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정수 확대' 학계·시민사회 적극적인데, 의원들은 소극적인 '속내'

'의원정수 확대' 학계·시민사회 적극적인데, 의원들은 소극적인 '속내'

입력
2023.03.27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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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시민사회, 꾸준히 '정수 확대' 주장
의원들, 취지 동의하면서도 눈치 보기
청년 정치인들 "정수·세비, 국민이 정해야"

편집자주

꼬집은 소금이나 설탕 따위의 양념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집어올린 양을 의미합니다. 아주 적은 양이지만 때로는 꼬집 하나에 음식 맛이 달라지듯, 이슈의 본질을 꿰뚫는 팩트 한 꼬집에 확 달라진 정치 분석을 보여드립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홍인기 기자

"국회의 의원정수는 지역구 국회의원 253명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97명을 합하여 350명으로 한다."(17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정치관계법개선소위 결의안 1·2안 중)

"국회의 의원정수는 300명으로 한다."(22일 국회 정개특위 전체회의 결의안 1~3안 중)

국회의원 정수 확대 논의가 5일 만에 없던 일이 됐다. 학계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의원정수를 늘리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음에도 '국민들의 반대' 등을 명분으로 선택지에서 제외하면서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최근 간담회와 인터뷰 등에서 지역구 축소·세비 동결 등을 전제로 '10명 증원' 방안을 거론하며 절충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오는 30일 구성될 전원위원회에서 이를 논의한다는 보장은 없다. 의원정수 확대를 포함한 선거제 개편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의원들의 진심은 무엇일까.

학계·시민사회, ①비례성 제고 ②국회 업무 충실 위해 확대해야

우선 의원정수 확대를 적극 주장하는 쪽은 학계다. 지난 1월 국회 정개특위가 실시한 전문가 공청회부터 관련 주문이 쏟아졌다. '350명으로 증원'을 제안한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 역시 위원 24명 중 16명이 학계 출신이다. 시민사회도 거들고 있다. 참여연대는 최근 "의원정수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주장했다.

이들이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는 첫 번째 이유는 비례성 제고다. 비례성이 높을수록 국민의 지지에 비례해 각 정당이 의석수를 가져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 포함)의 정당득표율은 33.35%였지만, 민주당과 위성정당이 얻은 의석은 180석(60%)에 달했다. 이러한 불비례성 해소를 위해선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야 하는데, 기존 지역구 의석을 줄이기는 어려우니 의원정수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법안 처리와 행정부 견제 등 입법부 본연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하기 위해서 증원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1987년 민주화 이후 13대 국회(1988~1992년)에서 938건에 불과했던 발의 법안 수는 20대 국회(2016~2020년)에서 2만4,000여 건으로 급증했다. 국회가 심의하는 정부 예산 규모도 1988년 18조 원에서 올해 638조7,000억 원으로 35.5배 증가했다. 그사이 의원은 단 1명(299명→3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국민 57%가 증원 반대... 국회의원도 소극적

의원들도 이 같은 지적에 따른 정수 확대 주장에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다. 실제 김영배·이탄희 민주당 의원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의원정수 확대를 포함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럼에도 대다수 의원은 '반대 여론'을 들어 증원 논의에 소극적이다. 24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의원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응답이 57%였다. '의원정수를 늘려도 된다'는 응답은 9%에 불과했고, '국회의원 세비 총예산을 동결한다'는 전제를 붙이더라도 의원정수 확대에 찬성하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국회 정개특위가 지난달 실시한 정치개혁 국민 인식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당시 의원정수 확대에 동의하는 응답자는 29.1%, 동의하지 않는 응답자는 57.7%였다.

이탄희(맨 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여야 청년 정치인 모임 '정치개혁 2050'의 선거구획정 등 선거법 처리 법정시한 준수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본질은 '기득권 지키기'... 세비·특권 축소 주장도

현역의원 입장에선 비례성 제고를 위해 증원에 반대하는 여론을 돌파할 유인이 부족하다. 정치 양극화로 국회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는 가운데 의원정수 확대를 추진하기 위해선 △지역구 의석 축소 △세비 동결 △의원 특권 내려놓기 등 '뼈를 깎는 자구책'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통해 늘어나는 것은 비례대표 의석인데, '비례대표 재선'에 부정적인 한국 정치에서 현역 의원들에게 득이 될 요인이 거의 없는 셈이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수 확대를 찬성하는 의원들도 있지만, 그 얘기를 먼저 꺼냈다가 욕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눈치만 보고 있다"며 "의원이 늘어나면 그만큼 의원 1인이 갖는 권력을 나눠 갖게 되는 점도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을 일부 내려놓지 않는 이상 의원정수 확대 논의는 진행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국민들의 반대를 명분 삼아 현실에 안주하는 동안 선거제 개편 논의는 매번 제자리걸음이었다.

다만 일부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특권 내려놓기를 통해 의원정수 확대 논의를 이어가려는 움직임도 있다. 청년 정치인으로 꾸려진 초당적 모임 '정치개혁 2050'은 26일 "의원들이 받는 세비의 절반만큼이라도, 누리는 기득권과 특혜의 반의반만큼이라도 생산성이 있었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이렇게까지 바닥을 치진 않았을 것"이라며 "국회의원 세비·정수를 국민이 참여하는 제3기구에서 정하도록 하길 제안한다"고 밝혔다. '정치개혁 2050'에는 민주당 측에선 이탄희·전용기 의원과 이동학 전 청년최고위원이, 국민의힘 측에선 김용태 전 청년최고위원과 천하람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이, 정의당 측은 장혜영 의원 등이 속해 있다.

손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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