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민주주의 정당이?… 체제 균열 보여주는 3가지 장면[문지방]

북한에 민주주의 정당이?… 체제 균열 보여주는 3가지 장면[문지방]

입력
2024.02.04 13:00
수정
2024.02.0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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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신모 놈은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의한 새로운 당을 창건하고 새 정부를 세운다고 하면서 불순녹화물을 시청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10여 명의 불순분자들과 국가전복 음모를 꾸미고 미쳐 날뛰다가 인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최근 북한 문제를 연구하는 샌드연구소가 입수한 북한 보안당국의 문헌학습 영상자료에는 이런 내용의 반체제 단속 사례가 등장합니다. 2022년 상반기 제작한 이 자료는 지방의 중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던 신모씨가 한국 방송과 녹화물을 청취하는 과정에서 북한 체제에 반감을 가지고, 반체제 혁명조직을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웃의 신고를 피하기 위해 여럿이 모여 한국 드라마나 영화 등을 시청하고 있는데, 신씨와 함께 영상물을 시청하던 주민들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당의 강령까지 만들었습니다. 제1조에는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체제에 의한 새로운 당을 건설한다"고 명시했고, 2조에는 '새로 조직되는 당에는 상하 차별이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정치 : 점조직이라도 혁명 세력… 북한 전역에 존재할 가능성

BBC는 1월 18일(현지시간) 북한 당국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10대 소년 2명에게 노동형을 선고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도했다. BBC X 캡처

BBC는 1월 18일(현지시간) 북한 당국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10대 소년 2명에게 노동형을 선고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도했다. BBC X 캡처

비록 우리가 생각하는 제도권 내의 정당이 아니라 점조직에 불과한 수준이긴 하지만, 북한 당국이 신모씨 사례를 내세우며 자유민주주의를 동경하는 주민들의 통제에 나섰다는 건 의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이런 비밀 조직이 북한 전역에 퍼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북한은 한국 문화를 지칭하는 '괴뢰문화'의 확대를 강도 높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최대 사형에 처할 정도로 말이죠.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호법(2023)을 잇따라 만들어 한국의 영상물을 시청·유포하거나, 한국식 말투를 쓰는 경우 최대 극형에 처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심지어 북한은 지난달 29~31일 규율 위반을 감독하는 간부들을 대상으로 강습회를 열고 기강 잡기에 나섰습니다. 탈북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 영상, 노래, 말투 등을 감시·단속하는 북한 관리들은, 이를 통해 거액의 뇌물을 요구하며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강습회를 보도하면서 "당 규율 문제 취급에서 공정성과 엄격성을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는 강연자들의 말을 전했습니다.

법을 통한 단속에 그치지 않고 가정 교육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열린 어머니대회에서 어머니의 역할로 "최근 늘어나고 있는 비사회주의적 문제들을 일소하고 사회의 단합을 도모하는 문제, 건전한 문화도덕 생활기풍을 확립하고 공산주의적 미덕이 지배적 풍조로 되게 하는 문제"를 꼽으며, 한국 문화가 북한 체제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을 직접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경제 : 임금 체불로 폭동까지… 최악의 지방 경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정한 북한 노동자 송환 시한인 2019년 12월 22일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AFP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정한 북한 노동자 송환 시한인 2019년 12월 22일 북한 노동자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AFP 연합뉴스

북한 체제에 금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 정당 창당 사례'와 같은 정치적 영역 외에 경제 분야에서도 확인됩니다. 지난달 11일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을 문제 삼으며 폭동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중국 지린성에 있는 봉제공장에는 약 2,500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파견돼 있는데, 이들은 4~7년 치 임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체불 임금 총액은 약 1,000만 달러에 달합니다. 북한 당국은 이들에게 본국으로 돌아갈 때 임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미 임금이 '전쟁 준비 자금'으로 북한에 송금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노동자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관리 책임자는 폭동으로 사망했고, 지배인 등 3명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 정도면 명백한 반동행위인 셈인데, 북한은 오히려 다른 회사의 자금을 끌어와 이들에게 몇 달 치 임금을 우선 지급하고 사건을 무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외 공장에서 폭동이 일어난 것만도 이례적이지만, 더 큰 문제는 연쇄 폭동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임금 체불이 이 공장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북한은 코로나19로 국경이 봉쇄되면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임금을 끌어다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북한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 그나마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뎌왔는데, 이 희망마저 사라지자 폭발 직전이라는 겁니다.

해외 파견 노동자뿐만 아니라 북한 지방의 경제난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3, 24일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지방 경제가 초보적인 생필품조차 원만히 제공하지 못하는 매우 심각한 상태"라며 이를 정치적 문제로 규정했습니다. 북한 전문 매체인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북한 양강도에서는 땔감이 부족해 이웃집 화장실 문짝까지 몰래 뜯어가는 일이 발생할 정도입니다.

사회 : 북한 MZ세대, 체제 반감 증가… 탈북민 절반 웃돌아

인권단체 북한의 자유(LINK)가 제작·공개한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 소개 자료. 미디엄 웹사이트 캡처

인권단체 북한의 자유(LINK)가 제작·공개한 다큐멘터리 ‘장마당 세대' 소개 자료. 미디엄 웹사이트 캡처

시장경제를 경험하며 성장한 '장마당 세대', 즉 북한 MZ세대들의 체제 거부 현상도 북한 균열의 한 축입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입국한 탈북민은 196명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인 99명이 2030세대로 나타났습니다. 또 외교관, 해외 주재원, 유학생 등 엘리트 계층 탈북민도 10명 안팎으로 문재인 정부 초반 이후 가장 많았습니다.

최근 탈북민들의 탈북 이유를 보면 '북한 체제가 싫어서'란 응답이 '식량 부족'을 넘어섰습니다. 2020년만 해도 식량부족(22.8%)이 체제 반감(20.5%)을 앞섰지만, 이듬해부터 이 비율은 역전됐습니다. MZ세대 탈북민 증가와 연관된 변화로 보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북한은 심각한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김 위원장은 통일과 민족 개념을 삭제하고 철저히 한국과 단절하며, 한국의 문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선망을 잘라버리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죠.

여러 징후들이 북한의 위기를 가리키고 있지만, 머지않아 북한이 붕괴될 거란 예상은 금물입니다.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도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 체제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내다봤지만, 이후 30년을 이어온 북한입니다.

그래서 통일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북한 지원부'라는 지적을 받다가, 이제는 '북한 인권부'로 변모하고 있는 통일부에 대해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통일 정책이 180도 뒤바뀌는 건 올바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만큼 통일부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장기적으로 이상적인 통일의 비전을 확립하고, 이를 실행할 정책들을 차근차근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통일부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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