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소수언어와 고대 페르시아어까지...우리말 번역 저변 넓어진 한 해

노르웨이 소수언어와 고대 페르시아어까지...우리말 번역 저변 넓어진 한 해

입력
2023.12.02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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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번역서 10종

넓어진 한국 출판계 번역서의 저변을 실감하는 한 해였다. 언어, 주제, 장르 등 어느 것 하나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번역서가 예심의 관문을 통과했다.

우선 번역자의 적극적인 기여와 분투가 돋보이는 책이 단연 물망에 올랐다. 서양 학술용어의 번역과 탄생을 집대성한 책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는 번역자의 주도적인 역할이 주목을 받았다. '세계철학사' 전집은 9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일리아스' 고대 희랍어 원전을 41년 만에 국내 두 번째로 옮긴 작업에도 시선이 쏠렸다. 21년에 걸쳐 세계에서 세 번째로 완역된 '라시드 앗 딘의 집사'는 단순 번역 작업으로 봐서는 안 되는 학문적 성취이자 학술적 번역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20세기, 그 너머의 과학사'와 '이토록 굉장한 세계'는 과학 분야 번역에 심지 곧게 헌신해온 번역자들의 정직한 결과물이다.

문학 번역에서도 큰 성취가 있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의 '멜랑콜리아 I-II'는 노르웨이의 뉘노르스크어(노르웨이 공용어지만 자국 내 사용 비중이 10% 수준인 소수언어) 원전을 번역해 지평을 넓혔다. '밤의 가스파르'는 최초의 산문시를 우리말로 옮기는 까다로운 작업이었다는 평가다.

대중적으로도 쉽게 손이 가는 작품들이 예심을 통과한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진화생물학의 가부장적 편견을 깨뜨린 책 '암컷들'과 성폭력을 유지해온 역사를 집대성한 '수치'는 매끄러운 번역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는 평이다.


야마모토 다카미쓰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야마모토 다카미쓰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

야마모토 다카미쓰 지음·지비원 옮김·메멘토 발행

서양의 학술 체계와 용어를 번역해 일본에 도입한 일본 근대 사상가 니시 아마네의 강의록 ‘백학연환’을 분석하고 해설한 책. 한중일 3국에서 통용되는 과학, 예술과 같은 근대어의 탄생 과정이 눈앞에 펼쳐진다. '연역'을 고양이가 생쥐를 먹는 모습에 비유한 설명은 번역 과정의 고민과 선각자의 혜안을 보여준다.

라시드 앗 딘 '집사'

라시드 앗 딘 '집사'

▦집사(총 5권)

라시드 앗 딘 지음·김호동 옮김·사계절 발행

몽골 제국 군주들의 연대기를 종합한 것을 넘어 중국과 인도, 유럽 등 주변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집대성한 책. 1~3권은 몽골제국의 태동기부터 세계 제국의 완성기를, 4, 5권은 일 칸국의 서아시아 정복 과정을 보여준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집사'를 완역한 김호동 교수는 페르시아어 원문 분석 내용을 주석에 밝혔다.

이토 구니타케 '세계철학사'

이토 구니타케 '세계철학사'

▦세계철학사(총 9권)

이토 구니타케 지음·이신철 옮김·도서출판b 발행

책은 세계 철학을 서양 중심으로 정의한 관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세계, 철학 그리고 역사가 얽힌 복합적인 맥락에서 철학사를 전개한다. 중동과 러시아, 아프리카까지 아우르며 상호작용 아래 서로 다른 사유를 형성한 배경을 파악한다. 팬데믹, 인공지능(AI)과 같은 현대 문명의 위기, 불확실성 속에서 철학의 역할과 과제를 조망한다.

조애나 버크 '수치'

조애나 버크 '수치'

▦수치

조애나 버크 지음·송은주 옮김·디플롯 발행

세상은 수치라는 감정을 성폭력 피해자에게 전가해 왔다. 책은 성 학대를 유발하고 유지시키는 제도와 이념, 권력 구조를 파헤치고 실제 사례를 탐색한다. 전시 성폭력과 부부 강간, 동성애 혐오 등을 다루며 개인과 여성의 문제로 축소된 성폭력을 범역사적인 문제로 확장한다.

에드 용 '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용 '이토록 굉장한 세계'

▦이토록 굉장한 세계

에드 용 지음·양병찬 옮김·어크로스 발행

새는 후각으로 지형을 파악하고 코끼리는 지반진동을 이용해 의사소통한다. 책은 인간의 오감을 초월하는 동물의 감각 세계로 안내한다. 인간은 동물의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자 동물이 경험하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저자는 동물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감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강조한다.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 '밤의 가스파르'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 '밤의 가스파르'

▦밤의 가스파르

알로이시위스 베르트랑 지음·조재룡 옮김·워크룸프레스 발행

전통적인 시 형식과 규칙을 뛰어넘은 최초의 산문시. 여섯 편의 시는 악마가 전하는 밤의 매혹을 노래한다. 책의 부제 '렘브란트와 칼로 풍의 환상곡'에서 등장하는 두 화가는 베르트랑의 예술에 대한 관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번역가는 산문시들이 어떻게 두 화가의 회화를 반영했는지 분석했다.


존 에이거 '20세기, 그 너머의 과학사'

존 에이거 '20세기, 그 너머의 과학사'

▦20세기, 그 너머의 과학사

존 에이거 지음·김동광, 김명진 옮김·뿌리와이파리 발행

과학의 진보는 과학자의 호기심과 의지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가 등 현실의 요청이라는 ‘실행세계’에 의해 추동됐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퀴리의 방사능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결과였다. 책은 과학의 응용세계와 실제 실행세계 간의 관계 속에서 20세기 과학의 역사를 파악하며 이를 집대성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호메로스 '일리아스'


▦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이준석 옮김·아카넷 발행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인의 수작이자 서양 문화와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서사시다. 호메로스 전문가인 고전문헌 학자가 국내에서 두 번째로 고대 그리스어 원전 완역을 내놓았다. 보통 ‘거침없이 말했다’로 옮기는 표현을 ‘날개 돋친 말을 건네었다’로 번역하는 등 호메로스의 시적 언어를 생동감 있게 복원했다고 평가받는다.

욘 포세 '멜랑콜리아 1·2'

욘 포세 '멜랑콜리아 1·2'


▦멜랑콜리아 1·2

욘 포세 지음·손화수 옮김·민음사 발행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실존 인물인 노르웨이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비극적 일생을 그렸다.작가 특유의 짧은 문장과 리듬감을 이용해 우울증과 편집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했다. 1995년 노르웨이 뉘노르스크어(자국 내 사용 비중이 10%인 소수언어)로 발표된 작품이 원전 번역됐다.

루시 쿡 '암컷들'

루시 쿡 '암컷들'

▦암컷들

루시 쿡 지음·조은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 발행

자연사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생물학자인 저자는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라는 스승 도킨스의 주장에 반기를 들며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깨트린다. 바람둥이 암사자, 폭압의 여왕 미어캣 등 암컷은 수컷보다 방탕하고 경쟁하며 군림하는 존재였다. 레즈비언이 되고 수컷 없이 자기 복제를 통해 생식하기도 했다.



이혜미 기자
문이림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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