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환대받는 후쿠시마 시찰단, 한국 기자들은 피해 다닌다?

입력
2023.05.24 13:20
수정
2023.05.2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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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브리핑" 공지 후 시찰단원들 김포공항 출국
일본서도 5분간 '버스 추격전' 벌이는 등 언론 회피
시찰단장 "현장 시찰에 집중하기 위해서"

정부의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이 명단 공개 없이 시찰을 시작한 데 이어 언론 노출도 피하고 있다는 현지 취재 기자들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면 이번 시찰을 계기로 오염수 방류 명분을 쌓으려는 일본 정부는 시찰단 방문을 반색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후쿠시마 오염수 전문가 현장 시찰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이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찰단은 총 21명으로 구성됐으나 유 단장만 인천공항에서 브리핑한 후 나리타공항으로 일본에 입국했고, 다른 단원 20명은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하네다공항으로 입국했다. 연합뉴스

후쿠시마 오염수 전문가 현장 시찰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이 2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찰단은 총 21명으로 구성됐으나 유 단장만 인천공항에서 브리핑한 후 나리타공항으로 일본에 입국했고, 다른 단원 20명은 김포공항에서 출발해 하네다공항으로 입국했다. 연합뉴스


'인천공항 브리핑' 공지 후 시찰단원들 김포공항서 출국

24일 후쿠시마 시찰단 취재진의 보도 등을 종합하면, 시찰단은 일본 출국 전날인 20일 저녁 기자들에게 "출국 직전 인천공항에서 브리핑을 하겠다"며 시간과 장소를 공개했다. 그러나 출국 당일(21일) 공항에는 시찰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만 나타났다. 일본에서 시찰단을 취재 중인 신수아 MBC 기자는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전화연결에서 “(유국희) 단장은 인천-나리타공항으로 (일본에) 입국을 하고 단원들은 김포-하네다공항으로 입국했다"며 "취재진에게 비행편을 알려주지 않아 한국에서 따라간 기자, 일본 공항에서 기다리던 도쿄특파원 등 기자들 전부 다 단원들 얼굴을 아예 못 봤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오염수 시찰단 파견에 합의, 유국희 위원장을 단장으로 총 21명의 시찰단을 꾸렸다. 시찰단원 20명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전·방사선 전문가 19명,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환경 방사능 전문가 1명인데,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비판이 일었다. 시찰단 파견 자체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면죄부를 줄 수 있는 상황에서 검증 주체조차 밝히지 않는다면 국민이 조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반대로 민간 전문가마저 동행하지 못해 결과의 신뢰도에 대한 의구심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취재까지 따돌린 것이다.


"취재진-시찰단 5분간 추격전"...정부, 시찰단 뒷모습만 공개

22일 오후 일본 외무성 정문에 도착한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원들이 탄 하얀색 버스에 취재진이 다가가자 외무성 울타리 바깥쪽으로 돌아 나가고 있다. 버스는 한국·일본 기자들과 5분 넘게 추격전을 벌인 후 외무성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KBS 보도 캡처

22일 오후 일본 외무성 정문에 도착한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원들이 탄 하얀색 버스에 취재진이 다가가자 외무성 울타리 바깥쪽으로 돌아 나가고 있다. 버스는 한국·일본 기자들과 5분 넘게 추격전을 벌인 후 외무성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KBS 보도 캡처

취재진 따돌리기는 일본 현지에서도 계속됐다. 시찰단의 첫 일정이 있었던 22일 오후 외무성 기술회의에 앞서 기자들은 외무성 건물 입구에서 시찰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찰단을 태운 대형 버스가 외무성 정문에 도착해 취재진이 버스에 접근하자 버스는 정차와 이동을 반복하며 외무성 울타리 바깥을 5분 넘게 돌았다. 현장을 취재한 신수아 기자는 "달리는 버스를 따라서 일본 기자도 뛰고 한국 기자들도 뛰었다"고 전했고, 지종익 KBS 기자는 "기자들과 한바탕 추격전을 벌인 뒤 버스가 외무성 안으로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신수아 기자는 "근데 어제(23일) 원전 들어갈 때는 또 다른 버스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출국부터 현지 시찰까지 마치 '007 작전'을 벌이듯 언론 노출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언론 노출 회피에 대해 유 단장은 "현장 시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이후 22일 일본 외무성, 도쿄전력 관계자들과 기술회의를 하는 시찰 단원들의 뒷모습이 나온 사진만 언론에 공개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이 22일 일본 외무성에서 외무성, 경산성, 도쿄전력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기술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시찰단원과 관련해 공개한 유일한 사진이다. 외교부 제공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이 22일 일본 외무성에서 외무성, 경산성, 도쿄전력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기술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시찰단원과 관련해 공개한 유일한 사진이다. 외교부 제공


시찰단 반기는 일본... "수산물도 부탁하고 싶다"

반면 일본 정부는 한국의 후쿠시마 시찰을 반색하는 분위기다. 23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한 일본 정부 관계자는 시찰단에 대해 "(오염수 해양) 방류 설비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돼, 최후의 장벽은 국내외의 이해를 얻는 것"이라며 "정부 내에선 이번 시찰이 큰 진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오염수 방류에 대한 이웃 나라들의 부정적인 입장에 부담을 느끼던 일본 정부는 이번 시찰을 계기로 한국 내 부정적인 기류가 달라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수산물 수입을 재개해 달라는 언급까지 나왔다. 23일 NHK에 따르면, 노무라 데쓰로 농림수산상은 이날 각의 뒤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후쿠시마와 미야기 등 8개 현(縣·광역지자체) 모든 수산물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며 "이번 시찰은 처리수(후쿠시마 오염수)의 조사가 중심이라고 들었지만, 그것에 더해 수입제한 해제에 대해서도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시찰단이 오염수 안전성을 수긍하면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 재개를 요구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 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이 23일 현장 점검 첫날 일정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후쿠시마=최진주 특파원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 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장이 23일 현장 점검 첫날 일정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후쿠시마=최진주 특파원

23, 24일 후쿠시마 제1원전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한 시찰단은 25일 점검 결과를 토대로 심층 기술 회의와 질의응답을 진행한 뒤 26일 귀국한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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