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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업

졸업장 없는 ‘무근본’ 셰프, 용리단길의 핫플 제조기가 되기까지 - 김훈 맨땅브레이커 상편

김훈 셰프 Vol.1

3만키로 여행길, 타코집에서 찾은 미래, 경제학도 어느날 칼을 잡다

2023.06.14

김훈 셰프
쌤쌤쌤, 테디뵈르하우스 김훈 셰프

“자취 경력 6년 차로 할 수 있는
한식 요리가 뭐 그리 다양했겠어요.
근데 외국인들이 그걸 너무 좋아해주는 거예요.
칼을 들고 여행 다니는 게 재밌었어요.
음식의 힘은 세계 어디에서든 통하더라고요.

사람의 얼굴에 퍼지는 행복감을 보는 거,
요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더라고요.
그건 아마 셰프가 됐든 주부가 됐든,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똑같이 느끼는 감정일 거예요.”

오늘의 커리어 포인트
  • 돈이 없어도 카우치서핑
  • 회계고시생에서 요리사로
  • 무자격증 & 무졸업증
  • 전세계로부터 영감을
오직 커리업에서, 오늘의 뷰 포인트
  • 호주 요리사 시절
  • 미셰린 레스토랑 요리사 시절
  • 돌려 돌려 훈그리 지구본
  • 태국 음식접 SAAP(쌉) 갤러리

졸업장 하나 없던 ‘무근본’, 길 위의 요리사
서울 한복판에 샌프란시스코와 파리 소환, 연매출 100억 찍기까지

고층 빌딩이 즐비한 서울 용산 대로변을 살짝 빗겨 난 골목, 붉은 천막 아래 햇살이 쏟아지는 이곳의 테라스에 다다르면, 어디선가 태평양의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듯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정취를 그대로 옮겨놓은 레스토랑 ‘SAM SAM SAM’(이하 쌤쌤쌤)은 성수, 한남에 이어 지금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동네, 용리단길의 터줏대감이자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습니다.

소위 서울 '핫플' 10곳 중 8곳은 반짝 등장했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집니다. 그 치열한 도시 한복판에서 이곳은 2년째 평균 웨이팅이 2시간이에요. 앞으로도 대기줄의 기세가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근성 있는 핫플’이죠.

샘샘샘 전경 테디뵈르하우스 전경

‘쌤쌤쌤’을 끼고 코너를 돌아볼까요. 이번엔 프랑스의 파리가 아담하게 펼쳐집니다. 고소한 버터 냄새를 따라가 만난 이곳은 크루아상 전문 베이커리 ‘테디뵈르 하우스’인데요. 잠봉햄을 넣은 페이스트리부터, 도넛처럼 설탕을 입혀 구운 크루아상까지 독특한 디저트빵들이 별세계처럼 펼쳐져요. 빵 덕후와 카페 순례자들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은 이곳 역시 최근 용리단길 웨이팅 기세에 한껏 불을 질렀죠.

신용산을 대표하는 이 두 개의 대장 브랜드를 만든 건 사실 한 사람인데요. 이 인물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완벽한 청춘영화 한 편이 뚝딱입니다. 요리학교 졸업장 하나 없이 7평짜리 식당의 주방보조로 시작해,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까지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르꼬르동블루 출신 셰프들이 즐비했던 파인다이닝의 주방에서 그는 ‘무(無) 근본 아웃사이더’였답니다. 주방용 칼 하나 들고는 전 세계를 유랑하며, 마음에 드는 식당을 만날 때마다 ‘나 일 좀 시켜달라’며 막무가내로 들이밀었죠. 그렇게 전 세계의 음식 문화를 한껏 빨아들였고, ‘잡식성’으로 덩치를 불린 감각은 그를 남다른 식음료(F&B) 기획자로 만들어줬어요.

자신만의 궤도를 맨땅에 헤딩하며 개척한 퍼스트 펭귄의 커리어 이야기, ‘맨땅 브레이커’의 3호 인터뷰이는 연 매출 100억을 달성한 용리단길의 외식업자, 김훈 셰프입니다.

