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 예금 전액 보증"…미국, '은행대란 불길' 일단 잡았다

입력
2023.03.13 16:21
수정
2023.03.13 22:23
1면
구독

미 재무부·연준, SVB 예금 25만 달러 이상도 보증
은행 유동성 지원 기금 조성...세금 투입은 막아
뉴욕 가상화폐 전문 시그니처은행 파산 등 여진도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실리콘밸리은행 본부에서 직원들이 문 닫힌 은행의 공고문을 읽고 있다. 산타클라라=AFP 연합뉴스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실리콘밸리은행 본부에서 직원들이 문 닫힌 은행의 공고문을 읽고 있다. 산타클라라=AFP 연합뉴스

미국 서부 스타트업(신생 기업)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틀 만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소방수로 나섰다. 미 재무부,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는 12일(현지시간) 공동성명을 내고 SVB 고객의 예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하겠다고 발표했다. 예금이 묶였던 스타트업의 숨통이 트이면서 줄도산 우려 등 급한 불은 껐다. 하지만 중소 규모 은행 파산이 잇따르는 상황이라 안심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많다.

미 금융당국 "보험 한도 초과 예금도 보전"

미 금융당국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미국) 은행 체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강화해 미국 경제를 보호하는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예금자들은 월요일(13일)부터 그들의 모든 돈(예금)에 접근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 총예금이 1,754억 달러(약 232조 원)에 달했던 SVB는 미국 내 16위 규모 은행이었다. 그러나 재정 위기가 드러난 지 이틀 만인 10일 전격적으로 파산했고, 예금 보장 상한액(25만 달러·약 3억2,600만 원)까지만 인출이 가능해 이보다 많은 금액을 예금한 은행 고객 대부분(96%)이 예금을 동결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스타트업 경영난과 은행권 연쇄 파장이 우려되자 미 금융당국이 SVB 예금주의 예금을 전액 보전하기로 한 것이다. ‘특정 은행의 파산이 광범위한 금융권 리스크를 초래하면 보험 한도를 초과한 예금도 보호할 수 있다’는 연방예금보험법 조항이 적용됐다. 스타트업 연쇄 도산과 금융권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됐다. 재원도 은행업계가 낸 수수료로 조성된 예금보험기금을 활용해 미국 납세자 혈세 낭비 논란도 차단했다.

제롬 파월(왼쪽)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해 10월 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재무부 금융안정감독위원회 회의에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제롬 파월(왼쪽)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해 10월 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재무부 금융안정감독위원회 회의에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연준은 또 은행 유동성 지원을 위해 새로운 기금 ‘BTFP’를 조성하고,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 등 담보를 내놓는 금융기관에 1년간 자금을 대출하기로 했다. 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이 갑작스러운 유동성 위기로 무너지는 일을 막기 위한 조치다. 재무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 조치는 은행 주주나 임원이 아니라 은행 붕괴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도 이날 미 CBS에 출연, “한 은행에 있는 문제가 건전한 다른 은행에 전염되지 않도록 보장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다만 SVB 주주 및 무담보 채권자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고 SVB 경영진도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바이든 "난장판 책임자 책임 묻겠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인과 미국 기업은 필요한 때 자신의 예금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며 “이 난장판 책임자에게 온전히 책임을 묻고 대형 은행에 대한 우리의 감독ㆍ규제 강화 노력을 계속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굳게 약속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대책으로 납세자의 비용이 위험에 노출되는 일은 막았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13일 기자회견에서도 "미국인들은 우리 은행 시스템이 안전하다고 안심해도 된다"며 "이런 은행 파산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의회와 금융 당국에 은행 관련 규제를 강화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6조9,000억 달러 규모의 2024 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필라델피아=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6조9,000억 달러 규모의 2024 회계연도 예산안을 발표하고 있다. 필라델피아=AP 연합뉴스

하지만 뉴욕주(州) 금융당국이 이날 가상화폐 전문 은행인 시그니처은행 폐쇄를 결정하고, 실리콘밸리 인근 중소 은행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 발생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여진도 이어지고 있다. 시그니처은행은 최근 암호화폐 시장 불황으로 자금난을 겪었으며 최근 일주일 간 주가가 약 35% 떨어지면서 '제2의 SVB'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샀다. 이에 연쇄 부실 사태를 막기 위해 선제적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미 금융당국은 시그니처은행의 예금도 전액 보장하기로 하며 진화에 나섰다. 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 예금 2억4,000만 달러도 시그니처은행에 물려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은행 체계는 상위 5개 기관이 거의 13조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매우 집중돼 있다”며 “SVB와 비슷한 규모의 다른 은행들이 재정난을 겪더라도 전반적인 금융 시스템은 계속해서 작동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SVB 파산에도 불구하고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광범위한 금융망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정재호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