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설 더보기

기고

국민부담 더는 지방재정 세제 개편

대중교통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며 비로소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온전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인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고물가·고금리 상황 속에서 식비, 난방비 등 생활비용 상승으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국민의 삶은 녹록지 않다. 정부는 국민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지방세 관련 제도를 개선해 올해부터 적용한다. 우선 생애 처음으로 주택을 살 때 실거래가 12억 원 이하인 경우 200만 원 한도 내에서 취득세를 전액 면제받는다. 기존 생애최초 주택 취득세 감면 혜택은 부부 합산소득이 연 7,000만 원 이하인 경우에만 받을 수 있었으나, 소득기준을 없애 모든 국민으로 수혜 대상을 확대했다. 또 소득이 일정치 않은 고령자 등을 위해 재산세 납부유예 제도를 도입했다. 만 60세 이상이거나 5년 이상 주택을 보유한 국민 중에 총급여 7,000만 원 또는 종합소득 6,000만 원 이하지만, 재산세가 100만 원을 초과하여 부담이 큰 경우에는 납부 유예신청을 할 수 있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주택 처분 후에 유예된 재산세를 낼 수 있어 세 부담을 덜 수 있다. 기업과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지방세 감면지원도 확대한다. 인구감소지역에 사업장을 설치하는 기업에 대해 취득세를 전액 면제해 주고, 재산세도 5년간 전액 면제해 준다. 사회복지법인과 양로원 등 일부 시설에만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 혜택을 주었던 것을 장애인 복지시설,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등 사회복지시설 전체로 확대해 취약계층에 대해 보다 두텁게 지원을 한다. 아울러 지난 40년간 이어 온 지역개발채권과 도시철도채권의 운용방식도 전면 개선했다. 자동차를 등록하거나, 자치단체와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채권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부분을 고쳤다. 최근 시중금리가 상승하면서 의무 매입한 채권의 낮은 이자율 때문에 국민이 손실을 입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해당 채권의 표면금리를 인상하는 한편, 3월부터는 1,600㏄ 미만 승용차나 2,000만 원 미만 계약에 대해서는 채권 매입 의무를 면제했다. 한편, 지난 22일 정부는 지난해보다 18.61% 하락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했고, 이를 반영해 올해 주택에 대한 재산세 부담을 부동산 가격이 급상승하기 전인 2020년 이전 수준으로 낮출 예정이다. 앞으로도 행정안전부는 자치단체와 협업해 국민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지방재정·세제 분야의 제도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다. 이와 같은 노력이 고물가와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의 고통을 완화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뉴스룸에서

함부로 우리를 일으키지 말라

얼마 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유엔여성기구 호주지부의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해 43호주달러를 기부했다. 원화로 3만7,158원이었다. "휴대용 태양광 스마트폰 충전기를 전기가 부족한 지역에 사는 여성 20명에게 보낼 수 있는 돈"이란 얘기에 마음이 열렸다. 빵도, 옷도 아닌 왜 충전기였을까. 스마트폰에는 생명을 지키고 삶을 개선할 힘이 있다. 폭력과 재해 피해를 신고하고, 최신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고, 차별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인터넷 연결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한 전 세계 성별 비율은 여성이 37%, 남성이 31%였다. 여성 인터넷 이용자는 남성보다 2억5,900만 명 적었고, 여성의 휴대전화 보유율은 남성보다 12% 낮았다. 여성들을 더 적극적으로 인터넷에 연결시키자,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자는 것이 태양광 충전기 기부에 담긴 깊은 뜻이다. 도움은 이처럼 구체적이고 사려 깊어야 한다. 주는 사람의 기분이 아닌 받는 사람의 필요가 우선이어야 하며, 그러려면 섬세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런 도움의 사례가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에세이집 '말의 정의'에 나온다. 오에의 아들은 장애인이다. 집 앞에서 함께 걷기 연습을 하는 중에 아들이 넘어졌다. 누군가 급히 다가오더니 아들을 일으켜 세워 주려 했다. 모르는 사람이 몸을 만지는 것에 아들은 진저리를 냈다. "우리를 내버려 둬 달라"고 오에가 말렸고, 그 누군가는 화를 내며 사라졌다. 다른 누군가는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했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오에에게 내보인 건 믿을 만한 사람을 불러 줄 수 있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아들과 오에는 일어났다. 그 다른 누군가는 끝까지 다가서지 않은 채 미소 지으며 인사한 뒤 떠났다. 둘의 선의는 같았겠으나 결과는 같지 않았다. 오에는 차이를 '주의'와 '절도'에서 찾았다. "불행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만 왕성한 사회에서 나는 주의 깊고 절도 있는 행동으로부터 새로운 인간다움을 찾아냈다.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주의 깊은 눈이 그것을 순화하는 것이다." '타인을 돕는 멋진 나'를 앞세우는 건 자기만족일 뿐이란 말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도움을 권하면서 제힘에 취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책 결정자들이 그런 유혹에 자주 빠진다. 흠뻑 취한 그들이 '구국'과 '국익'을 입에 올리면 더없이 위험해진다. "일할 때 몰아서 일하고 쉴 때 마음껏 쉴 수 있는 자유를 주기 위해" 일주일 60시간 이상의 노동을 허용하겠다고 할 때, "장애인들이 눈비를 맞지 않고 밥 세끼 꼬박꼬박 먹을 수 있도록" 시설에 가두겠다고 할 때, "맞벌이 부부를 지원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구 감소를 막으려고" 월급 100만 원만 주면 되는 외국인 가정부를 합법화하겠다고 할 때, 그들은 선의의 효용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저리를 낸다. "우리를 차라리 내버려 두라"고 따져 보지만 듣지 않고 화부터 내니 답답하다. 그런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오늘의 연재 칼럼 더보기

한국일보 칼럼니스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