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기지'의 죽음… 남극의 천체물리학자는 어쩌다 메탄올을 마셨나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기지'의 죽음… 남극의 천체물리학자는 어쩌다 메탄올을 마셨나

입력
2023.10.06 05:0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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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남극 기지 과학자 메탄올 중독사
겨울 남극점 인근 연구 기지서 과학자 사망
당국 "자연사" 발표… 부검 결과 "메탄올 중독"
국가 간 관할권 분쟁 탓에 촘촘한 수사 어려워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2000년 남극점(남위 90도) 인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거주지'로 불리는 아문센-스콧 기지에서 사망한 로드니 마크스(당시 32세)의 생전 모습. 남극천체물리학연구센터 제공

2000년 남극점(남위 90도) 인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거주지'로 불리는 아문센-스콧 기지에서 사망한 로드니 마크스(당시 32세)의 생전 모습. 남극천체물리학연구센터 제공

2000년 5월 11일 수은주가 영하 62도까지 떨어진 남극의 겨울. 호주 출신 로드니 마크스(당시 32세)는 불덩이처럼 뜨겁던 몸을 일으켜 방 밖으로 나왔다. 바깥은 한낮에도 태양이 지평선 위로 올라오지 않는 어둠에 물들어 있었다. 새까만 눈길도 끝없이 얼어붙어 있었다. 매서운 바람 소리까지 건물을 울렸다.

마크스는 이날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남극에서 운영하는 ‘아문센-스콧 기지’ 내 유일한 병원을 찾아갔다. 남극점(남위 90도) 인근에 위치한 이 기지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거주지’로 불린다. 남극의 관문 ‘맥머도 기지’에서도 1,500㎞나 떨어져 있고, 여름인 11~1월엔 약 250명이 거주하지만 겨울인 2~10월엔 50여 명만 이곳을 지킨다. 항공유조차 얼어붙는 추위 탓에 이 기간 거주자들은 외부와는 완전히 고립된 채 생활한다.

마크스는 이 기지에서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가 운영하는 ‘남극 망원경 및 원격 관측소(AST/RO)’를 관리했다. 평소엔 냉혹한 무지에 지식을 밝히는 과학자였으나, 이날은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조차 알지 못했다. 위장이 타들어 가는 듯했고, 눈이 참을 수 없이 예민해져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구토와 각혈, 극단적으로 빠른 호흡과 불타는 통증도 이어졌다.

2000년 로드니 마크스(당시 32세)가 사망했을 무렵,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 일대를 촬영한 항공 사진. 기지 직원들이 생활하던 반원 모양의 돔(왼쪽 위) 주변은 온통 새하얀 눈뿐이다. 현재 돔은 해체됐고, 인근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다. 위키피디아 캡처

2000년 로드니 마크스(당시 32세)가 사망했을 무렵,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 일대를 촬영한 항공 사진. 기지 직원들이 생활하던 반원 모양의 돔(왼쪽 위) 주변은 온통 새하얀 눈뿐이다. 현재 돔은 해체됐고, 인근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다. 위키피디아 캡처

이후 10여 시간가량 마크스는 세 번이나 기지 병원을 찾아갔다. 유일한 의사인 로버트 톰슨은 그에게 진정제 등을 처방했다. 그러나 같은 달 12일 오후 6시 45분, 마크스는 결국 숨을 거뒀다. 몇 시간 뒤 톰슨과 NSF는 구체적 사인을 밝히지 않은 채 “마크스가 자연사했다”고만 발표했다. 날이 풀리는 10월까지는 시신을 외부로 옮길 수 없어, 동료들이 직접 관을 짜 그의 장례를 치렀다.

봄의 도래와 함께 기지는 서서히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해 10월 30일, 항공편 재개 후 마크스의 시신은 고국인 호주에 묻히기 위해 뉴질랜드 거점 도시 크라이스트처치로 이송됐다. 뉴질랜드 경찰의 간단한 조사 후 동료들도 본국으로 돌아갔다. 영원할 것만 같던 겨울은 그렇게 끝나나 싶었다.

그러나 12월 중순 마크스의 시신을 부검한 크라이스트처치 사법 당국은 “메탄올 중독에 따른 사망이었다”고 밝혔다. 당국은 마크스가 숨을 거두기 1, 2일 전 메탄올을 150㎜ 정도 마셨다고 판단했다. 치사량을 훨씬 뛰어넘는 양이다. 향후 8년간 지지부진하게 이어진 수사, 그럼에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의 시작이었다.

