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으로 돌아간 김부겸 양평 집 가봤더니... 총선 소용돌이는 그를 촌부로 남겨놓을까

입력
2023.05.30 04:30
수정
2023.05.30 09:4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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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불러 집들이 행사...마을회관 찾아가 인사도
"정치 다시 할 생각 있나" 질문에 극구 손사래
"지금 내가 말을 꺼내면..." 알 듯 모를 듯한 답변

지난해 5월 12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홍인기 기자

지난해 5월 12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치고 청사를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홍인기 기자

지난 26일 경기 양평군의 한 이층집 마당. 마을 이장과 근처 백숙집 주인, 농협 관계자 등 주민 30여 명이 둘러앉은 소박한 점심 밥상이 차려졌다. 서울서 이사 온 집주인이 동네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조촐한 집들이 자리였다.

이날 집들이의 주인공은 지난 3월 이곳에 새로 집을 짓고 이사를 온 김부겸 전 국무총리.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이곳에 전원주택을 지어 아내와 둘이서 소박한 자연생활을 하고 있다. 2년 전 대구 수성구 아파트를 처분해 마련한 집이다. 이곳에 새로 둥지를 틀기 전까지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와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중간인 서울 마포에 살았다.

불쑥 찾아온 기자에게 김 전 총리는 "어떻게 알고 이 멀리까지 왔노"라고 가볍게 타박했지만 이내 막걸리를 따라줬다. 테이블을 오가며 부지런히 이웃들의 빈 잔을 채워주던 김 전 총리는 사람들 앞에 서서 "여기에 살러 내려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집 짓고 마당을 정돈하느라 얼굴은 검게 탔지만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은 여전했다. 팔뚝이 드러나게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린 그는 귀촌을 한 여느 은퇴자처럼 보였다.

이웃들 모셔 집들이 행사... 마을회관 찾아가 인사도

행사가 파할 무렵 김 전 총리는 동년배라는 마을 이장과 함께 잔치 음식을 싸 들고 마을회관을 찾았다. 그곳엔 마당의 자리가 부족해서 다 모시지 못했다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있었다. 그는 일일이 어르신들의 안부를 묻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경로당에 언제 가입하느냐"는 한 노인의 질문에 김 전 총리는 껄껄 웃더니 "(나이) 앞에 '7자'가 들어가면 꼭 가입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그는 올해 65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멀리 보이는 이웃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새로 칠한 하얀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창고를 앞으로 어떻게 채울지 설명하는 김 전 총리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원래 그는 고향인 경북 상주에 낙향할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 수도권에 사는 딸들이 찾아오기 어려울 것 같아서 이곳에 집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2022년 5월 4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22년 5월 4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정치 현안 묻자 "지금 내가 말을 꺼내면..." 알 듯 모를 듯한 답변

그에게 넌지시 정치권과 더불어민주당 얘기를 꺼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은 폭풍전야다. 중도층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쇄신 경쟁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어서다. 민심을 얻기 위해 여권에서 '윤핵관'(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 정치인들이 2선 후퇴 카드를 내밀 경우,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의 총선 불출마와 백의종군 선언을 통해 응수할 것이란 시나리오도 나돈다. 낙향한 김 전 총리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그는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꾸준히 거명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김 전 총리에게 구원투수 역할을 기대하는 민주당 쪽 인사 30여 명이 양평 집에서 회합을 가지기도 했다.

지난해 정계 은퇴의 뜻을 내비쳤던 그는 한사코 정치 얘기를 피했다. 김 전 총리는 “내가 지금 무슨 발언을 하게 되면, 앞으로도 쭉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발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알 듯 모를 듯한 답변이었다.

정계 복귀 의사 묻자 "얼른 차 빼라"

양평을 떠나기 전 김 전 총리에게 "정치를 다시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질문에 답하는 대신 웃음을 띤 채 "얼른 차 빼라"면서 기자의 등을 떠밀었다.

김 전 총리는 극구 손사래를 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의 이름이 계속 호명된다. 중도 지향과 협치, 지역주의 극복 시도라는 김 전 총리의 궤적이 현 정치권에 결핍된 요소와 극명히 대조되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 정치인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민의 뜻에 따라 진퇴가 결정되는 운명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손을 흔들어 배웅하는, 사이드미러에 비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김 전 총리가 촌부(村夫)로 남을지는 온전히 그의 뜻에만 달린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평 이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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