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게 없어" 개시장 오명 벗고 전국 최대 만물시장으로

입력
2022.12.05 04: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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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전통시장]<4>성남 모란민속5일장
평일 6만, 주말 10만… 전국서 몰려들어
성남시, 지난해 장터 통합 브랜드 개발
개고기 가게도 22곳서 10곳으로 줄어
시장 면적 2배로… 기름 특화거리까지

편집자주

지역 경제와 문화를 선도했던 전통시장이 돌아옵니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지역 특색은 살리고 참신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린 전통시장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지난달 29일 성남 중원구 성남동 모란민속 5일장에 점포들이 가득 들어 차 있다. 끝자리가 4일과 9일인 날마다 장이 열리는 모란민속시장은 하루 최대 10만 명이 모여드는 전국 최대 규모의 오일장이다. 성남시 제공

지난달 29일 성남 중원구 성남동 모란민속 5일장에 점포들이 가득 들어 차 있다. 끝자리가 4일과 9일인 날마다 장이 열리는 모란민속시장은 하루 최대 10만 명이 모여드는 전국 최대 규모의 오일장이다. 성남시 제공

“아줌마, 고추 얼마예요.” “싸게 줄 테니까, 많이 사가슈.”

종일 찬바람이 불던 지난달 29일 경기 성남시 중원구 모란민속5일장터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좌판을 편 상인들과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장터는 활력이 넘쳤다.

대도시 한복판에 서는 5일장(끝자리 4·9일에 열림)이지만, 정겨운 분위기는 시골 장터 못지않다. 천막 식당에서 뜨끈한 국수를 먹는 50대 부부, 좌판에 쭈그리고 앉아 산나물을 파는 할머니, 밤과 대추를 투박하게 진열해 놓은 할아버지, 그리고 뻥튀기 파는 아저씨까지, 옛 장터 풍경 그대로였다.

각설이 타령도 들려왔다. 모란장의 명물 엿장수 유영운씨가 이끄는 ‘깜찍이 품바 예술단’이 공연을 선보이자, 금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유씨는 “수도권에선 모란장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이다”고 말했다.

5일장이 열린 지난달 29일 성남 모란민속시장 내 약초 점포에서 고객이 진열된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종구 기자

5일장이 열린 지난달 29일 성남 모란민속시장 내 약초 점포에서 고객이 진열된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이종구 기자


"1990년대 장날이면 주변 상권 휘청"

서민의 삶과 애환이 녹아든 모란민속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의 5일장이다. 평일엔 6만 명, 주말엔 10만 명이 찾을 정도다. 상당수 전통시장이 시나브로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위세가 여전하다. 모란장터에서 30년째 분식집을 운영하는 이모(70)씨는 “1990년대엔 장 서는 날이면 주변 상점들이 휘청거릴 정도로 모란장은 늘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며 “지금은 한풀 꺾였지만, 언젠가는 옛 명성을 찾지 않겠느냐”고 기대를 품었다.

장 서는 날이면 520여 곳의 점포가 좌판을 펼친다. 손바닥만 한 다육식물부터 어른 키보다 큰 농기구까지 없는 게 없는 만물시장이다. 음식장터엔 국밥과 국수, 빈대떡, 호떡 등 50여 개의 점포가 고객들을 맞고 있었다. 특히 한약재와 잡곡은 모란시장을 대표하는 품목이다. 유점수 상인회장은 “품질 좋고 믿을 만하다는 소문이 나서 전국 각지에서 와서 사갈 정도”라고 전했다.

모란시장은 1961년 제대 군인들이 먹고살기 위해 하천을 개간한 뒤 생필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라인 쇼핑이 확대되는 등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도 60년 넘게 위상을 지키고 있는 비결은 지자체와 상인들을 중심으로 변신을 거듭한 탓이다.