커리어 그래프

Chapter1. 고시 때려치우고 떠난 세계 여행, 길 위에서 요리의 묘미를 알다

#S1. 고시를 그만두고 나니, 남은 건 ‘실패자’ 꼬리표

두 평짜리 좁은 고시원에서 스물셋 스물넷, 두 해를 났다.

숫자와의 씨름이 죽을 만큼 괴로웠지만 회계사 시험에 목숨을 건 시절이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안 맞는 공부였다. 그럼에도 김훈(이하 훈)은 지독히도 성실했다. 학원에선 제일 먼저 문 따고 들어가, 가장 늦게 짐 싸 나오는 모범생이었다. 하루 4시간 넘겨 자 본 적이 없었다.

그 2년, 연달아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나서야 훈은 깨달았다.

“이건 2년이 아니라, 20년을 해도 안 되겠구나.”

온 힘을 쏟아봤기에, 포기하는 마음엔 앙금도 없었다.

“나는 명백하게 실패한 사람이구나, 그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창피해서 사람들을 어떻게 만나지?” (김훈)

스물다섯. ‘실패’라는 그 침침한 오명을 인생에 끼얹기엔 참 싱싱한 나이. 스물다섯 훈씨는 도피가 간절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실패의 오명 속에 질식해 죽을 것 같았거든요.

고시원을 나오자마자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샀어요.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서의 다른 삶이 절박했습니다.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가게 대표 메뉴인 잠봉뵈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막상 떠나려고 보니 모아둔 돈도 없었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요. 찾아보니 그처럼 곤궁한 배낭 여행객들을 위해 자기 집 소파를 공짜로 빌려주는 이들이 있었어요. 그걸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이라 부른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죠.

첫 행선지, 뉴욕에서 하룻밤 재워줄 호스트를 찾아 헤맸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동양인 남자 여행객은 호스트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없는 게스트였거든요.

궁리 끝에 수를 냈습니다. 메일에 이렇게 적었죠.

‘너 혹시 한국 음식 먹어봤어? 내가 맛있는 코리안 전통밥상을 차려줄게. 대신 네 소파를 빌려줘!’

오방색이 두루 담긴 빛깔 좋은 한식 사진을 정성껏 첨부해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그때부터 카우치 수락률이 수직상승했죠. 5년 동안 그의 자취 요리를 책임졌던 주방용 칼을 서둘러 캐리어에 챙겨 넣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이 훗날 인생 방향타를 얼마나 틀어 놓게 될지 스물다섯의 김훈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죠.

“자취 경력 6년 차로 할 수 있는 한식 요리가 뭐 그리 다양했겠어요. 근데 외국인들이 그걸 너무 좋아해주는 거예요. 어딜 가서 누구를 만나든, 같이 뭘 먹고 나면 금방 친해지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칼을 들고 여행 다니는 게 재밌었어요. 어쩌면 요리사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의 힘은 세계 어디에서든 통하더라고요.” (김훈)

카우치 서핑은 저만의 방법으로 저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이었죠.
카우치 서핑은 저만의 방법으로 저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법이었죠

그렇게 그는 역마살이 도진 사람처럼, 주방칼을 들고 전 세계를 유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즐겨 만드는 메뉴는 달달한 간장 불고기와 샐러드 느낌의 비빔밥이었죠. 매운맛이 조금만 들어가도 혀를 내두르는 외국인들의 입맛을 배려한 요리였습니다.

“사람의 얼굴에 퍼지는 행복감을 보는 거, 요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더라고요. 그건 아마 셰프가 됐든 주부가 됐든, 요리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똑같이 느끼는 감정일 거예요.” (김훈)

‘먹는다’는 행위는 아주 원초적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매일 빼놓지 않고 하는 것,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행위죠. 그래서 누군가를 먹인다는 건, 무척이나 다정하고 친밀한 정(情)의 표현이에요. 한 울타리에 속한 이들을 이르는 말, ‘식구(食口)’가 ‘한 집에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만 봐도 그렇죠.

