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세상을 보는 균형

"인류학 교재 아냐?" 화제 중심에 있는 '나는 솔로'가 놓친 것들

"지금 일어나는 이 모든 일이 무슨 일로 생긴 거냐면 말이 와전됐어."(정숙) "광수, 옥순, 영자 이렇게 얘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영숙) 최근 시청률 5%대를 유지하다 6.5%로 지난 13일 자체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ENA·SBS플러스 '나는 솔로' 16기 돌싱특집의 한 장면이다. 솔로 남녀들의 매칭이 콘셉트이지만, 시청자들은 '누가 누구와 최종 커플이 될까?'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관계를 돌아본다. 주변의 '빌런'을 떠올리기도 한다. "대체 저 사람 왜 저럴까?" 특히 16기는 오해가 오해를 낳고, 타인에 대한 추측이 어떻게 와전되는지 등 인간관계의 여러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류학 교재로 남겨야 된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예를 들면 옥순에 호감이 있던 광수는 옥순이 다른 출연자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다는 영철과 영숙의 말을 듣고 옥순과의 관계를 끊는다. 뒤늦게 오해임을 깨달은 광수는 영철에게 "(옥순이 다른 출연자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말을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녹화 테이프를 깔까"라며 화를 낸다. 광수의 오해를 더 키운 "(옥순과의 관계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던 영숙의 말은 하나의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이 됐다. '나는 솔로'의 특징은 이처럼 '날 것'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남녀들이 기쁨, 슬픔, 분노 등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그동안 남녀가 판타지와 같은 '썸'을 타는 것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던 다른 연애 프로그램과는 차별적이다. 김교석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 출연자가 어떻게 행동할까'를 궁금해하면서 타인의 밑바닥을 엿보고자 하는 일종의 관음적인 콘텐츠"라면서 "프로그램이 '거울치료'(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를 유도하기도 한다"고 했다. 출연진은 ‘영수’, ‘옥순’ 등 친근한 가명을 쓴다. 기수는 달라도 같은 이름이면 유사한 캐릭터다. 예를 들면 옥순은 외모적으로 뛰어난 여성이고, 광수는 조금 독특한 남성이다. 쉽게 프로그램을 이해하게끔 하는 장치지만, 동시에 낙인효과도 발생한다. 시청자들이 출연자의 성격과 행동의 의미를 쉽게 예단하고 손가락질 하게 되어서다. 거의 매 기수 출연자들이 데이트 중 비매너 등으로 도마 위에 오르내리지만 개인적 사과에 그치는 점도 논란거리다. 15기 현숙의 경우 데이트에서 웨딩드레스를 입는 미션을 거부하고 영식과의 데이트에서 지나치게 선을 그어 비매너 논란이 불거졌다. 현숙은 정규 방송 이후 제작진과 영식에게 사과했다. 16기의 경우에도 여러 논란에 휩싸인 영숙, 영자, 영수, 영철 등이 줄줄이 장문의 사과문을 올리고 있다. 출연자 개인이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지만 정작 제작진들의 책임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15기 현숙이 사과할 당시 제작진은 "방송이 핫해질수록 작은 것도 커져 제작진 입장에서 두려움이 있다"며 사과하기도 했지만 사과의 적기를 놓쳤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는 "과도하게 일반인 출연자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제작진도 인지할 것"이라며 "제작진이 보다 책임 있는 자세로 일반인 출연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혼여행도 포기.. god가 눈물 젖은 '잡채'로 일군 기적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지난 9일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엔 이 함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그룹 god의 2만여 팬들은 그룹의 대표곡 '어머님께'(1999)를 다섯 멤버보다 더 크게 불렀다. 