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aS 기업 최고성장책임자는 매출·이익 대신 '이 지표'를 봅니다

SaaS 기업 최고성장책임자는 매출·이익 대신 '이 지표'를 봅니다

입력
2023.06.0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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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스타트업엔 유난히 다양한 C레벨(분야별 최고 책임자)이 있습니다. 강점을 가지려는 분야에 최고 책임자를 두기 때문입니다. C레벨을 보면 스타트업의 지향점도 한 눈에 알 수 있죠. 스타트업을 취재하는 이현주 기자가 한 달에 두 번, 개성 넘치는 C레벨들을 만나 그들의 비전과 고민을 듣고 독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⑬박지환 마켓보로 CGO

마케팅 업계엔 '지갑 점유율'이라는 말이 있다. 시장 점유율이 한 기업의 매출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면, 지갑 점유율은 한 고객의 지출 가능한 소비에서 특정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지불하는 비중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한 달 동안 패스트푸드에 쓰는 돈이 7만원이라 칠 때, 버거킹에 쓰는 돈이 3만 5,000원이라면, 버거킹의 지갑 점유율은 50%인 셈이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사스) 기업이라면 이 지갑 점유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스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금액을 정기적으로 내면서 구독하는 방식이다. 고객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료로 소프트웨어를 구독할 것인지가 사스 기업의 성장에 중요한 열쇠인 셈이다. 고객의 지갑으로부터 다달이 또는 매년 이용료를 장기적으로 가져오는 것이 핵심이다.

식자재 유통 시장에 뛰어든 사스 기업인 마켓보로 역시 이런 지점을 고민한다. 마켓보로가 운영하는 서비스 '마켓봄'은 도매상-유통사-식당 등 식자재 유통 경로에서 벌어지는 수주와 발주, 대금 정산, 재고 등을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다. 과거엔 전화, 메신저, 문자로 수주나 발주를 하던 상인이나 식당 주인이 이들의 고객이다. 그래서 마켓봄을 이용하는 유료 고객이 얼마나 늘어나는지가 마켓보로의 성장과 직결돼 있다. 마켓보로는 그래서 최고경영진에 '성장'(growth)을 책임지는 C레벨을 두고 있다. 바로 박지환 최고성장책임자(CGO·Chief Growth Officer)다.


박지환 마켓보로 최고성장책임자(CGO)가 4월 27일 경기 성남시 마켓보로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박지환 마켓보로 최고성장책임자(CGO)가 4월 27일 경기 성남시 마켓보로 사무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최고성장책임자(CGO)는 다른 업계에서도 매우 드문 직책입니다. 구체적 역할이 무엇인가요?

"저는 마켓보로에서 식자재 유통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마켓봄'의 성장과 안정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서비스의 성장과 관련된 지표들을 기반으로 조직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핵심성과지표(KPI)도 관리하고 있죠."

-보통 성장과 관련된 지표라고 하면 매출이나 영업이익의 증가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기업 대 기업(B2B) 서비스형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보편적인 성장 지표들이 있습니다. 우선 저희 소프트웨어 고객 중 무료회원이 유료회원으로 바뀌는 '유료 전환율'과 거래를 중지하는 '이탈률'을 중요하게 봅니다. 좀 더 시장에 특화된 지표는 고객들의 거래액과 거래량을 볼 수 있는 총매출액(GMV·Gross Merchandise Volume)입니다. 아울러 주요 프랜차이즈 고객사의 본사, 또 이들의 거래처인 소상공인, 식당, 대리점 등의 규모도 파악합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누적거래액이 4조 6,000억원을 돌파했고, 거래처도 6만 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꽤 큰 규모의 숫자입니다.

"도매에서 유통사, 유통사에서 식당까지, 식자재 유통의 파이프라인을 저희가 서비스로 관리하고 있다 보니, 거래액이 제법 큰 편입니다. 또 지난해 1년간 비대면 영업조직을 신설한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개시하면서 신규고객들도 유치했죠."

박지환 CGO가 마켓보로 직원들과 라운지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박지환 CGO가 마켓보로 직원들과 라운지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성장을 담당하는 CGO실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합니다.

"저희는 '사스 그로스'(SaaS Growth) 조직입니다. 사스 그로스는 저희 소프트웨어를 이용할 잠재 고객을 만들고, 이들을 유료 고객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다양한 방법의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선 SDR(Sales Development Representative)이라는 역할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신규 고객을 발굴을 담당하죠. 오프라인에서 직접 고객을 만나는 대면 영업을 통해 계약을 완성하는 영업, 전화나 원격 채팅을 수단으로 쓰는 비대면 영업을 수행합니다. 이 외에 고객경험(CX·Customer Experience) 담당자들은 고객들이 저희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CGO 직책을 맡게 된 이후 실제 얼마나 성장을 견인하셨나요?

