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가 아니어도 외롭지 않게... 자폐인 잇는 착한 플랫폼

우영우가 아니어도 외롭지 않게... 자폐인 잇는 착한 플랫폼

입력
2023.04.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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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최고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판타지에 가깝단 평가가 많았다. 자폐스펙트럼 장애인 중 우영우처럼 천재적인 지능을 가진 이들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영우의 장애를 이해하고 우호적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기까지하는 정명석 같은 직장상사는 유니콘처럼 더 드물기 때문이다. 학창시절부터 우영우의 단짝친구였던 동그라미나, 우영우에게 '봄날의 햇살'처럼 따듯한 동료 최수연과 같은 인물도 현실에선 흔하지 않다. 외로운 우영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란 얘기다.


[곧, 유니콘] 이혜련 어센트오티즘 대표

"만약 친구를 사귀고 싶다면 얼굴을 보고 말을 걸거나 메시지를 보내서 관계를 시작하는 게 비장애인들에게는 자연스럽잖아요. 자폐인들은 그렇지 않아요. 친해지고 싶다는 걸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지, 응답이 오면 거기엔 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체득하지 못하거든요." 상대방이 듣고 싶어하는지는 생각하지 않고 고래에 관한 이야기를 장시간 풀어놓는 우영우처럼, 특정 관심사에 집착하는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자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그래서 상호작용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대체로 선생님이 하나하나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식이다. 스타트업 '어센트오티즘'(Ascent Autism)의 이혜련(42) 대표는 이런 방식엔 한계가 있다고 봤다.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도 선생님은 어려운 존재잖아요. 선생님에게 배우기만 할 게 아니라 친구와 함께 놀 듯이 연습도 해볼 수 있다면 당연히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그가 2020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어센트오티즘은 지적 능력, 중증도, 연령, 관심사 등이 비슷한 자폐인들을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한 그룹은 5명 안팎으로 이뤄지고, 한 시간 동안 화상으로 만나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익힌다. 30분 동안은 자폐 치료 전문가가 소통 방법을 알려주고 나머지 30분 동안 실제로 해보는 식이다.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지 이제 2년 3개월 정도 지났지만 어센트오티즘은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이런 서비스에 대한 갈증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일 것이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들의 고민 중 하나는 자녀에게 친구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어센트오티즘은 홈페이지에 "당신의 자녀가 평생 친구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서비스 성격을 소개하고 있다. 어센트오티즘 홈페이지 캡처



#1. 선한 영향력

창업 동기가 된 오랜 꿈

이 대표는 한국에서 신경과학 석·박사 학위를 따고 미국 스탠포드대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자폐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박사과정 후반기 때부터다.

그러나 처음 자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보다도 훨씬 전이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서 종종 발달장애인 관련 기관에 봉사를 갔어요. 어린 마음에 '왜 이 친구는 나랑 다를까? 왜 부모님하고 같이 안 살고 여기 살까?' 궁금해 했었는데 커가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죠." 비장애인인 자신과의 차이는 뇌에서부터 시작됐고, 그런 '다름' 때문에 부모가 양육을 포기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손에 잡히지 않았던 꿈은 2017년 첫 번째 스타트업을 공동 창업하면서 보다 가까워졌다. 암에 걸린 반려견에게 적합한 항암제를 찾아주는 회사 '임프리메드'였다. "연구원 마칠 때까지 평생 공부만 하다가 처음 해 본 일이었는데 저한테 잘 맞더라고요. 스타트업에선 내가 중심이 돼서 일을 할 수 있고, 특히 내가 한 일이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2. 미국

자폐를 감기처럼 받아들이는 나라

그렇게 3년 여를 신나게 일하고, 회사가 어느정도 안정 궤도에 들었을 때 나와 어센트오티즘을 설립했다. 미국에서 시작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시장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미국 내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은 무려 700만 명 정도. 한국의 경우 공식 등록된 발달 장애인은 25만 명 정도다.

자폐인 수가 많아서만은 아니었다. 자폐인을 위한 서비스가 보다 쉽게 뿌리내릴 수 있는 환경이란 점도 고려했다. "미국은 자폐를 감기처럼 보편적인 질병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요. 그래서 모든 주에 행동치료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죠. 다양성이 큰 나라여서 자폐인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도 덜 하고요."

자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다보니 고학력, 고연봉의 성인 환자들도 스스럼 없이 어센트오티즘의 문을 두드린다고 한다. "이용자들 중엔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들도 적지 않아요. 성인이라고 해서 모두 상호작용에 능한 건 아니니까요."

최근 실리콘밸리 한 카페에서 만난 스타트업 '어센트오티즘'의 이혜련 대표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어센트오티즘은 자폐인들을 연결해 상호작용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을 운영한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3. 소통

모든 사람의 건강한 소통을 돕는 플랫폼을 꿈꾼다


어센트오티즘 이용자들은 화상으로 서로를 만난다. 대면 활동이 비대면보다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지만, 이 대표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자폐스펙트럼은 '스펙트럼'(범위)이란 말이 붙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중증도나 증상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에요. 고기능 자폐인은 고기능 자폐인끼리, 게임을 좋아하는 자폐인은 그들끼리 연결해서 최대한 소통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온라인이 아니면 그만큼 풀이 좁아져서 그룹을 만드는 게 어려워요." 온라인으로 만나면 부모 등 다른 사람이 이동을 도와줄 필요도 없고, 데이터를 쌓고 분석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플랫폼을 이용하려면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은 중·고기능 자폐인들의 비중이 아무래도 커요. 그렇지만 장기적으로는 주로 지능지수(IQ) 70 이하인 저기능 자폐인들뿐 아니라, 자폐스펙트럼 장애는 아니지만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비장애인들까지 모두 연결하는 게 목표입니다." 누구든 소통이 서툴다는 이유로 외롭지 않도록 말이다.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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