊이 관여했는지가 실감됐기 때문이다. 제3자 변제안은 대선 출마 전부터 생각했던 해법이라고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으니, 이를 설명할 때의 자신감은 시쳇말로 '1타 강사'에 못잖았을 것이다. 당초 정부안에 담겼던 피해자 요구(강제징용 사과, 가해기업 배상 동참)가 일본의 완강한 태도에 하나씩 무산됐을 때 윤 대통령이 난감해하는 외교당국을 다그쳐 결국 협상을 매듭지었다는 보도들이 그리 틀리지 않을 거란 확신도 들었다.

예의 친절한 표정과 말투도 인상적이었다. 회담에 앞서 일본 유력 언론을 통해 공언했음에도 재차 '구상권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확약해줄 것을 요구받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흔쾌히 응했다. 노련한 외교관 출신인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그 옆에서 '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을 운운하며 구상권 포기 약속에 쐐기를 박았다. 윤 대통령이 답변을 마칠 때 지은 미소는, 그로부터 닷새 뒤인 21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20분에 걸쳐 회담 성과와 당위성을 설명할 때의 굳은 표정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윤 대통령 방문이 일본 국민에 감화를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회담 직후(18~19일) 마이니치신문 여론조사에선 응답자 64%가 한일관계 개선을 기대했고, 54%는 한국 정부의 징용 문제 해법 발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시다 정부도 깜짝 놀랐다고 할 만큼 일본에 유리한 방안인 데다가 윤 대통령이 보여준 성의 있는 자세 또한 우호적 분위기 형성에 보탬이 됐을 것이다. 그 거울상이 바로 한국 내 반발 여론이다. 피해자 요구사항은 온데간데없이 정상회담 열흘 전 덜컥 발표된 해법, 듣고 싶은 대통령 해명이 한국 아닌 일본에서 먼저 이뤄진 현실에 당혹해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윤 대통령이 한일관계 정상화라는 대의 아래 징용 해법의 불가피성을 직접 설명하고 싶었다면 한국에서 먼저 했어야 옳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부터 찾아가 정부의 진의를 전달하고 설득했어야 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자유와 인권을 유린당했고 오랜 법적 투쟁 끝에 일본 전범기업으로부터 배상받을 권리를 쟁취한 당사자들을 외면한 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가치외교'가 가당하기나 한가. 일본이 늦지 않게 정부의 통 큰 양보에 화답하길 바라 마지않지만, 그 과정에 한일 양국이 보여준 비인도적 처사는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21일 발언은 때늦은 국내 여론 설득 노력으로 읽힌다. 하지만 국무회의 모두발언으로 이례적으로 길었던, 대국민 담화를 방불케 하는 20분 연설에서 국민 우려에 이해나 공감을 표하는 발언은 전무했다. 피해자를 위한 후속 조치는 단 한 문장으로 언급됐다. 징용 해법에 반대하는 여론이 60%에 달하는 상황에서, "현명한 우리 국민을 믿는다" "욕먹을 걸 두려워하지 마라"는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아연하기까지 하다. 그토록 다정했던 도쿄의 '1타 강사'는 어디로 갔나.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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