"숫자로 정리해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2021년 대비 2022년 고객 이탈률이 70% 감소했습니다. 신규 유료고객은 1.6배 증가했구요. 그리고 실적이 있는 거래처 숫자가 누적으로 4.2배 성장했습니다. 누적 거래액은 3.2배 늘었습니다. 영업 조직을 신설해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강화하고, 공격적인 영업이 가능하도록 전국으로 영업망을 확대한 게 1년 사이 성과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대면영업조직은 어떤 일을 하나요? 오프라인 거래에 익숙한 도소매 상인들에게 디지털 서비스를 권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먼저 우리나라 대표 식자재 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에 마켓보로 고객센터를 만들었습니다. 여기를 기점으로 처음 대면영업이란 것을 시도해본 거죠. 아무래도 연령대가 높은 상인들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워 쓰는데 다소 소극적입니다. 처음엔 저희를 잡상인처럼 보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래도 대여섯 번 꾸준히 방문하면서, 저희 서비스와 상관 없는 일이라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드렸습니다. 예를 들면 매장에 인터넷 연결도 해드리고, 비좁은 공간 정리도 해드렸어요. 이런 식으로 라포(친밀감과 신뢰감)를 쌓았더니, 이제는 가락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먼저 저희를 반겨주십니다."

-그런 도소매 상인이나 식당 주인들이 어떻게 마켓봄의 고객이 된 건가요?

"쉽게 돈가스집 사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식자재를 주문해야 하는데 식당이 작은 규모면 보통 온라인 주문을 하든지 식자재 마트에 가서 직접 사곤 하죠. 그런데 식당이 일정 규모 이상이라면 사장이 식자재 유통사로 매일 전화로 주문을 넣거나, 문자 또는 카카오톡을 보냅니다. 식자재 유통사 입장에선 돈가스집 사장 같은 고객이 100여군데가 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통 유통사 직원 4명이 다음날 새벽에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서 저녁 9시부터 밤 12시까지 3, 4시간 동안 전화, 문자, 카카오톡으로 들어오는 주문을 수작업으로 정리해요. 그런데 마켓봄을 이용하면 그냥 온라인 쇼핑몰에서 장보듯이 모바일로 필요한 물건 담아서 주문하면 됩니다. 유통사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고, 수주와 발주 단계에서 종종 있었던 오류도 사라지죠."

-영세사업자들 입장에선 프로그램을 쓰는데 비용 부담이 있을 듯 합니다.

"이런 식자재 유통업계에서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가 악성채권입니다. 식당에서는 식자재를 선불로 결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외상으로 식자재를 주문한 뒤에 남은 수익금으로 갚는 경우가 많죠. 갚지 못한 미수금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마켓봄에서는 다양한 선결제기능이 있습니다. 신용카드를 등록해 놓고 간편결제를 쓸 수도 있죠. 유통사 입장에선 저희에게 소프트웨어 이용요금을 지불하는 대신 골칫덩이였던 악성채권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유통업계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 같습니다.

"마켓보로에는 정보기술(IT)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식자재유통 분야에서 15년, 20년 영업 경력을 쌓은 분들이 있습니다."

박지환 마켓보로 CGO 주요 이력

2007~2012년 네이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2012년 위시앤위시 CEO
2012~2015년 브레이브 이노베이션 부사장
2015~2016년 트레블가디언 COO
2016~2018년 이음소시어스 COO
2020~ 마켓보로 CGO

-처음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경력을 시작했고 쇼핑·여행·소개팅 및 결혼 정보 서비스와 식자재 유통 등 다양한 업계를 거쳤습니다. 의도적으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건가요?

"네이버를 퇴사한 뒤 쇼핑과 여행 등 제 생활 속에서 해결하고 싶었던 분야에서 창업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문제 해결은 됐는데, 돈의 흐름을 배제한 사업들이었죠. 한번의 매각과 실패로 의미 있는 결과는 내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난 뒤에는 이직을 할 때 일종의 체크 리스트 같은 게 생겼습니다. 우선 내가 전문가인 영역인가,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면 해당 회사에 그 영역의 전문가가 있는가를 판단하게 됐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해당 산업에서 고객의 불만이 명확한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지불하는 노력과 비용이 얼마인지, 새로운 서비스로 그 비용을 얼마나 절약해줄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하게 됐습니다. 마켓보로는 제 체크 리스트에서 대다수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회사였죠. 특히 말씀드린 것처럼 회사 내부에 식자재 유통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으로 기업의 성장을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개발자 출신들은 기본적으로 '버티기'에 강합니다. 밤새 코딩하면서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던 경험이 쌓여있기 때문이죠. 또 프로그램을 개발하다 보면 여러 기능들을 쪼개거나 모아서 다시 구조화하는 작업들을 반복해서 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을 지금 조직 운영에도 똑같이 적용하고 있어요. 고객과 시장을 쪼개서 분류하고, 가설에 따라 전략을 짜서 수행하고 검증하곤 하죠. 또 고객들과 최일선에서 만나는 영업 전문가들과 함께 저희 제품을 개선해 나가고 시장을 키워나가는 것 자체가 매우 즐겁습니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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