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 노화', 어떻게 늦출 수 있을까?

입력
2023.01.14 02:20
수정
2023.01.1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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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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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을 찾는 환자 가운데 ‘생물학적 나이’보다 몸과 마음이 부쩍 나이든 모습을 보이는 환자가 유난히 나이든 환자 이야기를 듣다보면 삶의 어딘가에 뿌리내린 ‘가속 노화(accelerated aging)’ 현상을 발견할 때가 많다.

몸과 마음의 탄성이 무너져 오랜 시간 잘못된 방향으로 삶이 뿌리내려 노화 속도가 빨라진 가속 노화라는 굴레에 올라탄 환자처럼 노화 연구에서 가속 노화는 ‘숫자 나이’보다 '생물학적 나이'가 유의미하게 많아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우리가 무의식 중에 선택하는 ‘몸이 편한’ 행위들은 노화를 촉진한다.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타고, 걷는 대신 자동차를 타고, 덜 움직이고 많이 누워 있는 당장 편한 행위들이 우리의 신체와 근육을 갉아먹는다.

직접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책을 읽고 산책하는 대신 우리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과 화려한 영상이 주는 자극적인 쾌락은 삶의 조용함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며 정신과 마음을 소리 없이 깎아내린다.

몸을 움직이는 불편 없이 당장의 편함만 추구하는 자세는 노화를 가속화해 몸을 더 빨리 늘게 만든다. 당장은 편하지만, 미래에는 더 오래 아프고 불편을 겪게 된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먹는다는 '파우스트 거래(Faustian bargain)'이 되는 것이다.

안락함이 가져오는 가져오는 가속 노화의 근본적 오류를 이해하고 약간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노년의 삶이 더 편안해질 수 있다. 그 시작은 ‘내재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내재 역량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017년 제시한 개념으로, ‘건강하게’ 나이 드는 것을 나타내는 척도다. 신체ㆍ정신ㆍ사회적 기능 요소를 종합해 가시적인 건강 지표뿐만 아니라 적절한 휴식, 마음 챙김, 인생 목표와 자기 효능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 건강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내재 역량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생물학적 노화를 앞당기는 가속 노화 사이클에 올라타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4가지 기둥'을 튼튼하게 쌓는 것이 그 어떤 항노화 물질보다 효과적이다. 4가지는 1)나에게 중요한 것을 깨닫는 것 2)몸을 움직여 이동성을 유지하는 것 3)마음 건강을 지키는 것 4)건강과 질병을 관리하는 것 등이다.

좋은 식사와 운동의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4가지 기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건강한 생활 습관을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컨대 ‘나에게 중요한 것’이 감각ㆍ육체적 즐거움과 안락함을 더 누리는 것이라면 경박단소(輕薄短小)한 식사나 불편한 신체 활동은 공허한 외침에 그치게 된다. 충분한 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더라도, 잠을 줄여 더 많은 것을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이 나에게 더욱 중요하다면 실천이 어렵다.

하지만 이 4가지 기둥의 개념으로 우리 몸을 바라보면 다른 사실이 나타나게 된다. 잠을 줄이면 판단력과 인지 기능이 떨어져 스트레스는 심해지고 업무 효율은 떨어진다. 나아가 스트레스 호르몬은 우리 뇌로 하여금 즉각적 쾌락을 갈망하게 만든다. 당연히 식사나 신체 활동은 더 헝클어진다.

우리 뇌의 특성을 이해하고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감각적 즐거움을 유의미하게 무한정 늘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나에게 중요한 것’을 조율하는 데 필수적이다.

우리 뇌는 더 자극적이고 즐거운 것을 경험하더라도 점점 즐거움을 축소하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아무리 많은 소유와 쾌락을 가져도 영속적인 만족감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반면 경박단소한 삶을 살게 되면 우리 뇌는 자극이 줄어들더라도 즐거움과 보상의 크기를 다시 늘려준다.

이 개념을 이해하면서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면 그제서야 자연스레 이동성과 마음 건강이 개선되고,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생활 습관이 회복되며 노화 속도가 더뎌지고 만성질환도 예방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많은 생활 습관에 대한 교육 자료는 가장 기초가 되는 ‘나에게 중요한 것’을 알려주지 않고, 4가지 기둥이 연결돼 있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식사ㆍ운동법에 대한 전술적인 정보는 많지만, 삶을 어떻게 조율하는지에 대한 전략을 이야기하는 이가 드물어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생활 습관을 가지기 어려웠고 작심삼일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생활 습관을 쉽고 자연스럽게 개선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이 4가지 기둥의 연결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급격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나이 든다는 것은 노령의 나를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해진다는 얘기지만 그 ‘누군가’를 찾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질병과 노쇠 때문에 돌봄이 필요한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 그렇게 해서 우리 몸과 정신의 ‘가속 노화’를 최대한 늦추는 것만이 우리 미래를 보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돌봄이 필요한 기간을 단축하려면 젊을 때부터 내재 역량을 키워야 한다. 내게 중요한 것들, 이동성ㆍ마음 건강ㆍ건강과 질병이라는 4가지 기둥이 균형을 이룰 때 내재 역량은 강화되고 지켜질 수 있다.

노화는 예금의 복리 이자처럼 우리 몸을 변화시킨다. 노화의 복리 효과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아주 큰 변화를 가져온다. 일찌감치 찾아오는 치매, 신체 노쇠와 이에 따른 장애 등이 그 결과다.

내재 역량을 관리하기 위한 노력은 가급적 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 그리고 일찍 시작하는 것만큼 오래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다. 이미 숫자 나이가 많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다.

노인 의학 진료와 연구를 해 보면, 80대 어르신도 몇 달간의 노력만 했을 뿐인데도 기능이 상당히 개선되는 경우가 흔하다. 늘 지금이 가장 이른 때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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