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 세상을 보는 균형

"차라리 출근을..." '6일 황금 연휴'가 가시방석인 청년들

2023.09.28 10:00

"연휴에 여행 간다는 친구들 얘기에 박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2년 차 교사 윤서영(25)씨는 올해 추석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려 급하게 항공권을 알아봤다. 하지만 가고 싶었던 베트남 나트랑은 왕복 항공비만 70만 원이었다. 월급이 200만 원을 갓 넘는 새내기 교사가 한 달 벌이의 3분의 1에 가까운 큰돈을 교통비로 쓰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떠올린 '플랜B'는 국내여행. 그러나 이번엔 비싼 숙박비가 발목을 잡았다. 유명 관광지의 어지간한 숙소는 하룻밤 자는 데 40만 원을 달라고 했다. 안 그래도 고물가에 적금까지 해약한 터였다. 결국 추석연휴를 집에서 보내기로 한 윤씨는 "집에서 할 것도 없는데 차라리 출근해 돈이나 벌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6일간의 휴식은 누군가에겐 '황금 연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림의 떡'이다. 치솟는 물가에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젊은이들은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사회초년생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출근을, 취업준비생은 정규직의 좁은 문을 뚫으려 이번에도 힘겹게 명절을 나야 한다. 28일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27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추석연휴 기간 공항 이용객은 121만3,319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출국 인원만 62만4,472명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추석연휴(18만7,205명)의 3배를 훌쩍 넘는다. 다음 달 2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돼 개천절까지 이어지는 엿새 휴식이 완성되면서 명절 해외여행을 택한 이들이 급증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여행에도 사람이 몰리고 있다. 정부가 먼저 추석연휴 기간 귀성객과 관광객 등의 소비를 기반으로 내수경기를 진작하겠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러나 들뜬 명절 분위기는 사회에 막 발을 들였거나, 구직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남의 나라 일이다. 롯데멤버스가 추석 전 소비자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0%가 '집에서 쉬겠다'고 답했다. '고향 방문(46.0%)'을 선택한 응답자보다는 적었지만, ‘여행을 가겠다’는 응답자(22.3%)보다는 많았다. 대학생 장시온(26)씨는 본가에 내려오라는 부모님 성화에도 귀성을 포기했다. 추석맞이 벌초를 지금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았지만, 올해는 취업이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여서다. 장씨는 "취업만 시켜주면 추석에도 기꺼이 출근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즐겁게 이야기꽃을 피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연휴 단기 아르바이트에 지원자가 대거 몰리면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토목기사 자격증 공부에 매진 중인 옥지연(25)씨는 인터넷강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연휴 내내 와인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마트 단기직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옥씨는 "그저 놀고 있을 수만은 없어 물류센터 일일 포장 아르바이트에도 지원해 보려 한다"며 "센터 일용직도 경쟁률이 치열해 걱정"이라고 했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연휴 때 물류센터 단기 일자리가 인센티브가 있다 보니, 귀성을 포기한 청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며 "실제 청년층 지원자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귀띔했다.

직장인 15% '6일 연휴' 못 누린다...“통상임금 150% 추가로 받으세요"

