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정치는 못 믿어도 과학은 믿지 않을까?

입력
2023.02.15 00:00
27면
서울광장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연합뉴스

서울광장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와 가장 유사한 사례는 2010년 7월 24일 독일 뒤스부르크(Duisburg)시에서 벌어진 러브 댄스 축제 사고인 것 같다. 테크노 댄스로 1989년 이후 매년 개최되던 것으로 유럽 젊은이들의 폭발적 인기를 끄는 축제였다. 그해는 뒤스부르크시가 유럽연합(EU)이 선정한 '방문도시'인지라, 홍보를 위해 행사 유치를 늦게 결정한 시 당국 책임도 있었다. 수용인원 25만 명의 임시 야외공연장을 만들었는데, 공연장의 유일한 접근로로서 터널을 지나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3,200명의 경찰을 배치하고 안전사고에 대비했다. 예상외로 1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인파가 몰렸고. 터널 내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21명 사망, 652명 부상이라는 참사가 되었다. 과학기술강국 독일의 체면을 구기는 참사였다.

행사 주최 측은 다음 날인 7월 25일, 이 축제를 영구히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참사의 처리과정은 독일답게 매우 느리고 무거웠다. 경찰이 축제 주최 측을 치밀하게 조사하고, 10년간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10년 후인 2020년에야 종결되었다. 법원 판결은 누구도 사고의 직접 원인이었다는 증거가 없어서 무죄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비디오 자료 등 여러 자료를 종합하여 나온 판단의 근거는 학술지 논문에도 상세히 나와 있어 누구나 볼 수 있다.(Helbing, D., Mukerji, P. Crowd disasters as systemic failures: analysis of the Love Parade disaster. EPJ Data Sci. 1, 7 (2012). https://doi.org/10.1140/epjds7)

세월호 때도 그렇고 이태원 참사도 우리는 어떻게 일어났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학자들이 연구를 하려고 해도 자료 접근도 어렵다. 정부조사도, 국정조사도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치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오늘날 이 문제를 진지하게 푸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행정적 조사(administive enquete)이다. 안전 '관리'라는 차원에서 행정기관이 적시에 적절한 일을 했느냐의 문제를 따져 봐야 한다. 예방적 조치, 사고수습의 단계의 조치, 사후 조치 등이 적절했는지 면밀히 분석되어야 한다. '관리'는 사고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라기보다는 사고 가능성을 높이는 간접적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둘째, 과학적 조사(scientific enquete)이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물리, 화학, 공학적으로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사고를 일으킨 직접 원인이다. 뒤스부르크 사고도 터널 내 계단에서 누가 밀어서 희생자가 커졌는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서 각종 증거로 아니라는 결론을 냈다.

한두 명도 아니고 159명의 귀한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의 과학적 원인을 모른다. 대형참사의 경우,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면서도 관련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논란을 피하는 방법일 것이다. 새 위원회는 뒤스부르크 사고 처리가 10년이 걸렸듯이 조급하게 하지 말고 행정적, 과학적 증거를 기반으로 직·간접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에 명예를 걸어야 한다. 이것이 추후 다른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길이다. 상식으로 원인을 추측하는 정도에 머물면, 불신이 증폭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우리 국민은 정치는 못 믿어도 과학은 믿을 것이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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