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쓴 칼럼

발로 쓴 칼럼

입력
2023.11.12 22:00
26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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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르거나 어색한 연기를 흔히 '발연기'라고 한다. 풀어 쓰면 '발로 쓴 글씨 같은 형편없는 연기'쯤 될 텐데 발동작이 손동작보다 일반적으로 섬세함과 정교함이 많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데서 나온 말이리라. 글씨를 아무렇게나 갈겨 써놓은 모양을 말하는 '개발새발'도 개의 발과 새의 발에서 왔다고 하니 같은 맥락이겠다. 그럼 정말 발동작은 섬세함과 정교함이 떨어지는 걸까? 요즘 카이로프랙틱 치료를 받으면서 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우선 발의 뼈 개수는 한 발당 26개로 모두 52개인데, 이는 몸 전체 뼈 개수인 206개의 4분의 1이 넘는다. 손의 뼈 개수(한 손당 27개, 모두 54개)와도 거의 차이가 없다. 또 발에는 양쪽 합쳐 128개의 근육과 힘줄, 66개의 관절이 있는데, 특히 인대는 양발 합쳐 112개로 몸 가운데 발에 가장 많이 몰려 있다. 손과 발 사이에 하드웨어의 차이는 거의 없는 셈이다.

기능 면에서도 애당초 양자의 우열을 가리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손은 물건이나 도구를 잡고 다루는 다양한 동작과 운동 기능에다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 의사 표현·전달 기능까지 수행하고, 발은 인체의 체중을 지탱하면서 균형을 잡는 기능, 걷기 등의 이동 기능, 압박감을 통해 신체의 정보를 파악하여 뇌에 알려주는 감각 기능, 아래로 내려온 혈액을 다시 올려 보내는 펌프 기능을 담당한다. 모두 인체에 필수 불가결한 기능이다. 이런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손뿐만 아니라 발도 다양하고 세밀한 동작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하고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발은 인간공학의 최대 걸작이며 최고의 예술품이다"란 말도 이를 지적한 것 같다. 발은 손의 고유 기능인 글씨를 쓰는 데는 다소 서툴지 몰라도 몸의 균형을 잡고 몸을 이동하는 데에는 지극히 정교하고 섬세하다. 발연기란 말은 부당하다.

그럼에도 발은 발연기란 말에서처럼 홀대를 당하거나 무시를 받는 경우가 많다. 뒤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성실히 고된 자기 역할을 감당한 사람보다, 전면에 나서서 눈에 띄는 일을 한 사람이 더 각광을 누리고 인정받는 세태와도 겹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래서 신약성서에서도 "몸의 지체는 많지만 그들이 모두 한 몸이듯이…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럽게 여기는 지체들에 더욱 풍성한 은혜를 덧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줍니다"라고 권면하나 보다.

그런데 위에서 든 예와 상반되게, 발로 한다는 말이 들어가는데 긍정적인 의미의 표현이 있다. '발로 쓴 기사'가 대표적이다. 데스크에 앉아 서류만 가지고 머리로 쓴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찾아가 발로 뛰면서 얻어낸 것들로 쓴 기사란 뜻일 것이다. 그럼 '발로 쓴 칼럼'은 어떤 의미일까? 삶과 문화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발로 뛰면서 얻은 것들로 채워진 칼럼이란 의미일까? 삶과 문화의 그 세밀하고 미묘한 결을 잘 살리지 못해 발로 쓴 글씨같이 엉성한 칼럼이라는 뜻일까? 전자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으니 후자라도 피해야 할 텐데, 칼럼을 쓴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영 자신이 없다.


우재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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