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울리는 기업의 노동시장 반칙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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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0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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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공정거래위원회 과장 시절이다. 경쟁 학원이 자신의 일타 강사를 부당하게 스카우트하였다는 유명 학원의 신고를 받았다. 계약기간이 반쯤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훨씬 많은 연봉을 제시하고 위약금까지 물어주면서 스카우트했으니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주장하였다. 2022년에는 조선 4사가 통상 보수 이상의 과다한 이익 제공을 미끼로 자신들의 핵심 기술 인력을 빼 간다고 경쟁 조선 3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는 뉴스를 접하였다.

두 사례를 거꾸로 재구성해 보자. 학원들과 조선사들이 강사나 직원과 고용계약을 체결할 때 이직과 창업을 금지하는 조항을 두거나, 경쟁자의 강사나 직원을 스카우트하지 않거나 임금 상한을 설정하기로 합의한다면 괜찮을까. 실제 사례와 재구성 사례 중 어떤 경우가 노동시장과 근로자에게 더 나쁠까. 기업들은 더 나은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노동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경쟁자보다 더 높은 임금과 더 좋은 근로조건을 제시해야 더 나은 직원을 채용할 수 있다. 구직자들은 임금이 더 높고 근로조건이 더 좋은 직장을 선택하려고 하며, 직원들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직장으로 이직하거나 창업을 하고 싶어 한다.

기업들은 때로는 경쟁사의 직원을 스카우트하지 않기로 하거나 특정 기술을 가진 근로자의 임금에 상한을 정하는 합의를 하기도 한다. 스카우트 금지합의(No-Poaching Agreement)가 전자이고 임금 고정합의(Wage-Fixing Agreement)는 후자에 해당한다. 고용계약서에 직원들의 경쟁사로의 이직을 금지하거나 창업을 제한하는 경업금지조항(Non-compete Clause)을 두기도 한다. 이런 경쟁제한행위로 인해 직업선택과 이직의 자유가 제한되고 창업 의지도 좌절된다. 잠재 경쟁자는 새로운 사업을 하고 싶어도 채용이 어려워 시장진입을 포기하기도 한다. 노동시장에서 기업들의 담합과 불공정행위로 인해 시장의 효율적 작동이 저해되고 근로자의 권익이 침해되는 대표적 사례다.

이런 이유로 미국 경쟁당국은 노동시장의 경쟁제한행위에 대하여 법 집행을 강화하고 있다. 미 법무부 반독점국은 2016년 10월 스카우트 금지합의와 임금 고정합의를 형벌로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후 철도회사 직원, 의대 교수, 패스트푸드 가맹점 종사자 등 근로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노동시장의 경쟁제한행위를 적발하여 처벌하였다. 올 1월 4일 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직원들의 경쟁사로의 이직을 제한하거나 경쟁 업종 창업을 제한하는 3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고용계약서의 경업금지조항 때문에 직원들이 더 낮은 임금과 더 불리한 근로조건을 감수해야 하고, 새로 진입하려거나 기존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이 직원을 구하지 못하여 사업을 접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유다. 다음 날 FTC는 고용계약서에 부당한 경업금지조항을 두지 못하도록 새로운 규칙 제정안을 발표하였다. 규칙 시행으로 매년 3,000만 명 근로자들의 수입이 3,000억 달러(약 380조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스카우트 금지합의·임금 고정합의·경업금지조항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제라도 노동시장에서의 반칙행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 경쟁당국이 그랬던 것처럼 법 집행 의지라도 천명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형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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