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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일정 연이틀 취소… 윤 대통령, 정국 돌파 '장고'

2023.12.01 04:30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예정된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장고'에 들어갔다. 전날 새벽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 투표 참패 이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엑스포의 충격에서 벗어나 정국 구상에 몰입하려는 행보로 읽힌다. 당장 재의요구권(거부권), 대규모 개각 등 현안이 즐비하다. 이날 대통령실 조직을 개편해 분위기 쇄신의 신호탄을 쏘긴 했지만, 윤 대통령이 내놓을 카드가 국민 눈높이에 못 미친다면 엑스포의 파장이 쉽게 잦아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당초 이날 오전 제3차 국정과제 점검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돌연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바뀌었다. 저녁 시간에 잡혔던 국민통합위원회 지역협의회 첫 전체회의에도 불참하고 이관섭 신임 대통령실 정책실장을 보냈다. 전날 오후 국방혁신위원회 3차 회의를 행사 당일 갑자기 순연한 것에 이어 세 차례 연속 일정을 취소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일정을 소화하는 대신 내부적으로 업무보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이 이틀 연속 공식 일정을 취소하는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취소한 일정들의 의미가 작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국방혁신위는 윤 대통령이 직접 1·2차 회의를 주재하며 중요성을 부각해왔다. 국정과제 점검회의는 임기 3년차를 앞두고 핵심과제를 다듬고 홍보하기 위한 중요한 일정이다. 특히 이번 회의의 경우 최근 강조하는 민생과 소통의 연장선에서 국민 패널들을 초대해 어려움을 듣는 형식으로 기획된 행사였다. 최근 국민통합위 성과를 극찬해 온 것을 감안하면 통합위 지역협의회 첫 회의에 가지 않은 것도 이례적이다. 그만큼 엑스포 결선 투표 진출 실패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석패' 이상의 결과를 예상하고 있던 상황에서 뜻밖의 '참패'를 당하자 정국 우선순위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12월 초부터 대통령실 수석비서관급 인사와 대규모 개각이 순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날 대통령실 개편과 수석 인사를 전격 발표하며 일정을 앞당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각 또한 속도를 낼 전망이다. 당장은 '국방' '민생' '국정과제' '통합' 등 일상적인 메시지 전달에 주력하기보다 엑스포 참패에 대응하고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훨씬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겹겹이 시험대가 예고돼 있는 점도 부담이다. 대통령실 참모는 "엑스포 결과를 논외로 해도 현안 자체가 너무 많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당장 야당이 강행 처리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를 12월 2일까지 행사해야 하는 만큼, 1일 임시국무회의를 거쳐 거부권 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보고되면서 풀어야 할 숙제는 하나 더 늘었다. 특히 인사에 대한 고심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내주 초부터 10명 안팎의 장관 교체 인사가 순차적으로 이뤄질 전망인데,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려면 철저한 검증은 물론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의 굴레에 갇혔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참신한 인물의 발굴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이날 대통령실 개편과 수석급 전원 교체로 첫발은 뗐다. 다만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상황을 종합해 보고해온 김대기 비서실장이 자리를 지키면서 향후 부담요인으로 부각될 우려는 남아있다. 이에 기존 인사 카드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꼼수" "뺑소니" "국회 국민 우롱"…민주당, 이동관 사퇴 맹비난

더불어민주당이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사퇴에 대해 '꼼수', '국회와 국민 우롱'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 위원장 사직서를 수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 위원장 면직안을 탄핵소추안 표결을 3시간 앞두고 재가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일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꼼수를 쓸 줄은 몰랐다"며 "예상하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국정 수행 행태"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결국 이동관 아바타를 내세워서 끝내 방송 장악을 하겠다는 의도인데 이해하기 어렵다"며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서 책임을 묻고 또 방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홍익표 원내대표 역시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탄핵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라며 "대통령께서 이에 대한 사표를 수리하는 건 국회가 헌법적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명백한 방해행위"라고 비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도 "온갖 불법을 저질러놓고 탄핵안이 발의되자 뺑소니를 치겠다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사의를 수리한다면 범죄 혐의자를 도피시켜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민주당의 격앙된 반응은 윤 대통령이 이 위원장의 사의를 수용한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최혜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 위원장은 위법을 불사하며 방송장악에 앞장서 놓고 법적 책임에서 도망치며 국회와 국민을 우롱한 것"이라며 "탄핵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피하며 방송장악을 계속하겠다는 오기의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최소 60개국' 이상 한국 지지 장담... 尹 “예측 빗나갔다” 전말은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를 향한 부산의 도전은 29일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함께 막을 내렸다. 초반 열세를 접전으로 이끌었다는 윤 대통령과 정부의 자신감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119표를 내주며 1차 투표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급기야 윤 대통령은 "예측이 빗나갔다"며 고개를 숙였다. 왜 상황을 오판한 것일까. 정부의 전략은 '2차 투표 올인'이었다. 경쟁자 리야드, 로마(이탈리아)에 비해 후발주자인 터라 1차 투표에서 로마를 제치고, 결선에서 로마 표를 흡수해 리야드와 승부를 펼친다면 '이길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근거도 있었다. 정부와 민간이 '원팀'으로 움직여 지난 17개월간 182개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모두와 대면 접촉했다. 그 결과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는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최소 60개국'이 부산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1차 투표에서 리야드가 3분의 2(182개국 가운데 122개국) 이상 지지를 얻지 못하면 결선 투표로 가는데, 반대로 한국 지지가 60개국을 넘기면 최소 저지선을 확보하는 것이다. 앞서 3개국 이상 경쟁했을 경우 1차 투표에서 끝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립서비스로 우군을 확보한 것은 아니다. 문서로 한국을 지지한 국가도 상당수였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표결 직후 "서면으로 지지를 받은 나라들의 표수보다 나오지 않은 건 충격적"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표결을 앞둔 시점에 이탈리아와 정상회담을 하고, 대통령과 총리가 총회 직전까지 유럽을 순방하면서 지지를 호소한 건 모두 이 같은 전략과 시나리오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우디의 물량 공세 앞에 전략은 무용지물이 됐다. 결전의 날이 다가올수록 유치위 내부에서는 "어쩌면 1차에서 끝날 수도 있겠다"는 부정적 전망과 함께 "실패했을 경우 국민들에게 설명할 논리를 미리 만들어놔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한다. 특히 국부펀드를 앞세운 사우디의 막판 스퍼트는 매서웠다. 경제적 지원을 넘어 '새로운 유형의 지원 약속'까지 등장했다는 후문이다. 사우디가 저개발국에 지원한 금액이 10조 원을 넘는다(유치위 자문 김이태 부산대 교수)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 소식통은 "한국을 지지한 나라가 사우디로부터 뒤로 돈을 받는 걸 알면서도 우리와의 외교 문제 때문에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사우디가 한국과 접촉한 BIE 회원국을 따로 관리한다는 말도 나와 불안감은 가중됐다. 정부 관계자는 "그럼에도 2차 투표로 간다면 승부를 걸 만하다고 봤다"면서 "포기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다만 '예견된 패배'와 '예상치 못한 참패'의 차이는 크다. 여론의 충격이 큰 이유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패인을 분석하고 개선해 나가는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치전 참패에 대한 책임 공방도 불가피해 보인다. 대통령실에 엑스포유치 전담기구로 만든 미래전략기획관실과 산하 미래정책비서관실은 해체 수순에 무게가 실린다. 아울러 정부와 민간의 판세 분석을 종합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해온 김대기 비서실장의 거취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다. 유임이 유력했던 박진 외교부 장관의 교체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