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된 정치 실패, 팬덤 탓으로 돌리는 것은 기만"

"누적된 정치 실패, 팬덤 탓으로 돌리는 것은 기만"

입력
2023.03.21 14:43
수정
2023.03.21 16: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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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 정치'라는 낙인,
팬덤 정치 비판하는 주류 담론에 반박
"팬덤 정치는 정당 정치 실패에서 비롯"
"팬덤 정치 향한 건전한 비판은 필요"

팬덤 정치라는 낙인ㆍ조은혜 지음ㆍ오월의봄 발행ㆍ216쪽ㆍ1만6,000원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의 화력은 거셌다. 이들은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박근혜계와 갈등하던 이명박계 의원들을 골라 조직적 낙선 운동을 벌였다. 실제 일부가 선거에서 떨어졌다.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서는 박사모를 겁내 ‘주이야박’(낮에는 이명박을, 밤에는 박근혜를 따른다)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2016년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반대’를 외친 것도 박사모였다.

정치인을 향한 열광적 지지, ‘팬덤 정치’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는 ‘문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는 ‘개딸’이 따라다녔다. ‘분별력 없는 지지자들이 몰려다니며 정치를 망친다’는 게 팬덤 정치를 바라보는 주류 담론이다. 팬덤 정치만 사라지면 만연한 정치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정말일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자들로 구성된 더불어수박깨기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3일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 반란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을 겨냥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이 수박은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뜻이다.뉴시스

‘팬덤 정치라는 낙인’(오월의봄 발행)의 저자인 사회학 연구자 조은혜씨는 “아니다”고 단언한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팬덤 정치는 정당 정치가 실패한 ‘결과’이지 정당 정치 실패의 ‘원인’이 아니다”며 “누적된 정치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시민에게만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기만적”이라고 했다.

팬덤 정치라는 용어부터 편견이 깔렸다. 여기에는 대중문화 팬덤이 형성되던 초기 소녀 팬을 비하하던 여성 혐오적 시선이 담겼다.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을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팬’으로 등치 시키는 것은 결국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진단으로 귀결된다. 그렇게 되면 팬덤 정치, 즉 ‘인물 지지 정치’의 핵심인 정치ㆍ정당 불신이라는 근본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거대 양당을 향한 ‘불신’이 인물 지지 정치의 핵심이다. 의회가 국민을 대변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시민들이 직접 신뢰할 만한 정치인을 찾아 나선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조씨는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이들이 인물 지지 정치를 ‘사회를 변화시킬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지지자들은 ‘맹목적 빠’가 아니라 ‘적극적 정치 주체’이다

2016년 12월 서울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 사거리에서 박사모를 비롯한 보수 단체 회원 및 시민 1만여 명이 모여 “대통령 탄핵 반대, 국회 해산”을 외치며 맞불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이뿐만이 아니다. 검찰ㆍ거대언론ㆍ기득권 세력은 사회 변화를 방해하며, 심지어 정치인을 향한 응징을 꾀하고 있다. “시민들은 정의를 상징하는 인물을 사회적 탄압이나 정치적 타살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사회를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해당 인물에 절대적 힘을 부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게 조씨의 분석이다.

물론 인물 지지 정치에도 그늘은 있다. 이견이나 반대 의견에 공격적으로 반응한다는 점에서 반민주주의적이다. 정치인들이 지지자들의 눈치만 볼 때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씨도 “인물 지지 정치가 수행되는 과정에서 건전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팬덤 정치’ 프레임으로 교묘히 은폐된 정치 실패의 근본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는 게 그의 강조점이다. “어떤 정치인과 정당도 지금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인물 지지 정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노력뿐 아니라 정당을 포함한 전반적 정치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정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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