‘과학자’ 마크스는 어쩌다 메탄올을 마셨을까

2000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남극에서 운영하는 '아문센-스콧 기지'에서 숨진 로드니 마크스(당시 32세)의 생전 모습. 남극천체물리학연구센터 제공

2000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남극에서 운영하는 '아문센-스콧 기지'에서 숨진 로드니 마크스(당시 32세)의 생전 모습. 남극천체물리학연구센터 제공

뉴질랜드 매체 ‘뉴질랜드헤럴드’에 따르면, 당시 수사를 맡은 그랜트 워말드 수사관은 마크스가 메탄올을 마시게 된 경우의 수를 다음 세 가지로 압축했다. ①극단적 선택을 했다 ②실수였다 ③누군가가 살해 목적으로 몰래 메탄올을 먹였다.

워말드 수사관은 일단 극단적 선택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다. 마크스는 전도유망한 과학자였다. 호주 멜버른대·뉴사우스웨일스대 등에서 학문의 기초를 탄탄히 쌓았고, 남극 근무 경력을 바탕으로 좋은 일자리를 얻을 게 유력했다. 아문센-스콧 기지에서 함께 생활한 동료 과학자 소냐 월터와 약혼까지 했다.

기지 생활도 순탄해 보였다. 일부 체류자는 8개월간의 고립 생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반면 1994년과 1997년, 두 차례나 남극에서 겨울을 보냈던 마크스는 “남극이 좋다”며 세 번째 체류를 택한 상황이었다. 한 동료는 미국 잡지 ‘맨스저널’에 “같은 집단끼리만 어울리는 다른 과학자들과 달리 그는 목수, 배관공 등과 함께 포커를 치고 위스키를 마셨다”고 말했다.

게다가 마크스는 메탄올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그를 가르쳤던 앤서니 스타크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마크스에 대해 “실험실 기술과 안전에 정통한 전문가였다. 메탄올 중독 같은 끔찍한 방식을 택했을 리가 없다”고 못 박았다. 무엇보다 고통의 원인을 알지 못해 병원을 세 차례나 찾았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이 메탄올을 마셨다는 걸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공산이 컸다.

2000년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에서 로드니 마크스(왼쪽)가 동료와 대화하고 있다. 남극천체물리학연구센터 제공

2000년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에서 로드니 마크스(왼쪽)가 동료와 대화하고 있다. 남극천체물리학연구센터 제공


복잡한 관할권, 깊어지는 미스터리

2000년 로드니 마크스(당시 32세)가 숨졌을 무렵, 여름철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 입구의 모습. 당시 이 기지는 반원 형태를 띠고 있는 탓에 '돔(Dome)'이라고 불렸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마크스 사망 3년 후 기지를 전면 재건축했고, 2009년 돔을 해체했다. 위키피디아 캡처

2000년 로드니 마크스(당시 32세)가 숨졌을 무렵, 여름철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 입구의 모습. 당시 이 기지는 반원 형태를 띠고 있는 탓에 '돔(Dome)'이라고 불렸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마크스 사망 3년 후 기지를 전면 재건축했고, 2009년 돔을 해체했다. 위키피디아 캡처

따라서 수사는 ‘실수’와 ‘고의’를 판가름하는 싸움이 됐다. 유력한 용의자도, 마땅한 살해 동기도 짐작하기 힘든 상황이라 포괄적이고 촘촘한 수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뉴질랜드 경찰은 기초 조사조차 하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했다. 남극 기지에 대한 관할권 문제가 워낙 복잡했던 탓이다.

남극 내 분쟁은 1959년 채택된 ‘남극조약’에 의해 규율된다. 남극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던 당시, 세계 각국은 어느 나라에도 영유권을 주지 않기로 합의했다. 남극에서 동일 국적인들 간 분쟁이 발생하면 해당 국가 법률을 적용하는 ‘속인주의’를 택하지만, 다국적 분쟁의 경우엔 책임국을 정하지 않은 채 국가 간 협력하에 사건을 해결하도록 했다.

