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상 독립성이 독 됐나... 자정능력 약화된 선관위 '자녀채용' 의혹으로 최대 위기

입력
2023.05.31 04:30
3면
구독

선관위, 사실상 '치외법권' 지대서 각종 논란 속출
상시적 외부 감시·통제 강화 및 조직 축소 의견 제기
"독립기구 약화 안돼...정치외압 배제해야" 신중론도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30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개혁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과천=뉴스1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30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관위 개혁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과천=뉴스1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30일 '직원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당사자에 대한 수사의뢰 가능성까지 열어둔 것은 헌법상 독립기구로서 선관위 위상이 이미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전·현직 고위직을 비롯해 4·5급 직원까지 자녀 특혜 채용 의혹 대상자가 10명 이상으로 불어난 초유의 사태는 자칫하면 검경의 수사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선관위가 그간 헌법기관의 독립성을 '방패막이'로 외부감시를 회피해 온 것이 결과적으로 내부 자정 능력 약화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선관위는 헌법 114조에 명시된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설치된 헌법상 독립기구다. 선관위는 그간 이 조항을 근거로 감사원의 감찰 범위에 헌법기관이 명시돼 있지 않고, 국가공무원법에 선관위가 행정부의 인사사무 감사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점을 내세워 외부 감시에서 비켜 왔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치러진 지난 대선 사전투표 과정에서 '소쿠리 투표함' 논란이 불거졌을 때 선관위가 헌법이 보장하는 중립성과 공정성 저해를 내세워 감사원의 직무감찰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명분에서였다.

'정치 중립성' 논란 자초한 선관위... 합동조사 및 외부수혈 검토

이처럼 선관위가 '치외법권' 지대에 놓이면서 약화된 자정능력은 이번에 불거진 '특혜 채용' 의혹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불거진 논란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북한 해킹 시도와 관련한 국가정보원과 정부의 보안 점검 권고를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거부했던 일이다. 선관위는 북한의 사이버 위협을 우려하는 여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고서야 뒤늦게 국정원,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함께 합동 점검을 받기로 입장을 바꿨다.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야당이었던 국민의힘 쪽에서 이런 문제제기가 많았다. 가령 2020년 총선 당시 야당이던 미래통합당의 '민생파탄' 투표 독려 피켓은 불허하고,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의 '적폐청산' 문구는 허용하면서 정치적 편향 논란이 불거졌다. 2019년 상임위원 임명 과정부터 논란이 됐던 문재인 대선 캠프 특보 출신인 조해주 전 상임위원은 임기를 마친 2021년 1월 재임용을 시도하다 비난 여론이 커지자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

선관위의 조직·인사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 목소리가 이번 특혜 채용 논란을 기점으로 분출하는 것은 선관위 내부의 자정능력이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그간 외부기관의 감시에 배타적 태도를 취해 온 선관위가 이날 국민권익위원회와의 합동조사를 검토하고, 사무총장 인선을 '외부 수혈'하는 방안까지 고심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은 이날 긴급 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을 만나 "(권익위의 합동조사 제안을) 내부적으로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선관위도 외부감시 예외 없어야"..."독립성 보장 방안 고심" 반론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만희(가운데) 의원과 정우택(오른쪽), 조은희 의원이 북한의 해킹 시도와 사무총장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23일 오전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해 박찬진 사무총장, 송봉섭 사무차장 등과 면담하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만희(가운데) 의원과 정우택(오른쪽), 조은희 의원이 북한의 해킹 시도와 사무총장 자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23일 오전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해 박찬진 사무총장, 송봉섭 사무차장 등과 면담하고 있다. 과천=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선관위의 '자정 기능'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외부 감시와 통제를 상시적으로 강화하고, 비대한 권한과 업무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위가 선거 때만 '반짝' 주목받는 조직이 되다 보니, 시민사회나 감찰기구, 사법기관들의 주의가 집중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당장 개헌이 쉽지 않지만, 일반 공직사회에 준하는 내부 감찰이나 외부 견제 장치들이 가동돼야 한다"고 말했다.

매 정권마다 반복되는 선관위원 등 구성원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 해소도 시급하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관위원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되더라도 내부 직원의 중립성 의지가 강하면 내부통제가 될 텐데, 둘 다 안 되는 상황"이라며 "(내부직원 자격을) 3년간 정당 활동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정하는 등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선관위가 선거관리라는 본연의 목적에 집중할 수 있도록 헌법기관으로서의 독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관위의 독립기구로서의 특성이 무너지거나 약화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되는 게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될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선관위 개선은 정치적 외압에 휩쓸리지 않는 상태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순 기자
손영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