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다 주는, 푸조나무 칭찬해!

입력
2022.10.24 04:30
20면

편집자주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이 격주 월요일 풀과 나무 이야기를 씁니다. 이 땅의 사라져 가는 식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허 연구원의 초록(草錄)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경남 하동 최참판댁 마을의 푸조나무 고목이 힘차게 가지를 뻗치고 있다. 이하 사진 허태임 작가 제공

경남 하동 최참판댁 마을의 푸조나무 고목이 힘차게 가지를 뻗치고 있다. 이하 사진 허태임 작가 제공

'어라, 팽나무 열매가 왜 이렇게 크고 검지? 그러고 보니 잎은 느티나무 같고···.'

남부지방에서 팽나무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나무를 만나 고개를 갸우뚱했다면 그건 푸조나무다. 팽나무와 같은 혈통의 ‘삼과’에 속하는 나무, 그래서 사는 곳도 살아가는 방식도 사촌지간인 팽나무와 여러모로 닮은 나무, 오래 크게 자라서 팽나무처럼 범접할 수 없는 기품 같은 것이 느껴지는 나무가 푸조나무다.

그나저나 푸조라니, 프랑스산 자동차 생각이 나서 이국적인 느낌마저 드는 그 이름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걸까? ‘포슈’에서 ‘푸조’가 되지 않았을까 나는 짐작해본다. 팽나무와 푸조나무를 구분하지 않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두 종을 아울러 팽나무를 말하는 중국식 한자 포슈(po shuㆍ朴树)라고 불렀을 것이라고 ‘조선식물향명집’(1937년)을 통해 헤아릴 수 있다. 푸조나무를 ‘평나무’, 팽나무를 ‘달주나무’라고 기록해두었기 때문인데, 그 둘을 섞어 불렀으므로 정작 지금의 이름은 그 반대로 평나무가 팽나무에 가깝고 달주나무가 푸조나무에 가깝다.

반듯한 모양의 푸조나무 잎과 열매. 푸조나무 고목이 많은 전남 광양 유당공원에서 사진을 담았다.

반듯한 모양의 푸조나무 잎과 열매. 푸조나무 고목이 많은 전남 광양 유당공원에서 사진을 담았다.


대구 달성 유가읍 용리에 있는 500살이 넘은 푸조나무.

대구 달성 유가읍 용리에 있는 500살이 넘은 푸조나무.

또 다른 해석도 있다. 책 ‘우리 나무 이름사전’을 쓴 박상진 선생님은 ‘포구의 새 나무’란 뜻에서 ‘포구조목(浦口鳥木)’이라고 쓰던 것이 지금의 ‘푸조나무’가 되었다고 말한다. 일본에서도 새를 불러들이는 나무라는 뜻에서 푸조나무를 ‘찌르레기나무(椋の木ㆍ무쿠노키)’라고 부르기 때문에 수긍이 간다. 그런데 실제로 일본에서 푸조나무 열매를 즐겨 먹는 새는 찌르레기보다 개똥지빠귀와 붉은배지빠귀다. 어쨌든 가을부터 겨울까지 푸조나무가 여러 종류의 다양한 새들을 열매로 불러 모으는 건 확실하다.

나는 그 맛을 안다. 특히 다 익은 열매가 늦가을과 초겨울의 매운 찬바람을 거푸 맞고 꾸덕꾸덕 다소 마른 채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가 최고로 맛있다. 건포도 같기도 하고 살구나 감을 말린 것도 같은 그 열매가 새들에게 그렇듯이 내게도 제철 별미다.

중국에서는 잎이 거칠다고 조엽수(糙葉樹)라고 한다. 이 거친 촉감을 알면 아, 팽나무 아니네, 하고 단번에 짚을 수 있다. 푸조나무의 거친 잎을 천연 사포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중국과 일본에 있다. 중국 해안 지방에는 푸조나무를 가로수로 즐겨 심는다. 수형이 멋지고 가지를 넓게 뻗어 짙은 녹음을 만들며 수백 년을 살 수 있고 병충해에 강하다는 이점 덕분이다. 성정이 비슷한 팽나무는 다양한 곤충에게 제 몸을 아낌없이 내어주기 때문에 잎이 성할 날이 없다. 숭숭 구멍이 뚫려 있거나 가장자리가 반쯤 갉아 먹혔거나.

반면에 푸조나무는 곤충의 습격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반듯한 잎을 유지한다. 바닷바람을 잘 견뎌 해안 마을의 방조림과 방풍림에도 제격이고,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듯 푸조나무를 심기도 한다. 천연기념물 제366호 담양관방제림이 그렇게 지금에 이른다. 푸조나무가 식재된 1헥타르(㏊)의 숲이 연간 4.9톤의 산소를 만든다는 국내 연구 결과도 눈에 띈다. 한 사람의 호흡에 필요한 1년간의 산소를 20년생 푸조나무 48그루가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푸조나무의 꽃. 자잘하게 모여 핀 수꽃(A, B), 토끼 귀처럼 쫑긋 암술머리를 낸 암꽃(C~F).

푸조나무의 꽃. 자잘하게 모여 핀 수꽃(A, B), 토끼 귀처럼 쫑긋 암술머리를 낸 암꽃(C~F).

이렇게 멋진 나무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에 치우쳐 자라기 때문일 거다. 달리 말해 온난해지는 미래에는 우리에게 더 익숙한 나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 그걸 예견한 일본은 도쿄를 중심으로 그 이북 지역의 도시 가로수와 공원수로 좋은 미래의 나무로 푸조나무를 지목했다. 지금보다 따뜻했던 5,000~8,500년 전 일본의 활엽수림을 지배했던 나무가 푸조나무였다. 그 먼 과거의 꽃가루를 보존하고 있는 식물화석을 통해 유추했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바닷가 마을 말고 내륙에서 푸조나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지역이 대구다. 대구 달성의 비슬산 자락에는 수령 500살이 넘은 푸조나무 고목이 산다. 고목이 자리한 계곡을 따라가 보면 그 자식 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대구는 과거 사과의 주산지였다. 지금은 강원도 최북단 양구에서 당도 높은 사과를 생산한다. 사과나무 재배 적지가 대구에서 양구로 이동하기까지 3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온난화가 가속 페달을 밟는다면 푸조나무는 더 빨리 북진할 수 있을 것이다.

푸조나무는 노랗게 단풍이 든다. 한반도 남부지방 곳곳에도,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에도, 일본 도쿄의 거리에도 푸조나무 단풍이 근사하게 물들어 가는 중이다.

허태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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