훈씨는 이때 자신이 마치 마법사가 된 것 같았답니다. 낯선 이방인의 마음을 열고 들어가 즉각적인 행복을 선사할 수 있다는 건 정말로 마법 같은 일이었거든요.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쌤쌤쌤의 매장 컨셉은 미국(샌프란시스코), 함께 경영하는 인근의 베이커리 카페 테디뵈르 하우스의 매장 컨셉은 프랑스(파리)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쌤쌤쌤의 매장 컨셉은 미국(샌프란시스코), 함께 경영하는 인근의 베이커리 카페 테디뵈르 하우스의 매장 컨셉은 프랑스(파리)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요리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안고 귀국한 그가 곧장 향한 곳은 요리학교나 요리학원이 아니었어요. 자취방에서 가장 가까웠던 10평 남짓의 작은 파스타 레스토랑이었죠. 첫 식당에서 만난 메인 셰프는 서른도 안 된 서너살 터울의 또래 형이었습니다. 훈씨는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지만, 셰프 형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전수해줬답니다.

작은 곳이라 직접 해보며 배울 여지가 더 많을 거라는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어요. 주방뿐 아니라 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부지런히 배우며 훈씨는 깨달았죠. ‘어? 나 진짜로 요리를 재미있어 하네?’

“학교보다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게 훨씬 많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실은 학원 갈 형편도 안 됐고요. 늦게 시작했더라도 감각만 있다면 비전공자라는 약점 같은 건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거 같아요. 파스타집부터 퓨전 일식집, 브런치 가게, 고깃집까지 진짜 다양하게 일해봤죠.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트렌디한 음식 위주로 도전하면서 알게 됐어요. 결국 제가 하고 싶은 건 장사더라고요. 그저 요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요리로 장사를 하고 싶었어요.” (김훈)

#S2. 역마살은 나의 경쟁력

학기 중엔 식당 주방일을 도우며 요리법을 익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방학엔 여행길에 올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집트' 아프리카 종단 여행부터, '이스라엘~요르단' 중동 여행까지. 흔치 않은 여행지만 골라 다녔다.

그를 가장 매혹했던 건 역시 음식이었다. 처음 보는 식재료, 독특한 현지식을 만날 때마다 짜릿함을 느꼈다. 맛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면서, 흡수할 수 있는 감각도 다양해졌다. 맛을 보는 안목 역시 점점 더 환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가 하는 여행은 그냥 여행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맛을 배우고 흡수하는 공부였다.

훈씨는 여행 중 마음에 드는 식당을 만날 때마다 무작정 주방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들이댔죠.

‘하루나 이틀만 일손을 돕고 싶다. 어떻게 이런 음식이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주방의 분위기를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

과연 이런 방법이 먹힐까 싶죠? 근데 거절하는 사람이 없었대요. 열이면 열, 선뜻 주방 문을 열어줬습니다. 자기 음식 맛있다는 찬사 앞에 마음이 열리지 않을 요리사는 없다는 걸, 훈씨는 그때 다시 한번 느꼈죠. 그렇게 다국적의 레시피를 어깨 너머로 배웠습니다. 어느샌가 훈씨의 여행 짐가방엔 조리화와 칼자루가 붙박이로 갖춰져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에 드는 식당을 만나면 바로 일을 배울 수 있도록 항상 엔진을 켜둔 상태였죠.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가게 대표 메뉴인 잠봉뵈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테디뵈르하우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아프리카에서는 ‘탄자니안 팬케이크’ 가게에서 일을 했어요. 말이 팬케이크지 반죽에 밀가루가 아니라 쌀가루를 썼거든요. 우리나라의 빈대떡과 진짜 비슷했어요.