관객이 주인공이 된 공연은 KBS2 추석 특집쇼 'ㅇㅁㄷ god'. 이 공연을 뜨겁게 달군 '어머님께'는 god 맏형 박준형의 어린 시절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노래다. 사연은 이랬다. 미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박준형에게 어머니는 어느 날 쿠킹포일에 싸인 잡채를 건넸다. 일하던 어머니가 직장 점심시간에 한국인 동료가 싸 온 잡채를 먹지 않고 따로 챙겨 아들 학교 갔다 오면 먹으라고 내준 음식이었다. "엄마 안 먹어?" 박준형이 이렇게 묻자 그의 어머니는 "잡채 싫어해"라며 아들에게 다시 잡채를 권했다. 아들은 어렸지만 차마 그 잡채를 혼자 먹지 못했다. 박준형이 잡채를 먹지 않고 놔두자 그의 어머니는 이번엔 아들의 학교 점심 도시락에 넣어 줬다. 이 애틋한 모자의 사랑에 찬물을 끼얹은 건 철없는 아이들이었다. "이게 뭐야?" 잡채를 처음 본 미국인 학생들이 박준형을 놀리며 도시락에 침을 뱉었다. 참다못한 박준형은 그 미국인 학생과 다퉜다. 박준형의 어머니는 결국 아들 학교로 불려 왔다. 가수 박진영이 이 얘기를 박준형에게 듣고 쓴 곡이 바로 '어머님께'다. 이 곡을 듣고 울며 집으로 돌아온 가출 청소년도 여럿이었다고 한다. 이 쇼를 연출한 이명섭 PD는 "god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을 법한 이야기를 노래해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었다"며 "손에 닿지 않는 아이돌 같은 느낌이 아니라 동네 형, 오빠 같은 사람들이 인기를 얻고 그 과정을 지켜본 시청자도 용기를 얻고 우리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 god를 섭외했다"고 말했다. 나훈아, 임영웅 그리고 송골매에 이어 god가 KBS 명절 특집쇼의 새 주인공이 된 배경이다. god는 이 공연에서 '프라이데이 나이트'를 비롯해 '거짓말' '관찰'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애수' 등의 히트곡을 연달아 부르며 관객과 뜨겁게 소통했다. god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고생 끝에 데뷔했다. 1990년대 경기 일산의 반지하에서 숙소 생활을 하던 그들은 혈기왕성하던 때 식비가 부족해 집 주변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를 서리해 끼니를 때웠다. 새우깡을 냄비에 물 넣고 소금 풀어서 죽을 해 먹고, 화장실에 온수가 안 나와 걸어서 한 시간 거리의 병원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씻고 나와 데뷔를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산전수전을 겪고 데뷔한 그룹의 추석 특집쇼엔 역경을 딛고 일어선 연인도 초대됐다. 2일 결혼한 한 부부는 신혼여행까지 포기하고 이 공연에 참여했다. 대장암 판정을 받고 3년 동안 투병할 때 남자친구의 옆을 여자친구가 항상 지켜줬고, 그 덕에 올 초 완치돼 웨딩마치를 울린 부부였다. god가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에서 행복을 찾은 분들과 함께 이 쇼를 꾸리고 싶다고 해 사연을 접수해 이뤄진 이벤트였다. 2004년 멤버 윤계상이 팀을 떠나고 2005년 그룹 활동을 중단한 god는 2014년 재결합했다. 오해가 쌓여 불거진 불화, 각기 다른 소속사에 적을 둬 여러 우여곡절을 딛고 재결합 공연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윤계상이 뇌수막염으로 입원했다. 오랜만에 성사되는 공연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기력이 뚝 떨어진 탓이었다. 올해 god 다섯 멤버의 평균 나이는 만으로 45.8세. 어느덧 중년이 된 그들은 춤을 추며 150분여 동안 이뤄진 공연에서 무대를 쉼 없이 누볐다. 이 PD는 "공연 끝나고 멤버들이 모두 똑같이 한 말이 '너무 힘들다' '우리가 언제까지 춤을 출 수 있을지 모르겠다'였다"고 웃으며 "어떤 분이 'god는 팬덤과 추억이 공존하는 유일한 그룹'이라고 했는데 다양한 세대가 편히 즐길 수 있는 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오후 8시 50분 방송.