“10월 2일 빨간날이 돼서 좋았는데, 회사에서 연차를 사용하고 쉬라고 합니다.” “빨간날 일을 해도 두 달 연속 개근한 사람만 휴일수당을 준다고 합니다.” 정부가 다음 달 2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며 추석과 개천절이 있는 이번 연휴 시즌은 최장 6일 휴일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휴일을 온전히 쉴 수 없는 직장인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5인 미만 사업장일수록,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직위가 낮을수록 더 쉬기 어려웠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직장인 31.3%는 명절ㆍ공휴일 등 빨간날에 유급으로 자유롭게 쉴 수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직장 규모가 작고 임금을 적게 받을수록 유급휴일로 쉬지 못했다. 정규직은 86%가 빨간날에 유급으로 쉴 수 있었지만, 비정규직은 42.8%만 그럴 수 있었다. 쉬는 날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나타났다. 300인 이상 기업의 노동자는 77.4%가 빨간날을 유급으로 쉴 수 있었지만, 5인 미만 기업의 노동자는 47.3%에 그쳤다. 500만 원 이상을 받는 노동자는 90.3%가 빨간날 유급으로 쉬었는데, 150만 원 미만을 받는 노동자는 31%만 유급으로 쉬었다. 노동조합 가입 여부도 영향을 미쳤다. 노동조합 비조합원(66.2%)은 조합원(86.9%)보다 빨간날 유급휴가를 더 적게 사용했다. 직위에 따른 편차도 나타났다. 실무자ㆍ중간관리자ㆍ상위관리자는 80% 이상이 빨간날을 유급휴일로 쉬었지만 일반 사원급은 50%에 그쳤다. 성별로는 남성(75.4%)이 여성(60%)보다 휴식권을 잘 보장받았다. 업종별로는 건설ㆍ제조ㆍ교육서비스업 종사자의 70% 이상이 빨간날 유급휴일로 쉴 수 있었던 데 비해 도소매업(57.7%), 숙박 및 음식점업(23.2%) 등은 그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번 추석 연휴로 한정하면, 한국경영자총협회의 706개 기업 조사 결과 연휴 기간을 온전히 쉴 수 없는 기업이 14.8%였다. 82.5%가 6일 휴무를 실시하고 2.7%는 7일 이상 휴일을 줬지만, ‘4일 이하 휴무’(11.6%)와 ‘5일 휴무’(3.2%)에 그치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취업정보회사 인크루트가 직장인 927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 14.7%가 임시공휴일에 출근한다고 답했다. 5인 이상 기업은 임시공휴일에 출근하면 휴일근로수당을 지급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크루트 조사 결과 이번 추석에 근무하는 직장인 중 ‘수당’을 받는다고 응답한 경우는 41.9%에 그쳤다. 휴일근로수당을 받지 못하는 응답자가 가장 많은 기업은 △5인 미만 영세기업(69.7%) △중소기업(38.5%)이었다. 직장갑질119는 정부가 지정한 임시공휴일의 경우 ‘일하지 않아도 임금을 받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일을 했다면 통상임금의 150% 수준으로 임금을 받아야 한다. 가령 통상임금 1만 원인 직장인이 다음 달 2일 8시간을 일했다면 12만 원(1만 원×8×1.5)을 받는다. 시급ㆍ일급제 직장인은 유급휴일 임금(유급휴일분)도 그날 정산해 받는 것이므로 위 계산식에 유급휴일분 100%를 추가해 통상임금의 250%를 받아야 한다. 만근을 하지 않았더라도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한다면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정이다. 유급휴일에 ‘연차를 내고 쉬라’는 것도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만일 빨간날 쉬는 조건으로 연차를 차감했다면 임금체불로 노동청에 진정해 연차수당을 받을 수 있다. 1일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일용노동자는 원칙적으로 공휴일과 휴일근로수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형식은 일용직이라도 반복해서 근무한 ‘종속관계’가 있다면 상용노동자(1년 이상 계약)와 같이 유급으로 쉬거나 휴일근로수당을 요구할 수 있다. 직장갑질119 김스롱 노무사는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해 근로기준법 바깥에 서 있는 5인 미만,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근로감독 강화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직장에서의 낮은 지위로 인해 발생하는 휴식권 침해를 근절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부산 돌려차기' 가해자, 이번엔 '보복 협박' 혐의 검찰 송치

귀가하던 여성을 성폭행할 목적으로 무차별 폭행해 징역 20년이 확정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복하겠다는 협박 발언을 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대구지방교정청 특별사법경찰대는 최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 협박)과 모욕 혐의로 가해자 이모씨를 부산지검 서부지청에 송치했다고 29일 밝혔다. 이씨는 앞서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 출소 후 피해자에게 보복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이씨는 구치소 내 가장 무거운 징벌인 30일 독방 감금 조치를 받았다. 특별사법경찰대는 이씨를 추가 조사해 보복 협박과 모욕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해 송치했다. 검찰이 기소하면 이씨는 재소자 신분으로 재판받은 뒤 재판 결과에 따라 형량이 추가될 수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상 보복 협박죄의 법정형은 3년 이하 징역, 300만 원 이하 벌금·구류·과태료다. 모욕죄 법정형은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이씨는 지난해 5월 22일 오전 5시쯤 부산 부산진구에서 귀가하던 피해자를 약 10분간 쫓아간 뒤 오피스텔 공동현관에서 성폭행할 목적으로 폭행했다. 강간 시도가 실패하자 피해자를 살해하려 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로 지난 21일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명절에만 입나요?...반팔 저고리에 레이스 치마 파는 '120년 된 한복집'