남극조약 협의 당사국회의 장면. 극지연구소 제공

남극조약 협의 당사국회의 장면. 극지연구소 제공

마크스 사건은 어중간한 형태였던 이런 체제의 부작용을 여실히 드러냈다. 마크스는 호주인이었지만, 수사는 뉴질랜드가 맡았다. 뉴질랜드 국내법상 영토 내에 시신이 있으면 수사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호주는 이를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뉴질랜드와 미국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뉴질랜드 경찰은 “기지를 운영하는 미국 NSF가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워말드 수사관이 NSF에 마크스 사망 직후 사인을 검토한 보고서를 요청했지만, NSF는 “수사에 도움 되지 않을 것”이라며 거부했다. 아문센-스콧 기지 직원 명단도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유하지 않았다.

결국 워말드 수사관은 인터넷에서 직원 명단을 취합했다. NSF는 2005년에야 직원 49명에게 수사 설문지를 전달해 주겠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직원들에게 “답변할 의무는 없다”고 강조했고, 실제로 13명만 설문에 답했다. 영국 가디언 일요판인 옵서버는 “미국 당국에 의해 침묵의 벽이 세워진 셈”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NSF가 책임 회피를 위해 소극적 태도를 유지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NSF는 마크스 사망 직후 기지 직원에게 ‘알코올이 함유된 병을 조사해 내용물과 식별표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라’고 지시했지만, 조사 결과를 공개하진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파편화한 단서들… ‘스모킹 건’이 없다

남극 이미지. 게티 이미지 뱅크

남극 이미지. 게티 이미지 뱅크

8년간 수사로 드러난 단서들은 분명히 있었다. 파편적이었긴 했으나, 그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남극 생활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었다. 하지만 진실을 밝힐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은 없었다.

일부 직원은 기지에서 마약류가 유통되고 있다고 진술했다. 환풍구에서 대마를 키운다거나, 대마초 냄새를 맡은 적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사망 당시 마크스의 팔에는 두 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다. 그러나 의사 톰슨은 이를 딱히 문제 삼지 않았다. 마크스 시신 부검 결과에서 마약류 성분이 검출되지도 않았다.

의료 장비 관리 문제도 거론됐다. 아문센-스콧 기지엔 혈중 메탄올 농도를 확인할 수 있는 혈액 분석기가 있었다. 이 장비는 전원이 꺼지면 재가동까지 9~10시간이 걸려 배터리 관리가 중요했다. 하지만 톰슨은 전원 관리에 실패했고 마크스는 적절한 진찰을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크라이스트처치 경찰은 “장비가 가동했다면 마크스의 생존 확률이 상당히 증가했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마크스가 기지에 반입한 술이 문제였다는 증언도 있었다. 한 동료는 “외국어가 적힌 술병을 마크스가 가져와 마셨는데, 불법 제조된 술로 보였다”고 진술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연간 최대 300명이 불법 주류를 섭취해 급성 메탄올 중독으로 사망한다.

뉴질랜드 경찰도 이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다. 다만 실체를 확인할 순 없었다. NSF가 사망 당시 사진도 찍지 않은 채, 마크스의 사무실과 방을 다른 직원들이 사용하도록 방치했기 때문이다.

남극은 현재... 관할권 문제 '미해결'

2003년 전면 재건축된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 전경. 미국 국립과학재단 제공

2003년 전면 재건축된 남극 '아문센-스콧 기지' 전경. 미국 국립과학재단 제공

NSF는 이후 아문센-스콧 기지에 몇 가지 후속 조치를 취했다. 알코올 중독 심리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원격 진료를 도울 위성 전화 시스템을 보강했다. 또 혹한에도 비행할 수 있는 항공기가 도입돼 마크스 사망 이듬해 급성 췌장염을 앓던 미국인 의사 로널드 셰멘스키가 영하 80도의 아문센 스콧 기지에서 구조되는 일도 있었다. 노후 시설이었던 기지는 2003년 전면 재건축됐다.

그러나 폐쇄적 근무 환경과 범죄 은폐 시도, 수사를 방해하는 관할권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AP통신은 남극 맥머도 기지에 만연한 성폭력 실태를 폭로하며 관할권 문제를 짚었다. 성희롱·폭행 피해 여성이 기지 인사 담당자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하자, 되레 “가해자가 뉴질랜드 시민이라 국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신고를 막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NSF는 2021년 맥머도 기지에서 여성 59%가 성범죄 또는 폭행을 경험했다고 발표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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