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부터 엉망진창" 권경애가 망친 학폭 소송, 엄마는 법원 판결에도 울었다

입력
2023.04.06 18:2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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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불출석에 소송 취하... 7년 싸움 물거품
어머니 "1심 때부터 진행 논의 거의 없어 답답"
"이전 사건에 짓눌렸다? 변호사다운 변명인가"
"개인 일탈로 치부 안돼... 사건 자체에 관심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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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부터 엉망진창이었어요. 왜 우리가 학교폭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말하고자 항소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가 자신 없는 모습으로 상황 탓만 하더니, 이렇게 사건을 망칠 수 있는 건가요."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벌인 7년 소송의 결말은 허무했다. 고교 재학 중 따돌림을 견디다 숨진 박주원양의 어머니 이기철씨는 2016년 딸의 중·고교 동창인 가해자 학부모들과 학교법인, 서울시교육청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이씨를 대리한 권경애 변호사가 항소심 재판에 세 차례 연속 출석하지 않아 소송이 자동 취하됐고, 이씨는 이 사실을 4개월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관련기사: 7년 끈 학폭 재판 3회나 불출석해 패소한 변호사... 유족 "억장 무너져")

유족은 되레 피고들이 청구할 거액의 소송비용을 감당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황당한 사연이 뒤늦게 알려지자 사건을 수임한 권 변호사에 대한 비판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씨는 6일 한국일보 통화에서 "권 변호사가 출석할 수 없는 사정을 왜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사건에 주목하지 않고 (권 변호사의 정치 성향을 고려한) 진영논리로 변호사 개인만 비난하는 상황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어려움 각오했던 소송... "해보겠다" 말에 맡겼는데

딸을 위한 이씨의 소송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고교 진학 후 당한 따돌림이 중학생 시절 사이버 학교폭력 트라우마를 자극했고, 결국 딸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렸다"는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자신이 없다"며 사건을 맡지 않으려고 했지만, 권 변호사는 유일하게 "해보겠다"고 나섰다.

권 변호사는 그러나 첫 기일부터 재판에 출석 의사를 밝힌 이씨에게 "민사소송이니 알아서 하겠다"며 별도 일정을 안내하지 않았다. 딸의 친구들을 증인으로 요청해도 재판부가 받아들여주지 않자 이씨의 답답함은 더욱 커져 갔다. 이씨는 "왜 증인 채택이 안 되는지 변호사에게 설명도 듣지 못했고, 텔레그램으로 상대쪽 의견서를 전달받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1심 재판에도 두 차례나 출석하지 않았다. 이런 사실조차 이씨는 항소심 재판이 취하됐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다른 변호사를 통해 듣게 됐다. 이씨는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소송진행 상황을 소소히 알려주지도 않았다"며 "1심 판결이 나오고 '항소해야 한다'고 말하니 그제야 약속을 잡고 잠깐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항소 쟁점 논의했지만, 출석은커녕 자료 제출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청사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청사

1심 법원은 "사망과 괴롭힘 사이의 인과관계가 부족하다"며 이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변론으로 일관한 피고 한 명에 대해서만 자백으로 간주해 5억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어렸을 때 당한 폭력이 얼마나 영혼을 박살내고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지 말해왔는데, 재판부는 인과관계를 간단히 부정해버렸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씨에 따르면 권 변호사는 1심 판결 뒤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들 의견을 제출해 트라우마 관련성을 입증해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얼마 뒤 "아무도 해주겠다는 사람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1심에서 유일하게 패소한 피고가 2심에서 다투기 시작하면 5억 원 배상마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컸지만, 권 변호사가 이씨 모르게 세 차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 소송이 자동 취하될 때까지 재판부에는 아무런 자료도 제출되지 않았다.

권 변호사는 패소 확정 뒤 4개월이 지난 지난달에서야 "병원에 두 차례 입원했고, 판사가 잘못된 정보를 알려줬다"고 주장하면서 소송 취하 사실을 털어놨다. 그러나 권 변호사에 대한 이씨의 손해배상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재판 일정은 보통 온라인 사건검색으로 실시간 확인한다"며 "감당하기 힘든 다른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권 변호사에게 '새끼 잃은 어미 앞에서 왜 당신이 힘든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느냐'고 물어보니, '이전 사건에 짓눌렸다'고 하더라"며 "내가 힘들 때 변호사가 길을 안내해줘야지, 사건에 짓눌리는 게 변호사냐"고 울분을 토했다.

"진영논리로 변호사 '개인 일탈' 만들지 말아달라"

이씨는 "권 변호사 잘못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평소 권 변호사가 '조국 흑서'를 공동저술하는 등 정치적 의견을 피력해온 탓에 진영논리가 강조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이씨는 "변호사들의 불성실한 사건 수임은 고질적 문제이고, 이 사건이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되면 피해자에겐 남는 게 없다"며 "학교폭력 소송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힘든 구도에서 진행되는지 주목해주길 호소한다"고 말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학폭 분야 '1호' 인증을 받은 노윤호 변호사는 "가해자들이 형사적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 바깥에 얘기하고 다니는 경우가 있어 피해자들은 더욱 마음 아파한다"며 "마지막 법적 수단이 손해배상 소송인데 인과관계 입증 요건이 엄격하다"고 설명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학폭 트라우마에 대한 유의미한 문제제기를 하려는 소송인데, 패소하더라도 치열한 다툼 속에서 졌어야 한다"며 "소송 취지를 생각하면 변호사 개인보다도 사법부가 학폭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원 기자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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