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추모는 희생자처럼 거룩하게 사는 것이다

입력
2023.06.01 19:00
25면

편집자주

'삼국유사'는 함께 읽어 즐겁고 유익한 우리 민족의 고전이다. 온갖 이야기 속에는 오늘날 우리 삶의 모습이 원형처럼 담겼다. 이야기 하나하나에 돋보기를 대고 다가가, 1,500여 년 전 조상들의 삶과 우리들의 세계를 함께 살펴본다.


장춘랑과 파랑의 서로 다른
삼국사기·삼국유사 기록들
현충일에 기리는 전쟁희생자

일본 도쿄의 게이오대학 교정에는 남성 나신상(裸身像)이 하나 서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근대 조각가 아사쿠라 후미오가 1952년 제작한 '평화가 오다'이다. 그런데 좌대에 새겨진 글귀가 인상적이다. '언덕 위 평화로운 나날에 전쟁에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이 글은 전쟁 시기 이 대학의 총장을 지낸 고이즈미 신조가 지었다. '전쟁에 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란 그의 재임 중 징병 나가 전사한 이 대학 출신 학생들을 가리킨다. 당나라 시인 왕창령의 '종군행(從軍行)'에 나오는 '만 리 멀리 전쟁에 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萬里長征人未還)'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생각한다'는 마지막 말 한마디가 비장하다.

신조는 무슨 생각을 했다는 것일까? 실은 돌아오지 않은 사람 가운데 그의 외아들도 있었다. 남양제도 전선에 나갔다 죽은 아들은 그때 겨우 스물네 살이었다. 총장이라는 공적 입장을 넘어, 아들의 죽음 앞에 신조는 '전쟁은 아니다'는 '생각'을 굳히고, 그 마음을 비장하게 담지 않았나 싶다. 처음부터 전쟁이 없었으면 평화가 올 일도 없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온 평화로운 언덕 위에서 무고한 젊은이들의 희생을 생각하니 허망할 따름이다.

희생을 경험한 개인은 국가가 자신을 국민으로 포장하여 어떻게 이용하는지 안다. 신조의 짧은 글귀 속 '생각'이란 말 한마디에는 그런 한이 서려 있다.

이와 견주어 신라의 장춘랑(長春郞)과 파랑(罷郞)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모두 실렸는데, 시작은 닮았지만 끝은 아주 다르다. 먼저 '삼국사기'의 무열왕 6년 10월로 가보자. 백제와 전쟁을 벌이기 한 해 전이다. 이미 그 해 4월, 왕은 당나라에 군사를 요청했는데, 반년이 넘도록 회답이 없었다. 근심에 싸인 왕 앞에 '마치 죽은 신하인 장춘랑과 파랑 같은 사람'이 문득 나타나, 백골이지만 여전히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당나라 황제가 소정방에게 내년 5월 백제를 치라고 명령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들이 언제 어떻게 죽었다는 소식은 없다. 귀신이 되어서까지 왕에게 중요한 정보를 가져온 충성스러운 행적만이 적혀 있다. 과연 교조적 국가관으로 무장한 '삼국사기'답다.

그런데 '삼국유사'는 다르다. 먼저 두 사람이 백제와 벌인 황산벌 싸움에 나가 죽었고, 사비성 싸움이 마무리된 다음 왕의 꿈에 나타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때는 무열왕 7년 7월 이후이다. 7월 9일에 황산벌 싸움이 끝났고, 18일에 의자왕이 항복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왕에게 한 말 또한 다음과 같이 달라진다.

"저희들은 지난날 나라를 위해 몸 바쳐 백골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온전히 지키고자 군대를 따라나서 게으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위세에 밀리고, 남들 뒤에 쫓겨나 있습니다. 바라건대 왕께서 저희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 주소서."

백골이 진토 되도록 충성한 사실은 같다. 다만 죽은 뒤 겪는 억울한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외세의 위력에 밀리고 쫓겨나 있다. 국가의 자존은 어디 가고 없고, 개인의 희생 따위 입에 올리기조차 알량하다. '삼국유사'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깨어 있는 개인이고, 남의 나라 군대가 전리품을 독식하는 현장을 두고 볼 수 없다. 그래서 힘을 달라고 요구한다.

이렇듯 '삼국유사'에 그려진 장춘랑과 파랑은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고 싶지 않다. '삼국사기'가 맹목적인 충성으로 몰고 간 것과 완연 다르다. 생때같은 자식과 자식 같은 학생들을 잃은 고이즈미 신조의 '생각한다'는 표현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마침 현충일, 그러기에 새삼 희생자를 기억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진정한 추모는 우리가 그들처럼 용감하고 떳떳하게 사는 것이다.

무열왕이 장춘랑과 파랑의 명복을 빈다고 만든 장의사(壯義寺)가 지금 서울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이다. 운동장 한쪽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고운기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