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이 '진화론의 아버지?' 알고 보니 중국에서 아이디어 얻었다

입력
2023.03.31 10:00
14면
신간 '과학의 반쪽사'와 '유인원과의 산책'

'Q. 세상을 뒤흔든 발견을 한 과학자를 세 명 꼽아보시오.'

이 같은 질문을 받으면 곧장 어떤 얼굴이 떠오를까. 1543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한 폴란드의 코페르니쿠스? 1687년 운동의 법칙을 발견한 영국의 뉴턴? 19세기 '종의 기원'을 출간하며 진화론을 주장한 영국의 다윈? 20세기 특수상대성이론을 제안한 아인슈타인? 그렇다면 이들의 공통점도 찾을 수 있겠다. 바로 '서구 사회의 남성 과학자'라는 것.

아무리 합리적 지식의 총체로 여겨지는 과학일지라도 이론이 만들어지는 시대 상황이나 행위자의 성격 등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 과학도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는 논리적일지라도 과학을 기록하는 역사나 실험 방법에 편향이 생길 수 있는 이유다. '유럽, 남성'이라는 과학에 대한 주류적 시선의 빈틈을 메우는 책 두 권이 최근 발간됐다.

① 비유럽 과학자 조명하는 '과학의 반쪽사'

책 '과학의 반쪽사'는 그간 서구 사회 중심으로 구축된 과학에 대한 세계관을 180도 전복한다. 이른바 근대과학의 태동시기라 여겨지는 1500~1700년의 유럽 이전에도 6개 대륙에 걸쳐 수많은 과학자와 그들로부터 축적된 지식이 있었고, 오늘날 잘 알려진 유럽 과학자들의 성취는 일정 부분 그것에 기대고 있다는 것. 저자는 "과학은 유럽만의 특별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었다"고 단언한다.

가령 근대과학의 시발점인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살펴보자. 코페르니쿠스는 우주에 대한 정확한 모델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보다 먼저 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한 이슬람 천문학자들의 연구를 두루 살폈다. 18세기 유럽의 탐험가들은 새로운 지역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잉카 천문학자 등 토착민의 과학 지식에 크게 의존했다. 다윈 역시 자신이 진화론의 창시자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윈은 명나라의 '본초강목'에서 기본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종의 기원'에 언급하기도 했다.

책은 난생처음 듣는 과학자들의 인명사전이다. 이슬람 천문학자 나시르 알딘 알투시, 말라리아 치료법을 발견한 아프리카 노예출신 식물학자 그라만 콰시, 양전자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1936)을 받은 칼 앤더슨에게 초기 실험으로 영감을 주고도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중국의 과학자 자오중야오... 왜 이리 많은 이들의 이름과 성과가 누락된 걸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과학에 대한 서술 역시 제국의 패권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과학은 노예제와 착취, 전쟁, 이데올로기 갈등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오늘날 인공지능(AI), 우주 탐사, 기후 과학 분야 등 첨단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② 세 여성 과학자를 다룬 '유인원과의 산책'

책 '유인원과의 산책'은 각각 아프리카와 인도네시아에서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을 한평생 연구하며 동물행동학에 한 획을 그은 세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1991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한국에서는 두 차례 출간된 후 절판된 책은, 2009년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재출간됐다.

제인 구달을 비롯해 다이앤 포시, 비루테 갈디카스 같은 여성들은 고등교육기관에서 과학적인 훈련을 오랫동안 받은 적이 없다. 그렇지만 동물을 납치하다시피 해 온갖 화학 약물을 주입하고 고문을 방불케 하는 실험을 자행하던 당시 연구 방식에는 문제 의식을 느꼈고, 반기를 들었다.

남성 과학자들은 실험실과 같이 통제된 환경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반복 수행하는 일의 정량적 값을 매기는 방식이 객관적이고 완벽하다고 봤다. 하지만 탄자니아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는 구달은 달랐다. 자신이 연구하는 침팬지에 번호가 아닌 이름을 붙이고 침팬지가 아프면 항생제를 주사한 바나나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염없이 기다리고 꿋꿋하게 관찰하며 개체의 상황을 이해하고 교감했다.

주류 남성 과학자들이 '아마추어'라 비웃었던 구달은 2010년 영장류 연구 50주년을 맞았다. 그는 자신의 방식을 끝까지 고수해 침팬지가 육식을 하기도 하며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그 전까지 도구를 사용한다는 건 인간만이 지닌 특징으로 여겨졌다. 이른바 겸손하고 수용적이며 여성적인 '소문자 과학(science)'을 지향한 구달은 이렇게 말했다.

"과학을 대문자로 시작하는 권위적인 과학(Science)으로 보는 것은 나로서는 소름 끼치는 일입니다. 그건 사람을 기계로 만드는 과학입니다."


이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