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개 교향곡과 83개 현악사중주곡… 세상 모든 음악에 생명력 부여한 파파 하이든

104개 교향곡과 83개 현악사중주곡… 세상 모든 음악에 생명력 부여한 파파 하이든

입력
2023.10.09 10:00
14면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3일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내한 리사이틀에서 연주곡을 설명하고 있다. 시프는 이날 프로그램을 미리 예고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연주곡을 결정해 연주 전후로 작곡가와 곡에 대해 설명하는 '렉처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회를 진행했다. 마스트 미디어 제공

최근 내한 리사이틀을 가졌던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는 "하이든은 여전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천재"라고 말했다. "하이든은 어려서부터 천재였고 겸손했다. 궁정에 소속돼 있어 눈에 띄지 않아 그가 이룬 업적에 비해 인정받지 못했지만 재능의 정도는 모차르트와 비슷했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하늘에서 내려온 반짝이는 음악이라면, 하이든의 음악은 인간을 위한 보다 인간적인 음악이다."

오늘날 우리가 감상하는 '고전음악'의 형식과 연주 형태는 대부분 하이든이 완성한 것이다. 소나타 형식의 104개 교향곡을 써서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는 피아노 트리오를 비롯해 가장 섬세한 실내악 앙상블인 현악사중주곡을 무려 83개나 쓴 '현악사중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두 개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맡은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각자 탄탄한 역할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깊이 있는 실내악의 세계를 열었고, 솔로 악기로 주목받지 못했던 호른, 첼로,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을 만들었다. 악기 발달에 따라 달라지는 주법이나 연주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참고하면서 지극히 민주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만들어냈는데, 당대 음악인들은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담아 '파파 하이든'이라고 불렀다.

하이든은 음악적 재능도 훌륭했지만 어떤 음악인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통 능력이 뛰어났다. 귀족과 단원들 사이에서 그 많은 과업을 조화롭게 이뤄낼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닐까 싶다. 내향적 성격의 바흐나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이 현재보다는 이상향을 품는 음악 세계를 펼쳤다면 하이든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와 위트 등 현실적 이야기를 음악에 더 많이 담았다. 궁정시대가 붕괴되기 시작한 그의 인생 후반부터는 주종관계에서 벗어나 시민과 호흡할 수 있는 내용의 음악활동을 펼쳤는데, 이 덕분에 하이든은 77세로 세상을 떠날 때 음악가는 물론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생을 마감했다.

1970년대 고음악과 바로크 음악 연구에 집중했던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를 비롯한 음악가들은 음악의 원류를 찾아 당대 사용된 악기와 주법으로 연주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주장했다. 부풀리고 확장된 음악의 흐름에 '전통'과 '다양한 해석'에 대한 질문을 던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사이먼 래틀은 하이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래틀은 베를린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재임 시 "나는 하이든에 미쳐 있다"고 말하며 수많은 하이든 작품을 무대에 올렸고, 베를린 필 상임 자리를 떠날 때에도 단 하나의 작품을 연주하라고 할 때 주저 없이 하이든을 선택했다. 래틀만큼 하이든을 깊이 이해하는 지휘자를 찾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그는 온 힘을 다해 하이든 연구에 공을 들였다. 교향악의 기본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하이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희한하게도 하이든 작품은 작은 균열이나 실력 차이, 실수가 숨겨지지 않는데 그 덕분에 하이든의 음악을 충실히 연습하고 알아가는 것이 오케스트라 실력이 향상되는 초강도 훈련이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오는 12월에 내한 무대를 갖는 세계적 지휘자 조반니 안토니니 역시 수년간 하이든에 집중하고 있는 인물이다. 하이든 탄생 300주년을 맞는 2032년까지 하이든 교향곡 전곡을 포함한 여러 작품을 연주하는 '하이든 2032'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가 이끄는 시대악기 앙상블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와 함께 공연과 앨범으로 특별한 기록을 남기는 중이다.

아벨 콰르텟은 결성 10주년을 맞아 하이든의 음악으로 채운 첫 음반 '인 노미네 도미니(In nomine Domini)'를 내놨다.

하이든은 교향곡은 물론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 장르인 현악사중주에도 소중한 생명을 불어넣었다. 실내악은 초기 봉건사회에서는 귀족들을 위한 살롱 음악이었지만, 18세기 중후반부터 시민사회가 하이든의 실내악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출판을 위한 실내악 창작이 이뤄지게 됐다. 귀족을 찬양하는 내용의 음악이나 개인의 입맛에 맞도록 조율된 음악에서 벗어나 음악적으로 충실한 내용을 담아낸 하이든의 실내악 작품들은 오늘날 악기의 역할과 음악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사가 강한 음악이나 작곡가에게 더 매력을 느끼지만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존경하고 사랑했던 하이든은 그들 사이에 살짝 숨겨진 보물이 아닐까 싶다.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물 같다. 특히 현악사중주는 클래식 음악 장르 중 가장 보수적이고, 쉽게 빠져들기 어려운 분야다. 최근 한국 출신 현악사중주단의 활동이 활발하다. 이들의 활동에 주목하다 보면 하이든의 음악, 현악사중주 장르와 보다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객원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