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에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입력
2023.05.29 04:30
18면
구독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 백악관에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세 번째로 만나 협상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부채한도 상향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워싱턴 백악관에서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세 번째로 만나 협상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➀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그룹이 며칠 전 5조7,000억 원을 들여 배터리 공장을 짓는다고 알렸다. 장소는 미국 조지아주다. ➁SK온도 지난달 현대차와 6조5,000억 원을 투자해 조지아주에 배터리 생산 시설을 만들기로 했다. ③삼성SDI 역시 같은 달 미 제너럴모터스(GM)와 4조 원을 나눠 부담해 공장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LG에너지솔루션·혼다(오하이오주), SK온·포드(켄터키주, 테네시주), 삼성SDI·스텔란티스(인디애나주)까지 한국 기업들이 수십조 원을 들여 미국 곳곳에 지은 공장에서 몇 년 뒤 배터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렇듯 미국에서 공장 짓기 경쟁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가 있다. 그중 하나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나와 있는 전기차 보조금이다.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으려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에서 마지막 조립을 해야 하고 미국산 배터리 부품·광물을 일정 비율 이상 써야 한다. 전기차 값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1,000만 원은 무시할 수 없다. 차량의 가격 경쟁력 자체를 좌우할 수 있는 금액이다.

결국 미국의 보조금은 남들보다 잘하면 받는 보너스가 아니라, 미국에 공장을 세우지 않으면 시장 경쟁에서 밀어내겠다는 경고장인 셈이다. 한국 기업들로선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최근 자동차, 배터리 기업이 북미 이외 지역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발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한국을 미국은 어떻게 대하고 있나. 미 하원 마이크 갤러거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난주 "한국 역시 한국 기업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중국 정부가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이 심각한 네트워크 보안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중국 내 주요 정보시설 운영자에게 구매하지 말라는 조치를 내리자 미국이 한국 단속에 나선 것이다. 중국이 마이크론을 대체하기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에 반도체 공급을 요구하더라도 응하지 말라는 노골적인 압박이다.

미국 회사가 중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은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전방위 공격을 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미 정부는 이미 화웨이와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중국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렸고 자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일본, 네덜란드까지 동참하게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반도체칩법을 앞세운 미국이 여러 규제를 들이밀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왜 잘못 없는 한국 기업들까지 미중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지라고 등을 떠미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왜 가만히 있는가. 얼마 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대체 공급 문제가 나오자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고 기업이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미국이 압박하는데 과연 어떤 한국 기업이 알아서 결정할 수 있을까. 경쟁자 마이크론의 빈자리는 우리 기업에 좋은 기회인데도 살리지 못하게 될 판이다.


박상준 산업1부장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