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사극의 시간…역사가 '스포'여도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돌아온 사극의 시간…역사가 '스포'여도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입력
2023.12.07 04:30
20면
구독

넷플릭스 간 '고려 거란 전쟁'부터 MBC 살린 '연인'까지
'역사 왜곡 논란' 없도록 철저히 고증…"사극의 책임감"
"사극은 결국 현실 은유" 지금 시대 담는 변주 중요

KBS '고려 거란 전쟁' 6화에서 흥화진 전투를 묘사한 장면. 거란군은 투석기로 불덩어리를 날려 흥화진 성벽을 무너뜨리려 한다. KBS 제공


KBS '고려 거란 전쟁' 6화에서 흥화진 전투를 묘사한 장면. 거란군은 투석기로 불덩어리를 날려 흥화진 성벽을 무너뜨리려 한다. KBS 제공

거란군이 투석기로 불덩어리를 날려 흥화진 성벽을 무너뜨리려 한다. 이에 맞서는 고려의 양규 장군은 투석이 쏟아지는 쪽을 향해 기름이 든 항아리를 날려 거란군의 투석기를 격파시킨다. 수적 열세인 상황에도 미리 함마갱(함정)을 파놓는 전략으로 반격한다.

KBS '고려 거란 전쟁' 6화에선 1010년 거란의 2차 침략 당시의 '흥화진 전투'가 실감 나게 묘사됐다. "압도적인 전쟁 장면", "제목이 왜 '고려 거란 전쟁'인지 입증했다"는 등 호평이 쏟아졌다. KBS가 '태종 이방원'(2021) 이후 1년 6개월 만에 내놓은 정통사극은 최고 시청률 8.4%(7화 기준)로 순항 중이다. KBS 대하드라마 중 최초로 넷플릭스 동시 공개(아시아 일부 국가)에 이어 한국 일간 인기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MBC '연인'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는 민중의 삶을 조명해 더 주목받았다. MBC 제공


'역사 왜곡 논란' 없다…기본기 '고증'에 더 철저해진 요즘 사극

'고려 거란 전쟁'부터 MBC '연인'까지. 바야흐로 사극의 귀환이다. 그간 '퓨전', '판타지' 등 대중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사극의 변주가 계속돼 왔지만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MBC '옷소매 붉은 끝동'(2021, 최고 시청률 17.4%)이 그나마 사극의 흥행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지만 후속타가 이어지지 않았다.

역사 왜곡 논란 때문에 외면받은 작품도 여럿이다. SBS '조선 구마사'(2021)는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도 중국식 소품과 의상을 사용하고, 태종과 양녕대군, 충녕대군 등 실존 인물을 왜곡되게 그렸다는 비판을 받은 끝에 2회 만에 막을 내렸다. tvN '철인왕후'(2020)는 시청률은 높았으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인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지라시"로 일컫는 대사로 입길에 오르내렸다.

이런 이유로 최근 사극들은 사극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고증 작업에 부쩍 신경을 쏟는 추세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해외에서도 방영되는 콘텐츠인 만큼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한 제작진의 경각심이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KBS '고려 거란 전쟁'에서 양규(지승현) 장군. 양규는 거란의 2차 침공 당시 요충지인 흥화진을 지켜낸 역사 속 숨은 영웅으로 불린다. '고려 거란 전쟁'은 강감찬 외에도 이렇게 역사 속 숨은 영웅들을 재조명해 더 주목받고 있다. KBS 제공

'흥화진 전투' 장면만 봐도 단지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화려한 연출에만 초점을 맞춘 게 아니다. 연출을 맡은 김한솔 감독은 "실제 제작한 국궁을 연습해 국궁 사법(활 쏘는 법)으로 활을 쏘는 등 디테일한 부분도 고증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거란의 정예기병에 맞서기 위한 고려의 비밀병기인 검차를 표현하기 위해선 조선 시대 병법서인 ‘풍천유향’ 등을 참고했다.

17세기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는 '연인'은 조선과 청나라의 옷과 지금은 사라진 만주어까지 고증에 신경 썼다. 지난달 28일 종영 인터뷰에서 '연인'의 김성용 PD는 "주인공은 가상 인물이지만, 그를 둘러싼 실존 인물도 있는 만큼 역사 고증이 충실해야 사극의 책임감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해 욕심을 냈다"고 밝혔다.


'역사가 스포? 사극은 은유' 현대 입맛 맞는 변주도 중요

고증만큼 중요한 건 재해석이다. 사극이 과거 이야기를 다룬다 해도, 결국 그 속엔 현재적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장현(남궁민)과 길채(안은진)의 사랑 이야기인 '연인'은 들여다보면 결국 국난의 상황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민중의 생명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전쟁이란 위기 속 국가가 책임지지 않음에도, 장현은 리더십을 발휘해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간 백성들을 돕는다. 길채 역시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환향녀'(병자호란 후 조선으로 돌아온 여성들)라는 손가락질에도 굴하지 않는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과거 사극들이 '개인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연인'은 스스로 살아남는 민중의 힘과 생명력을 담았다는 점에서 독특하다"고 분석했다.

MBC '연인'에서 길채(안은진)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MBC 제공

사극의 인기는 계속될 수 있을까. 최근 방영을 시작한 MBC '열녀박씨 계약결혼뎐', KBS '혼례대첩'을 비롯해 '우씨왕후'(티빙), '환상연가'(KBS) 등이 방송을 기다리고 있다. 윤 교수는 "사극은 결국 현실 정치에 대한 은유의 기능을 한다"면서 "'연인'이 각자도생의 사회인 지금의 우리 모습을 떠올리게 했듯 그런 맥락에서 역사를 주목하는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근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