"명절이라고 요즘 누가 한복을 입나요?" 추석을 사흘 앞둔 26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1층 한 한복집 직원이 되물었다. 광장시장은 120년 전통을 자랑하는 주단 한복부를 비롯해 수십 개의 한복집이 밀집한 국내 최대 한복 상가다. 한때는 1,000여 개의 한복집이 있었지만 지금은 100여 곳만 남았다. 다가온 명절에도 시장은 한산했다. 비혼과 저출생, 명절 간소화 등의 영향이다. 최근 3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명절' '작은 결혼식'이 자리잡으면서 한복을 찾는 이들은 더 줄었다. 팔리는 한복은 따로 있다. 한복을 명절이 아닌 평소에 입으려고 사는 이들도 생겼다. 광장시장 1층 한복집 통로에는 집집마다 화려한 무늬의 천과 레이스 등으로 지은 원피스 한복, 지퍼를 달아 입기 편하게 만든 치마, 반팔 저고리, 대님(한복 바지 부리를 여미는 끈) 대신 고무줄을 넣은 바지 등 파격적인 디자인의 한복들이 줄줄이 걸려 있다. 한복 장인들은 "일상에서도 편하게 누구나 입을 수 있는 '디자인 한복'으로 전통을 잇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복 장사는 명절 때나 혼수철이 주로 대목이었다. 광장시장 2층에도 예복으로 맞추는 전통 한복집들이 모여 있다. 37년간 가업으로 한복을 판매해 온 이모(59)씨는 "20년 전만 해도 명절 때마다 가족들이 모이니까 한복을 맞춰 입었고, 결혼할 때도 양가 부모와 친인척들이 한복을 하러 왔었다"며 "하지만 요즘은 명절에 다들 해외여행 가고, 결혼할 때도 부부 10쌍 중 8쌍은 한복을 안 입는다"고 달라진 세태를 전했다. 광장시장 2층 터줏대감 진선미주단의 권동희(86)씨는 "60년 가까이 장사하면서 전통 한복이 이렇게까지 낙후한 옷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다"며 "예전엔 한복이 귀해서 못 입었는데, 요즘엔 입을 일이 없어서 안 입는다고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명절·혼수철 특수가 사라지면서 매출도 크게 감소했다. 한 한복집 관계자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에 한복을 입지 않는 분위기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결혼식에서도 폐백과 한복을 모두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며 "특히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70%가량 줄었다"고 했다. 한복 상인들은 변화에 발 맞춰 디자인 한복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에 치마 단을 줄이거나, 순면 등 원단을 바꿔 편안하게 만든 개량 한복 수준을 뛰어넘어 무늬와 패턴, 장식 등 다양한 디자인을 가미한 '디자인 한복'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광장시장에서 디자인 한복을 판매하는 안모(63)씨는 "사람들이 한복이 불편해서 안 입는다고 하니까, 한복 디자인을 현대식으로 바꿔 왔다"며 "처음에는 작은 자수 같은 디자인을 넣었다가, 몇년 전부터는 치마와 저고리가 아니라 아예 원피스나 드레스처럼 과감하게 패턴을 바꾼 한복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복을 찾는 이들도 다양해졌다. 특히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BTS) 등 국내 유명 아이돌그룹이 세계 무대에서 디자인 한복을 입고 주목을 받으면서 외국인 관광객 등도 한복을 찾고 있다. 안씨는 "예전에는 아이와 부부 등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주로 외국인과 젊은 세대들이 한복을 사러 온다"며 "SNS에서 유명인이 입고 화제가 된 한복을 찾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해외여행 가서 입으려고 한복을 사는 경우도 있었다. 한 한복집 대표는 "지난해 70대 노부부가 저희 매장에서 한복을 맞춘 뒤 카타르 월드컵에 응원하러 가셨다"면서 "우연히 TV를 보는데 중계 카메라에 그 분들이 잡힌 걸 보고 깜짝 놀랐지만 한편으론 굉장히 뿌듯했다"고 했다. 한복 대중화가 전통 문화를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10여 년 간 한복집에서 일한 김모(52)씨는 "한복 명칭을 몰라서 저고리 고름을 리본이라고 하는 젊은 손님들도 꽤 있다"면서 "한복을 자주 입고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전통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민족 전통 의상인 한복이 잊혀져, 나중에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가 되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도 "우리가 스스로 전통 의복을 아끼고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며 "설과 추석 명절, 1년에 딱 두 번만이라도 한복을 입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국내외로 우리 문화를 알리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