신기한 게 쌀로 만들어 유독 쫄깃한 짜파티에다가, 으깬 감자나 카레를 넣더라고요. 프랑스의 크레페 같기도 했어요. 식사 대용으로 간편하게 먹는 음식이었는데, 이게 정말 기막히게 맛있는 거예요.” (김훈)

값싼 호스텔 2층 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한 끼 식사에 수백 달러는 아끼지 않고 썼습니다. 먹는 데엔 돈을 아끼지 않았죠. 지금껏 먹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는 건, 요리사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자 공부였거든요.

병아리콩 등을 으깨 만든 중동의 전통음식 후무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GettyImageBank)

병아리콩 등을 으깨 만든 중동의 전통음식 후무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GettyImageBank)

“중동에서 후무스를 처음 먹었을 때 충격을 잊지 못해요. 병아리콩도 처음 봤지만, 콩으로 만든 스프레드가 이렇게 맛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지금이야 한국에서도 후무스를 접할 수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국내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그 맛을 잊지 못해 한국에 돌아와서도 병아리콩과 참깨 페이스트를 찾아다녔죠. 자취방에서 혼자 만들어보고 ‘이 맛이 아닌데’하면서 좌절하고… 그게 다 공부였죠.” (김훈)

커리어 그래프

Chapter2. 요리학교 졸업장 따위… 무턱대고 물었다 ‘나 여기서 일해도 돼?’

#S3. 요리 전공한 적 없어, 그래서 뭐? 그게 대순가?

201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짐을 챙겨 호주로 떠났다. 직업 요리사의 마음가짐으로 내딛는 첫 발이었다. 그때만 해도 훈의 이력서는 보잘것이 없었다. ‘요리학과 졸업’이란 그 흔한 경력조차 없었으니까.

시드니의 한 호텔 뷔페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남들보다 두 시간 일찍 출근해 재료 손질에 손을 보탰다. 서툰 호주 영어로 드문드문 셰프들에게 말을 걸었다.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요리 일을 시켜달라고.

그러다 어느 날 기회가 왔다. 사고로 장기 결근하게 된 한 요리사의 빈 자리를 누군가 채워야 했을 때, 셰프들은 자연스럽게 훈을 바라 봤다.

‘기회의 뒤통수엔 머리카락이 없어서 지나고 나면 붙잡을 수 없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서 냉큼 달려들어 붙잡았다, 그 기회가 뒤통수를 보이기 전에.

“호주로 간 건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학교 르꼬르동블루가 있기 때문이었어요. 한 학기에 학비만 1억 원 가까이 들더라고요. 초반 몇년 여러 주방을 경험하며 기본기를 다지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학교에 들어가려 했죠.” (김훈)

그는 르꼬르동블루의 졸업장이 필요했고 그 이유는 하나였어요. ‘한국식 이력서’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

대졸 사원을 공채로 채용하는 식음료(F&B) 기업들은 경험보단 이력을 요구했습니다. ‘어떤 학교를 졸업했다’는 한 줄의 스펙이, 실제로 그가 가진 역량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죠.

“처음엔 호주에 갈 때만 해도, 요리유학을 마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막상 일을 하다보니 외국에서 요리사로 사는 삶이 나쁘지 않은 거예요. ‘할 만한데? 치고 올라갈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1년 정도 일하고 나니, 르꼬르동블루 출신 요리사들이 제 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죠. 그들을 보니 요리를 배워본 적 없는 제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거예요. 비싼 학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요리학교에 가진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어요. 차라리 그 돈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이 먹어보는데 써야겠다, 생각했죠.”(김훈)

전 세계 이민자들이 모여드는 ‘멜팅팟(melting pot)’의 나라 호주에서 2년을 보내고 나니, 한국만의 고루한 정규 분포,‘K정상성’에 대한 강박이 각질 떨어지듯 자연스레 벗겨져 나갔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드니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게이들의 성지이자, 전 세계 청년들이 모여드는 워킹홀리데이 본거지였는데요. 젊은 것, 새로운 것, 이질적인 것들이 끊임없이 부어지고 섞이는 이 도시의 자유분방한 정취가 그의 요리 철학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죠.

