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이 넘쳐흐르는 한가위

입력
2023.09.27 16:00
수정
2023.09.27 17:19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20일 오전 대구 달서구가족센터에서 열린 나눔으로 풍성한 한가위, 노다지(노인·다문화·지역)돌봄공동체 문화체험에서 참석자들이 취약계층 측에게 전달할 다양한 전을 부치고 있다. 뉴스1

추석을 앞두고 20일 오전 대구 달서구가족센터에서 열린 나눔으로 풍성한 한가위, 노다지(노인·다문화·지역)돌봄공동체 문화체험에서 참석자들이 취약계층 측에게 전달할 다양한 전을 부치고 있다. 뉴스1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에 불패의 명장, 오기(吳起)가 있었다. 승리 비결은 병사들과의 철저한 동행이었다. 사졸들과 침식을 같이했고, 종기로 고생하는 병사가 있으면 고름까지 빨아줬다. 종기 병사의 어머니가 아들 소식을 듣고는 목 놓아 울었다. “몇 해 전 그 애 아버지도 오 장군님 은혜에 보답하려고 치열하게 싸우다 전사했는데, 이제 아들마저 잃게 생겼다”고 말했다. 오기 고사는 선행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은 걸 알더라도, 나눔과 배려를 받으면 대부분 감동을 받고 보답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26일 한덕수 총리가 비를 맞으며 서울 시내에서 아침 우유배달에 나섰다. 총리실에 따르면 독거노인 가정에 우유를 배달하는 캠페인의 일일 배달원으로 참여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다세대 주택가를 찾은 한 총리는 독거노인들에게 “정부도 항상 신경 쓰고 있으니까, 언제라도 어려우면 전화 달라”고 당부했다. 한 총리의 우유배달을 소개하는 뉴스 댓글에는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 ‘택시비도 모르는 총리가 쇼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일부 있었지만, ‘겉치레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긍정 반응이 더 많았다.

□오래전부터 나눔과 배려는 한가위 명절의 주제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유리왕조(條)에 ‘팔월 보름이면 육부(六部) 여인들이 길쌈 대회로 승패를 가린 뒤 음식을 나누며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는 내용이 있고, 중국 구당서 동이열전도 7세기 신라의 나눔과 배려 풍습을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조상들은 한가위 송편을 특별히 ‘오려 송편’이라고 불렀는데, 일찍 여무는 ‘올벼’를 거두어서 송편을 빚어 이웃끼리 정답게 나눠 먹는 전통을 이어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진영 모두 강력한 이합집산이 예고되고 있다. 한가위 명절 중 정치인들의 민심탐방 행보도 그 어느 때보다 바빠질 것이다. 속내야 뻔하지만,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는 백배 환영할 일이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의 정치적 의미가 더 강해진 셈이다. 한가위 저녁, 가족들의 도란도란 행복한 (가끔 정치 주제도 섞인) 대화가 구름 사이 비치는 달까지 울려 퍼지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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