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16% 폭락·수익 6500억 급감... 흔들리는 '뉴스의 제국', 왜?

입력
2023.06.06 20:00
수정
2023.06.06 20:5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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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CEO, 트럼프 옹호 등 보수화 행보에
시청률 하락, 수익 감소 등 CNN 위기
결국 릭트 CEO 사과하며 “신뢰 얻겠다”

미국 CNN 방송 전·현직 임직원 수백 명이 1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창립 43주년 기념식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EPA=애틀랜타 연합뉴스

미국 CNN 방송 전·현직 임직원 수백 명이 1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열린 창립 43주년 기념식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EPA=애틀랜타 연합뉴스

‘시청률이 떨어졌다. 이익은 줄었다. 간판스타가 밀려났다.’

5일(현지시간) ‘뉴스의 제국’ 미국 CNN방송이 처한 현실을 뉴욕타임스(NYT)는 이렇게 짚었다. 흔들리는 제국의 단면은 방송사 영향력의 바로미터인 시청률에서부터 드러난다. 워싱턴포스트(WP)는 CNN의 지난달 황금시간대 시청률이 전달 대비 16%나 떨어졌다고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을 인용해 보도했다.

가장 큰 이유는 시청자들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논조 변화 때문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진단했다. CNN의 주요 시청자들은 민주당 지지층이다. 지난해 4월 취임한 크리스 릭트 최고경영자(CEO)는 "편향 보도를 줄여 시청자 풀을 확대하겠다"며 공화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 보도를 줄였다. 결과는 실패였다. 올해 1분기 시청률은 CNN이 트럼프 정권과 각을 세웠던 2020년보다 30% 이상 감소했다. WP는 "역사적인 시청률 하락"이라고 했다.

수익도 급감했다. CNN은 지난해 7억5,000만 달러(약 9,802억 원)의 이익을 냈다. 릭트 CEO가 취임하기 전엔 연평균 이익이 수년간 10억 달러였다. 2021년엔 12억5,000만 달러를 찍었다. 그는 5일 사과했다.

CNN 위기, 새 CEO의 ‘우클릭’이 불렀다?

크리스 릭트 미국 CNN방송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열린 CNN 히어로즈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크리스 릭트 미국 CNN방송 최고경영자(CEO)가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열린 CNN 히어로즈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시사잡지 디애틀랜틱이 2일 릭트 CEO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내보낸 ‘CNN 내부의 멜트다운(원자로의 노심이 녹은 것·치명적 붕괴)’이라는 보도는 CNN을 발칵 뒤집었다.

CNN이 지난달 트럼프 전 대통령의 ‘타운홀 미팅’을 독점 생중계한 것은 릭트 CEO의 가장 큰 실책으로 꼽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방송에서 자신의 성폭력 의혹 등에 대한 변론을 일방적으로 쏟아냈다. CNN은 팩트 체크를 하지 않았고, "시청률을 위해 거짓말을 생중계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릭트 CEO는 타운홀 미팅 시청자가 310만 명으로 평소(약 71만 명)보다 4배 이상 많았다고 주장하면서 “내 결정이 옳았다”고 디애틀랜틱에 강변했다. 그러나 타운홀 미팅 생중계 이틀 만에 시청자는 약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뉴스 프로듀서 출신인 릭트는 CBS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 '모닝쇼'의 시청률을 끌어올린 공으로 CNN에 투입됐다. 특기를 살려 아침 프로그램 개편으로 승부를 보려 했지만, CNN 뉴스 소비자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성차별 발언으로 해고된 간판 앵커 돈 레몬의 '가벼운 입 리스크'를 알면서도 기용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직원들의 민심도 얻지 못했다. CEO 사무실은 뉴스룸과 같은 층에 있었는데, 그는 취임 직후 다른 층으로 옮겼다. "소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고 WP는 보도했다.

내부 반발에… 결국 고개 숙였다

2022년 2월 미국 애틀랜타 CNN센터 입구에 CNN 로고가 설치돼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2022년 2월 미국 애틀랜타 CNN센터 입구에 CNN 로고가 설치돼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버티던 릭트 CEO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모든 직원들에게 사과하면서 "(신뢰를 얻기 위해) 지옥처럼 싸우겠다”고 했다. 사무실도 다시 뉴스룸이 있는 층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CNN의 좌충우돌을 바라보는 언론학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미국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의 빌 그루스킨 교수는 “훈련된 물개가 릭트보다 CNN을 더 잘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디애틀랜틱 인터뷰를 읽고 나면 물개에게 한 번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영국 가디언에 말했다.

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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