그래서였을까요. 때로는 엄격한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매일 정해진 요리를, 정량에 맞게, 똑같은 레시피에 맞춰서 규격화된 맛으로 뽑아 내야 했으니까요.

그때, 창작욕이 해소되지 않아 헛헛했던 마음을 달래 준 게 ‘스태프 밀(staff meal, 직원식)’이었다고 해요.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가게 대표 메뉴인 잠봉뵈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가게 대표 메뉴인 잠봉뵈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훈씨가 일했던 시드니 어반 호텔 레스토랑 ‘큐스테이션’의 주방엔 전 세계인들이 모여 있었어요. 이민 2세 출신 캐나다인들은 물론, 중국인, 일본인, 싱가포르인, 홍콩인, 태국인, 베트남인까지… 출신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국적이 다양했죠.

그만큼 타고난 입맛이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뼈마디가 시릴 만큼 육체노동이 고된 주방에서 한바탕 씨름을 끝내고 함께 먹는 직원 점심, 그만큼 소중한 끼니가 또 있을까요. 입맛은 각자 다 다른데 요리사들이니만큼 맛에 대한 기준은 높고. 이런 이들을 모두 만족시킬 직원식을 만드는 건 초고난도 미션이었죠.

“스태프 밀을 맡으라고 하면 싫어하는 셰프가 대부분이에요. 저는 항상 먼저 손 들고 나서서 시켜달라고 했죠. 제 요리 감각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주로 제가 좋아하는 한식과 일식을 기반으로 한 아시안 테이스트 퓨전 요리를 만들었죠.

출근하자마자 ‘훈, 오늘 스태프 밀 메뉴는 뭐야?’부터 묻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한번도 경험치 못한 방식으로 풀어낸 요리들이니까, 그들도 먹으면서 재밌는 거예요. (하하하)” (김훈)

김훈셰프가 호주 시절 주방 동료들을 위해 만든 스태프 밀 김훈셰프가 호주 시절 주방 동료들을 위해 만든 스태프 밀

김훈 셰프가 시드니 어번 호텔에 위치한 레스토랑 <큐스테이션>에서 근무하던 시절 주방 동료들을 위해 만든 직원식(staff meal)

스태프 밀의 제1원칙은 ‘냉장고에 남아있는 식재료부터 털어낸다’는 거였는데요. 마침 그때 한국에서는 유명 셰프들이 대거 등장해 스타의 냉장고를 통째로 옮겨와 ‘냉장고 파먹기’로 일품요리를 선보이는 프로그램(<냉장고를 부탁해>)이 한창 인기였어요. 훈씨가 매일 만들던 스태프 밀이야말로 살아있는 ‘냉장고를 부탁해’였죠.

먹어 없애야 하는 재료가 정해져있었던 만큼, 특정 식자재에 대한 ‘집중 스터디’가 되기도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스태프 밀은 ‘버터 라멘’이었어요. 면은 라멘인데 소스를 특이하게 버터 베이스로 만들어 봤어요.

일본의 츠케멘처럼 소스랑 면을 따로 주고 기호에 맞게 찍어 먹게 했죠. 우리나라에서 한창 유행했던 간장버터계란밥 레시피를 보면, 버터랑 탄수화물 사이의 조화가 예술이잖아요. 거기서 착안을 한 거예요. 면을 다 먹고 나면 크루아상을 구워서 남은 소스에 찍어 먹게 했죠. ”

라멘 면을 국물에 찍어 먹는 방식의 일본의 국수 요리 쓰케멘(츠케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GettyImageBank) 라멘 면을 국물에 찍어 먹는 방식의 일본의 국수 요리 쓰케멘(츠케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GettyImageBank)

라멘 면을 국물에 찍어 먹는 방식의 일본의 국수 요리 쓰케멘(사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과 쌤쌤쌤의 대표 메뉴 ‘잠봉뵈르 파스타’.

