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과 만난 록음악은 어떻게 대중을 사로잡았나

입력
2023.02.25 10:00
19면
애플TV플러스 다큐멘터리 '벨벳 언더그라운드'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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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리드(1942~2013)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름을 알았다. 부모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생각했다. 전기치료로 아들을 ‘정상’으로 되돌리려고 했다. 리드에게는 음악이 탈출구였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다. 대학 졸업 후 뉴욕으로 가 싸구려 음반제작사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영국 웨일스 출신 비올라 연주자 존 케일을 만났다. 1965년 리드는 케일과 의기투합해 록밴드를 결성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스털링 모리슨(1942~1995ㆍ베이스)과 앵거스 맥라이스(드럼)가 함께 했다. 록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로 꼽히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시작이었다.

①무명 밴드에 날개 달아준 팝 아트 대가

밴드의 시작은 미약했다. 클래식이 더해진 실험성 강한 음악을 하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더욱 빛을 보기 어려웠다. 맥라이스가 떠나고 여성 드럼 연주자 모린 터커가 합류했다.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1928~1987)이 밴드를 주목했다. 매니저를 자처하고 나섰다. 워홀은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자신의 유명 작업실 ‘팩토리’ 전속 밴드로 만들었다. 당대 전위 예술가들 사랑방이었던 팩토리를 거점 삼아 밴드는 인지도를 조금씩 쌓아갔다.

워홀은 독일 가수 니코(1938~1988)를 붙여 밴드 데뷔 앨범을 냈다. 낮고 그윽한 니코의 목소리가 전위적인 밴드의 사운드와 조화를 이뤘다. 앨범 판매량은 많지 않았으나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이후 나온 앨범은 실험성을 줄이고 대중성을 늘리며 판매량을 높였다.

②그들도 못 피해간 '유명 밴드의 법칙'

밴드는 지명도를 얻었다. 광적인 팬들이 생기기도 했다. 어느 유명 밴드도 피해 갈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우선 매니저와의 결별이었다. 밴드 리더 리드는 워홀을 해고했다. 이어서 리드는 케일을 쫓아냈다. 멤버들의 결속력은 예전만 못했다.

리드는 늘 밴드를 주도하고 싶었다. 성마른 그의 성격이 갈등 악화에 한몫했다. 워홀과 케일이 떠난 후 밴드는 인기가 더 올라갔으나 음악성은 예전만 못했다. 밴드 해체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③록 역사의 주요 대목을 들여다보다

영화는 한 밴드의 흥망성쇠를 자료화면과 더불어 관계자들의 육성을 통해 돌아본다. 리드와 모리슨의 생전 인터뷰에 케일과 터커의 진술을 더한다. 케일이 뉴욕에 온 지 얼마 안 돼 리드를 만났던 순간, 워홀의 탁월한 상술, 가수 니코의 유별남 등을 엿볼 수 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전위적 음악을 들으며 1960년대 후반 세계 전위예술의 중심지 뉴욕의 한 단면과 마주할 수 있다. 특히 케일과 터커가 옛일을 생생히 떠올리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록 음악 역사에 대한 이해, 음악의 적합한 삽입, 유려한 편집이 어우러진다. 팝 아트의 시대는 가고 록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하나 1960년대가 문화사에서 기억해야만 할 과거임을 다큐멘터리는 상기시킨다.

뷰+포인트
‘파 프롬 헤븐’(2002)과 ‘캐롤’(2015)의 유명 감독 토드 헤인즈가 연출했다. 그는 글램 록(밴드 멤버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활동한 1970년대 영국 록 음악)을 다룬 ‘벨벳 골드마인’(1998), 가수 밥 딜런에 대한 이색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2007) 등 음악 관련 영화로도 이름이 높다. 헤인즈는 멤버들의 면모와 시대상 등이 밴드에 미친 영향들을 다각으로 들여다보며 벨벳 언더그라운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2021년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서 첫 상영됐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평론가 98%, 관객 81%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