공황장애, 난독...김신영 "사연 읽는 것도 공개방송도 두려웠다"

2003년 SBS '개그콘테스트'에서 대상을 타 데뷔한 김신영은 20년 동안 서민의 삶을 깊숙이 횡단했다. "불백 하나에 찌개백반, 똑같은 걸로 통일하란 말이야!" "언니가 해초 마사지를 안 하는 이상은~". 카메라가 켜지면 그는 성질 급한 백반집 식당 아주머니나 '닳고 닳은' 목욕탕 세신사로 돌변했다. 관찰을 통한 생생한 인물 재현은 그의 특기였다. "'살아봐라 이런 찌개가 맵겠냐 인생이 맵겠냐'고 하시는데 그런 게 명언이잖아요. 그 말맛에 빠져 일부러 장터 식당을 가는 거죠." 김신영은 '웃찾사' 코너 '행님아'(2004)에서 통통한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아이로 나와 인기를 누렸다. 그 이후 예능프로그램 '무한걸스'에서 다양한 캐릭터 변주로 웃음을 준 그는 그룹 셀럽파이브와 '다비 이모' 등의 '부캐'를 기획해 연달아 흥행시켰다. 데뷔 후 무명 시절 없이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2012년 위기가 찾아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갑자기 숨이 찼다. 그는 꼬박 석 달을 집에만 있었다. 공황장애였다. -왜 마음의 병이 찾아왔을까. "아직도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불안감도 높았고, 완벽주의 성향도 강했다. 우울증은 내일이 안 보일 때, 공황장애는 내일이 겁나는 사람들에게 온다고 하더라. 엘리베이터도 못 탔다. 집에서 칩거했고.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 집에만 있다 보니 그때 생긴 취미가 레고 조립과 블록쌓기다." -라디오 방송도 처음 할 때 고생했다고 들었다. "정선희 선배가 '정오의 희망곡' 할 때 고정 코너를 맡은 홍경민 오빠 대타로 한 달을 맡았다. 사연을 다 읽어야 하는데 못 읽었다. 난독증 같은 게 있었다. 내 얘기는 쉽게 할 수 있는데 정적 가운데 누가 나한테 집중하는 걸 못 견뎠다. '정말 많이 부족하구나' 고민할 때 선희 선배가 '신영아, 너 너무 재밌어. 너무 재밌는데 언니가 50만 원을 빌려줄게. 그냥 줄 수도 있어. 책을 큰 거 있지? 동화책 같은 거 아니면 위인전 같은 거 크게 읽을 수 있겠어? 이걸로 속상해서 술을 먹을 수도 있는데 웬만하면 책을 소리 내서 한번 읽어봐'라고 해줬다. 그렇게 책을 소리 내 읽었다. 인생 목표가 사연 한 번만 제대로 읽어 보자였다. 결국 마지막 주에 제대로 읽었다. '내가 (라디오 방송) 잘리겠구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선희 선배가 다 막아줬더라. '얘는 정말 재밌다' '언젠가 터진다'면서. 스승의 날이 되면 늘 선희 선배한테 간다. 케이크 아니면 카네이션 들고. 선희 선배는 내 설리번(헬렌 켈러의 스승)이다." -그 뒤 유명 연예인 팬미팅 진행을 거의 도맡아 했다. "사연이 있다. 라디오 '심심타파' 공개방송을 처음 하는데 '현타'가 왔다. 대학로에서 몇 년을 코앞에서 관객 얼굴 보고 공연했는데도 너무 부끄럽고, 그냥 내 연기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소통하면서 프로그램 진행을 못 하겠더라.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훨씬 더 내성적이란 걸 그때 알았다. 방송인으로서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자책했다. 그때 어떤 가수한테 "언니 와 줄 수 있어?"라고 팬미팅 진행 제의가 왔다. "나 공짜야"라며 10, 11년을 공짜로 친분 있는 연예인 팬미팅 사회 행사를 뛰었다. 관객과 소통하며 진행하는 걸 몸에 익히기 위해서. 내 부족한 점 때문에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진짜 많이 했다. 어려선 나이트클럽 행사도 많이 했다. 그렇게 사서 고생한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전국노래자랑' 할 때 그래도 큰 탈 없이 시작한 거 같다." -어떻게 이런 역경을 견뎌왔을까. "중학생 때 사람(닐 암스트롱)이 달에 간 걸 처음 알았다. 노력해서 저 달에도 갔는데 지구 안에서 못할 게 뭐가 있을까. 가난한 게 뭐 어때? 우리 부모가 가난한 거지 난 부자일 수도 있잖아. '흙수저'라고들 하지만 난 수저 자체가 없었다. 판잣집 살던 내가 벽돌집 사는 꿈을 이젠 이뤘다. 그 이후 늘 그랬다, 못할 게 뭐 있어라고. 셀럽파이브 준비할 때도 '신영아 이게 될까'라고 주위에서 걱정했다. '아니 못할 게 뭐가 있어?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면 되는 거지. 왜 남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냐고'고 했다." -그 도전의 일환으로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출연한 건가. "(전) 회사에서 박찬욱 감독님 영화가 들어왔다고 하더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코미디언이 영화를? 다 우습게 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박 감독님이 먼저 편견을 깨 줬다. 처음 만났을 때 박 감독님이 '행님아'는 어떻게 나온 거냐고 물었다. 첫 촬영을 "사철성(서현우)이 왼손잡이죠"란 내 대사로 시작했다. 그땐 몰랐는데 나중에 깨달았다. '아, 박해일이 초보인 후배 형사 연수(김신영)한테 (연기) 톤을 맞춰라, 연기 베테랑인 박해일은 충분히 그 톤을 맞춰가며 연기할 수 있는 분이니'. 박 감독님의 이 세심한 배려를 알고 나니 뭉클했다. 가끔 연락한다. '전국노래자랑' 잘 봤다고 하시더라." -득도의 아이콘이 돼 예전의 막무가내 캐릭터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늘 주성치를 꿈꾼다. 시나리오를 쓰고 그 세계관을 펼치고 싶다. 공격수로서의 '매운맛'은 언제든지 준비돼 있다. 지금도 새로운 걸 소속사(씨제스스튜디오)와 준비하고 있다."

문화생활+

문화 기획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