“나중엔 다른 레스토랑에까지 소문이 나서 이웃 동네 셰프들까지 제가 만든 직원식을 먹으러 왔어요. ‘훈이라는 친구가 스태프 밀을 재밌게 한다며?’라는 소문을 듣고 온 거였죠.” (김훈)

이때 만든 ‘버터 라멘’은 5년 후, 그가 차린 레스토랑 ‘쌤쌤쌤’의 대표 메뉴인 ‘잠봉뵈르 파스타’의 모티브가 되죠. 전 세계의 ‘맛잘알’들이 모인 동료들 밥상이야말로, 최고의 실험실이었던 셈이에요.

#S4. 일해봐야 알지,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은 뭐가 그리 다른지

다음 행선지는 샌프란시스코였다. 호주에서 미국으로 요리를 배우러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은 한사코 말렸다. 프랑스, 이탈리아도 아니고 도대체 왜 미국이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법도 했다. ‘미국 음식엔 근본이 없다’는 편견이 파다했으니.

훈의 생각은 달랐다. ‘섞임의 에너지’가 얼마나 폭발적일 수 있는지, 그 속에서 얼마나 창의적인 음식들이 새롭게 등장할 수 있는지 익히 알았으니 말이다. 실제로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에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식의 도시다.

다짜고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퀸스(QUINCE)’를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한 끼 디너 코스가 1,000달러(약 120만 원)을 호가하는 초고급 파인다이닝이었다. 그래, 요리사라면 한 번쯤은 ‘최고의 대가’가 일하는 주방을 경험해봐야 하지 않겠어?

‘될 리가 없다’는 마음으로 주뼛거리며 들어섰지만, 저 멀리 언뜻 주방이 보이자 저도 모르게 술술 이런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당신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서 한국에서부터 찾아왔습니다.”

그 무모함 속에서 간절함을 봤던 것일까요. 메인셰프는 그에게 사흘을 줬습니다. 비싼 취업비자를 내주기 전에 그가 가진 심지가 얼마나 단단한지 시험해보기로 한 거죠. 3일간의 테스트가 끝나고 마침내 합격 통보를 받던 순간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날의 일기장엔 이런 메모가 적혔죠.

마침내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았다. 트럼프가 외국인에게 기회를 빼앗고 추방하는 시기다. 미국에 일하러 간다고 했을 때 모두가 안 될 거라고 말했다. '불가능은 단지 도전해보지 않았다'일 뿐이란 걸 이번에도 느꼈다.

1라운드는 끝이 났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 들어왔다. 이제 시작되는 2라운드, 여기서 당당히 살아남을 차례다. 코리안 김치파워를 보여주자.

그리고 첫 출근을 하던 날, 그의 일기장엔 11가지의 다짐이 적혔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퀸스(Quince)에서 첫 출근하던 날 김훈 셰프가 일기장에 적어둔 메모 그래픽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 퀸스(Quince)에서 첫 출근하던 날 김훈 셰프가 일기장에 적어둔 메모

태어나 가장 절실한 마음으로,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실수로 접시 한 장을 깼을 때조차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세웠죠.

“정말 빡셌어요.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숨막히는 분위기였죠. 호텔 뷔페에서 일할 때와는 딴판으로 달랐어요. 거기선 속도가 가장 중요했거든요. 파인다이닝에선 ‘정확도’가 관건이었어요. 감자 껍질 하나도 대충 까는 법이 없었죠. 디시 하나하나에 장인의 디테일을 담았어요.

작은 실수라도 할라치면 메인 셰프의 불호령이 떨어졌죠. ‘여기 오는 사람들, 한끼에 1,000달러씩 내고 먹는다. 실수는 용납이 안 된다. 모든 끼니가 항상 최고여야 한다.’ 완성도에 대한 높은 기준에 매번 감탄했던 거 같아요. 그때 느꼈어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예술가구나.”(김훈)

하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최고를 만들겠다는 집념이 ‘고지식’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와도 그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밥 한 끼를 제대로 대접할 수 없었죠. 한 끼에 100만 원, 세 가족이 저녁을 한 번 먹고 나면 월급의 절반 이상이 날아가는 수준이었으니까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소수만을 위한 최고급의 요리를 하는 게, 내가 정말 원했던 길인가? 감자 껍질을 별모양으로 오려내겠다고 30분씩 쓰는 게 맞는 건가?’ 영 아닌 것 같았어요. 선택해야 했습니다. 한 점의 그림을 경이롭게 그려내는 예술가가 될 것인지, 절대 다수의 미감을 조준하는 디자이너가 될 것인지.

