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그 전날로 돌아간다면...

입력
2022.06.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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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백조 2022 여름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아니 근데 왜 다들 이렇게 죽는 거야?" 얼마 전 1990년대 노래를 듣다가 문득 던진 질문이다. 헤어진 연인은 대개 하늘에 있고, 천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순애보를 노래하는 곡도 한둘이 아니다. 새천년을 앞두고 모든 게 심각한 이런 '세기말 감성'에는 대형 사건 사고가 터지고 각종 종말론이 퍼지던 당시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 인류는 별다르지 않게 살고 있고 '세기말의 종말론'도 거짓이 됐다. 그럼에도 전례 없는 감염병 사태 때 목도했듯이 종말론은 건재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인간이 날 때부터 안고 있는 것일까. 백조 2022 여름호에 실린 김연수의 단편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미래에 대한 덧없는 불안을 곱씹어 보게 하는 작품이다.

소설가인 1인칭 화자 '나'에게 종말론이 난무하던 1999년은 같은 과 동기 '지민'과 함께 '지민'의 어머니(지영현)가 생전에 쓴 장편소설 '재와 먼지'를 찾아다니던 해였다. 20년도 전에 출간됐지만 판매금지당한 책이라 구하기 어려웠던 터다. '나'는 출판사에 근무하는 외삼촌으로부터 '1972년 10월을 우리는 시간의 끝이라 불렀다'라는 그 소설의 첫 문장이 당시 검열관의 비위를 건드렸을 것이란 추측을 전해 듣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노렸던 '10월 유신'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와 먼지'는 정치소설이 아니다. 미래가 없는 두 연인이 1972년 10월 함께 극단적 선택을 한 순간 인생이 거꾸로 흘러가는 일종의 시간 여행을 경험한다. 자고 나면 그 전날이 되는 식이다. 시간 여행이자 두 번째 삶을 통해 가장 좋은 순간(서로를 처음 만난 순간)이 가장 나중에 온다고 상상하는 일이 현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알게 된 이 연인은 삶의 의지를 갖게 된다. 첫 만남의 순간, 시간은 다시 정방향으로 흐르고 이들은 세 번째 삶을 살아간다. "이미 일어난 일들을 원인으로 현재의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두 번째 삶의 방식대로.

시간 여행은 '재와 먼지' 속 인물들의 삶만 바꾼 게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고, 엄마를 죽음으로 내몬 아빠를 용서할 수 없었던 '지민'에게, 또 그런 지민을 바라보던 '나'에게도 전환점이 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두 번의 시간여행을 통해 시간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요. 시간이 없으니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오직 이 순간의 현재만 존재하죠. 그럼에도 인간은 지나온 시간에만 의미를 두고 현재의 원인을 찾습니다."

외삼촌의 이런 해설 역시 소설 속 인물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눈뜨면 출근하고, 퇴근할 때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을 하는 '이토록 평범한 일상'을 이미 도래한 미래이자 오늘을 사는 이유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불안으로 삶의 의지가 꺾이는 일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말로는 골백번도 더 깨달았는데, 우리 인생은 왜 이다지도 괴로운가?"라는 소설 속 문장이 가슴을 더 때린다.

진달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