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엔 꽃, 가을엔 햇밤… 사계절 옷 갈아입는 '카멜레온 5일장'

입력
2023.03.27 04: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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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전통시장]<18>군산 대야시장
노점들 주력 상품 바꾸며 손님들에 손짓
'꽈배기' 완판… 생활용품에 농기구까지
"전북 각지서 몰려와 지역사회 관심 필요"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1일 전북 군산 오일장인 대야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봄꽃을 살펴보고 있다. 군산=김진영 기자

21일 전북 군산 오일장인 대야시장을 찾은 손님들이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봄꽃을 살펴보고 있다. 군산=김진영 기자

지난 21일 전북 군산 시내에서 동쪽으로 7㎞ 떨어진 대야면 초입에 들어서자 바람에 실려온 봄꽃 향기가 상춘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향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형색색 봄꽃을 사이에 두고 흥정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북 유일의 5일장인 군산 대야시장이 봄꽃 향기로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앵초과로 3월까지 꽃을 피우는 시클라멘을 구입한 이미숙(45)씨는 “대야시장에 이맘때쯤 오면 가는 곳마다 꽃을 진열해 놓고 파는 가게 덕분에 눈이 호사”라며 “가격까지 저렴해 해마다 봄꽃 생각이 나면 대야시장을 빼놓지 않고 찾는다”고 말했다.

대야시장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기로 유명하다. 매년 봄 화훼전문시장 부럽지 않은 꽃내음으로 문을 열어 여름엔 시원한 빙수와 고추, 마늘, 가을에는 배추와 햇밤, 겨울엔 따뜻한 붕어빵과 호떡, 군고구마 등의 먹거리를 내놓는다. 전북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한 번 찾아온 사람들이 두 번 이상 발걸음을 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시장

대야시장 내 노점을 설치한 김신근(65) 대야시장 노점상인회장이 재래김을 굽고 있다. 군산=김진영 기자

대야시장 내 노점을 설치한 김신근(65) 대야시장 노점상인회장이 재래김을 굽고 있다. 군산=김진영 기자

계절마다 주력 판매 품목이 바뀌는 이유는 상가보다 노점상이 많은 대야시장의 특징 때문이다. 전체 162개 점포 가운데 110개가 장이 서는 날에만 찾아오는 노점상이다. 이 때문에 장이 서는 전날 새벽부터 대야시장은 점포를 설치하는 상인들 행렬로 부산스럽다. 김신근(65) 대야시장 노점상인회장은 “올해로 28년째 대야시장에서 좌판을 열고 있다”며 “장이 서는 날은 전북 각지에서 손님들이 몰려와 가만 앉아 있어도 물건을 팔 수 있는 알짜배기 상권”이라고 설명했다.

노점과 점포가 공존하는 대야시장의 독특한 문화가 시작된 것은 꽤 최근 일이다. 대야시장은 1872년 군산시 옥산면에 있는 지경장이 옮겨와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호남선의 지선인 군산선이 대야를 통과하게 되면서다. 당시만 해도 소와 돼지를 주로 팔던 가축시장으로 유명했다. 평범했던 대야시장에 노점상들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즈음이다. 올해로 40년째 대야시장에서 농약사를 운영하는 최영석(63)씨는 “당시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보따리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대야시장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며 “그 당시 정착된 문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와 대야시장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명물 오일장

21일 장날을 맞은 대야시장이 전북 각지에서 몰려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군산=김진영 기자

21일 장날을 맞은 대야시장이 전북 각지에서 몰려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군산=김진영 기자

계절마다 주력 품목이 바뀌지만 5일장답게 대야시장에는 각종 생필품부터 먹거리까지 없는 게 없다. 옷 가게와 인삼, 모종, 관상수에 농기구까지 대형마트에서 찾기 힘든 제품도 대야시장에서 볼 수 있다. 먹거리 중에는 ‘꽈배기’가 명물로 꼽힌다. 대야 성당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은 꽈배기를 사 먹기 위한 사람들이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해 식어도 맛있기로 유명해 오후 3시면 재료가 모두 동이 난다.

전통시장 성공의 핵심 열쇠는 지역 사회의 관심이다. 대야시장도 이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지난 2018년부터 군산대 학생들이 제작한 엠블럼과 캐릭터, 앞치마, 조끼, 봉투 등을 지원받고 있다. 상인회도 군산대 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을 기부해 화답하고 있다. 대야 주민들 외에 익산과 김제는 물론 충남 서천에서도 사람들이 찾는 이유가 이런 노력과 무관치 않다는 게 상인들 얘기다. 최씨는 “군산은 물론 인근 다른 지역에서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대야시장에서 구입하고, 부족한 물건은 다시 5일 뒤 열리는 대야시장에서 찾는 게 생활화돼 있다”며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 시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볼거리와 음식 등 지금은 추억으로 사라진 정겨운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대야시장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전북 군산 대야시장 위치도. 그래픽= 송정근 기자

전북 군산 대야시장 위치도. 그래픽= 송정근 기자

대야시장의 도약에 군산시도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대야시장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오랜 골칫거리였던 주차장 문제 해결이다. 노점상이 다수인 특성상 장날이면 하루 300여 대 이상 차량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군산시는 2020년부터 기존 철도부지 1만527㎡에 171면의 주차장을 추가 조성했다. 또 시장 활성화를 위한 ‘와글와글 전통시장 가요제’ 등 각종 문화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김규태 군산시 전통시장활성화계장은 “대야시장의 명성이 이어질 수 있도록 오는 5월부터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내놓고, 인근 대야역과 진·출입로를 확보하는 등 접근성 확대에도 나설 방침”이라며 “사람 냄새나는 정겨운 대야시장의 역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야시장 입구 모습. 군산=김진영 기자

대야시장 입구 모습. 군산=김진영 기자



군산= 글ㆍ사진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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