질문을 던졌을 때, 그 답은 이미 100% 분명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건 장사였으니까, 결론은 명확했죠. 요리사로서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는 예술가가 아니라 디자이너다, 소수를 만족시키는 비싼 요리 말고, 최대한 많은 이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보편적 요리를 해야겠구나, 하고요.

실은 미국 사회 내의 아시아인으로서의 설움도 경험했어요. 아무리 노력해봤자 여기서 난 비주류구나, 절대로 헤드 셰프가 될 순 없겠구나, 열심히 해도 한인 식당 사장 정도겠어, 미국에서 쟁취할 수 있는 기회의 한계가 명확히 보였죠.”김훈

그렇게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을 8개월 만에 그만뒀습니다. 회계사 시험을 그만둘 때처럼 이번에도 미련은 없었어요. 달랐던 건 하나, 실패도 포기도 아닌 ‘내 길이 아님을 정확히 알기에, 내 길을 가기 위한 단념’이었다는 거였죠.

커리어 그래프

Chapter3. 내가 좋은 걸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요리사에서 외식업자로

#S5. 태국 음식은 ‘우주의 맛’

미국에 살면서 김훈이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은 ‘태국 음식’이었다.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동남아 음식은 그야말로 ‘솔푸드(소울푸드)’다.

알싸한 매운맛이 간절할 때마다, 감칠맛이 도는 뜨끈한 국물이 당길 때마다 찾는다. 한인식당은 터무니없이 비싼 반면, 맛은 형편없는 경우가 많았다. 지갑 걱정없이 쉽게 찾는 음식, 태국음식은 유학생의 가난한 영혼을 달래주었다.

미국을 뜨기 전, 약 4개월 동안 태국 식당 ‘펑키 엘리펀트’에서 일했다. 양식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와는 딴판의 짜릿한 재미가 펼쳐졌다. 온갖 향신료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며 아우성을 쳤다. 그야말로 생명력이 넘치는 요리였달까.

매일 3시간씩 기차를 타고 통근하면서도 피곤하긴커녕 그저 신이 났다. ‘내가 사랑하는 맛을 요리한다는 건, 그 어느 것에도 비할 바 없는 쾌감을 주는구나.’

훈씨는 태국 음식의 맛을 ‘우주의 맛’이라 칭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풍성하고 황홀한 맛을 보여주는 세계.

똠양꿍을 처음 맛봤을 때의 충격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해요. 시고 맵고 달고 짠 맛이 혀끝에서 한번에 느껴졌죠. 식감부터 향까지 어느 요소 하나 기죽지 않는 ‘미친 생동감’에 단번에 매료됐습니다. 지금도 그의 인스타그램엔 언제나 태국 음식에 바치는 찬사가 넘쳐요.

“태국 음식에는 ‘솟구치는 힘’이 있다. 육해공 할 것 없이 모든 재료가 영양이 풍부할 뿐 아니라, 그 일대에서 자라는 채소들도 다양하고 풍부하다. 거기다 재료의 맛을 다른 차원으로 연결하는 향신료, 맛의 수준을 한 단계에 업그레이드 하는 향긋한 허브, 감칠맛을 증폭시키는 건어물과 젓갈까지… 심지어 시장 상인들이 파는 길거리 음식에서조차 이상적인 균형미가 느껴진다.”

- 김훈 세프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에서 발췌

4년간의 요리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처음으로 구상했던 국내 사업 아이템이 태국식이었던 건 어찌보면 필연이었습니다.