5일장이 선 지난달 29일 성남 모란민속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장터에서 음식을 먹고 있다. 이종구 기자

5일장이 선 지난달 29일 성남 모란민속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장터에서 음식을 먹고 있다. 이종구 기자


"60년 넘게 전국 최대 규모 전통시장 자리 지켜"

이날 찾은 모란민속시장은 노후된 여느 5일장터와 달리 잘 정비돼 있었다. 성남시가 2018년 2월 28년간 대원천 하류 복개지 위에 터를 잡은 모란장을 인근 여수공공주택지구 내 공영주차장으로 옮기면서 깔끔하고 넓어졌다. 새 장터는 종전보다 2배 넓어진 2만2,575㎡ 규모로 커졌다. 장이 서지 않는 날엔 공영주차장(600면)으로 쓰인다. 종전 장터에 없었던 고객 화장실과 공연장, 야간 조명탑도 설치됐다. 점포도 종전 5개 품목에서 16개로 세분해 구획을 나눴다. 성남시 관계자는 “고객들이 원하는 품목을 좀더 쉽게 찾아 구매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고 말했다. 용인 수지에서 왔다는 이현지(52)씨는 “예전엔 길이 좁고 사람들에 치여 불편했는데, 지금은 보행로가 넓어져 편안하게 시장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다”고 흡족해했다. 성남시는 지난해 장터 통합브랜드 개발도 완료했다. 새로 만든 통합브랜드는 모란민속장을 알리는 각종 홍보물에 쓰이고 있다.

5일장이 열린 지난달 29일 성남 모란민속시장 입구에 조형물과 시장 관리동이 보인다. 이종구 기자

5일장이 열린 지난달 29일 성남 모란민속시장 입구에 조형물과 시장 관리동이 보인다. 이종구 기자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개 도살 시설 사라져

모란민속시장의 변화 중 가장 큰 성과는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개고기 시장'이라는 이미지 탈색이다. 성남시는 2016년 7월 개식용 반대 여론에 힘입어 ‘개고기 문제 해결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당시 민속5일장 길 건너편 상설 가축시장(매장 면적 2,077㎡)에는 개고기 판매점이 즐비했다. 시는 같은 해 12월 모란가축시장 상인회와 ‘모란시장 환경 정비 업무협약’을 맺고 자진 철거를 본격화했다. 수년 동안 이어진 노력으로 현재는 시장 내 개 전시·도살 관련 시설은 자취를 감췄다. 성남시 관계자는 “개를 철창에 가둬 판매하거나 도살하는 시설은 모두 사라졌다”며 “22개에 달하던 개고기 유통점도 현재 10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민속5일장 위치. 그래픽= 김문중 기자

성남민속5일장 위치. 그래픽= 김문중 기자

얼마 전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5일장 건너편 ‘모란전통기름시장’이 지난달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전국 1호 백년 기름특화거리’로 지정된 것. 백년가게(10개)와 백년소공인(5명)으로 선정된 점포는 내외부 인테리어와 온라인 판로 확대 등의 지원을 정부로부터 받는다. 1960년대 참기름과 들기름을 직접 짜는 기름집들이 모여들면서 형성된 모란시장 기름가게골목에는 32개 점포가 밀집해 있다. 고소한 기름 냄새 풍기는 골목에서 만난 기름집 사장 김윤경(48)씨는 “여기 기름은 품질 좋은 깨를 사용해서 맛이 더 고소하다"며 "점포 대부분이 대를 이어 운영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성남시가 2020년 7월부터 모란민속5일장 주변 3개 상설시장 4만750㎡를 ‘모란 상권진흥구역’으로 지정해 특화거리로 조성해온 게 성과로 이어졌다.

4일 성남 모란시장 길 건너편에 조성된 상설 전통기름시장 내 점포 주인이 고객과 대화하고 있다. 이종구 기자

4일 성남 모란시장 길 건너편에 조성된 상설 전통기름시장 내 점포 주인이 고객과 대화하고 있다. 이종구 기자


성남기름시장, 전국 1호 기름 특화거리 지정

상인회도 고객들에게 한발 더 다가서기 위해 문화 공연을 선보이는 등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2007년 ‘모란 5거리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지난해 4월부터는 ‘모란장 가요제’를 열고 있다. 매달 무대에 오르는 가요제에는 전국에서 참가자가 쇄도해, 2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관람할 정도로 호응이 뜨겁다. 2018년 12월엔 ‘5일장서 산타를 찾아라’ 크리스마스 이벤트도 열렸다.

하지만 편의시설 확충 등 전국 최대 전통시장의 명맥을 잇기 위한 과제도 적지 않다. 유점수 상인회장은 “전용 주차장을 비롯해 시장 상징 조형물 등 고객 편의시설 확충이 시급하다”며 “전통시장의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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