2019년, 그는 드디어 ‘오너 셰프’가 되어 첫 가게를 엽니다. 투자자의 제안으로 경리단길의 한 식당을 넘겨받아 태국 음식 레스토랑 ‘쌉(SAAP)’을 차렸죠.

요리사에서 외식업자로 거듭나는 게, 그토록 험난한 과정일 줄은 몰랐습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면 나름 자신 있다고 자부해왔는데, 그 바위가 수천 개로 줄지어 서서 ‘이래도 덤빌 수 있겠냐’며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답니다.

유독 트렌드가 빠르고, 경쟁이 치열한 서울 이태원 상권은 한마디로 안전하게 데뷔하기엔 쉽지 않은 무대였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며 손님 몰이에 성공했지만, 이내 다른 고민이 몰려왔어요. 한 번은 호기심에 와도, 두 번은 오지 않는 일회성 손님이 대부분이었던 거죠.

“제가 한국인 고객들의 입맛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거예요. 태국 음식이 해외 유학생들에겐 솔푸드(소울푸드)일지 몰라도, 한국 사람들한테는 그래봤자 1년에 한두 번 먹는 음식이거든요. 쌀국수야 익숙하지만 태국식 볶음면은 아직도 생소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일행 중에 특이한 향신료나 고수를 못 먹는 사람이 한 명만 섞여있어도 태국 음식점은 모임 장소에서 너무 쉽게 배제돼요. 어느 순간 쌉은 인스타에 자주 나오니까 한 번은 가지만, 두 번은 가기 힘든 식당이 되어 있었더라고요.

그렇게 배웠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SNS에서의 인기가 곧 매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반짝’ 보이다 마는 브랜드가 아니라 꾸준히 안정적으로 손님을 끌어 모으는 브랜드로 거듭나야 한다.”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가게 대표 메뉴인 잠봉뵈르 파스타를 만들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김훈 쌤쌤쌤 오너 셰프가 5월 17일 서울 용산구 쌤쌤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호된 시행착오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종일 손님이 한 팀도 들지 않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겪었습니다. 한마디로 ‘쫄딱’ 망할 뻔했죠.

이런 위기를 겪으면서 오히려 머릿속에 든 생각은 하나였어요. 얼른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겠다. 누군가의 지분 없이, 외부 투자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온전한 나만의 작품을.”

“그렇게 발품부터 팔았죠. 한남동도 성수동도 너무 비싸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그때까지 모았던 전 재산을 끌어오고, 가족들에게 빌린 돈에 은행 대출까지 싹싹 끌어와 사업 자금을 만들었어요.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 같았던 신용산에 둥지를 틀었죠.

이게 망하면 난 진짜 한강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어들어 만든 게 지금의 쌤쌤쌤이에요.”

경리단길의 쇠퇴와 코로나19의 이중 타격으로 ‘쫄딱’ 망할 뻔했던 그는 어떻게 2년만에 '용리단길'을 서울에서 가장 트렌디한 ‘외식업의 성지’로 만들었을까요?

연매출 100억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가정식 다이닝 ‘쌤쌤쌤’과 크루아상 베이커리 ‘테디뵈르 하우스’의 브랜딩 스토리를 이어지는 하편 기사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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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그래프

목차

  • Chapter1. 고시 때려치우고 떠난 세계 여행, 길 위에서 요리의 묘미를 알다
  • Chapter2. 요리학교 졸업장 따위…무턱대고 물었다 ‘나 여기서 일해도 돼?’
  • Chapter3. 내가 좋은 걸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건 아니다…요리사에서 외식업자로
  • 맨 밑으로
김훈 셰프 썸네일

김훈 셰프

용리단길에서 샌프란시스코 레스토랑 ‘SAM SAM SAM(쌤쌤썜)’과 베이커리 카페 ‘테디뵈르하우스’를 운영하는 요리사.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조리용 칼 하나 들고 떠난 세계 여행에서 요리사라는 새로운 일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