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한 움큼 '사주 테라피'

입력
2023.04.15 00:00
22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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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으로 사주를 봤다. 철학관을 찾아간 건 아니고, 사주 공부를 하는 친구가 간단히 풀이해 주었다. 재미 삼아 시작했는데 말한 적 없는 순간들을 제법 정확하게 맞히는 모습에 입이 벌어졌다. 30분이 지났을 무렵, 나는 진지하게 미래를 묻고 있었다. 여러 질문 끝에 희망적인 말들을 몇 가지 들었는데, 놀랍게도 기분이 좋아졌다. 비실비실하던 마음이 든든해진 느낌이랄까.

본래 나는 사주나 신점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돈 주고 듣는 좋은 소리는 들어봐야 믿음직스럽지 못할 게 분명했고 혹 흉한 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괜히 근심을 산 느낌이 들 터였다. 거기에, 내 앞길 정도는 내가 판단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함도 한몫했다. 대학생과 취준생, 사회인으로 신분이 달라지면서도 점을 보러 가는 데는 흥미가 없었다.

다만 앞날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는 해를 거듭할수록 절감했다. 너무 당연하게도 세상은 내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삶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름의 계획 하에 이직했던 회사는 갑자기 사업 계획을 변경해서 날 낭패하게 했고, 누구도 예상 못 했던 코로나는 사는 방식을 바꿔 버렸다. 삶과 일에서 상상도 못한 변수들이 끝없이 튀어나왔다.

이 대혼란한 와중에 고통을 더한 건 궤적을 참고할 삶의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모든 세대는 각자의 숙제를 해결하며 살아내는 중이었고, 그 어떤 세대도 서로 비슷하지 않았다. 지금 같은 직장에 다니는 50대 선배의 70대와 나의 70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 분명했다. 내 앞의 누군가를 보며 내 미래를 그려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반대로 지금 준비하는 것이 과연 나중에 유효할까. 마음이 무거웠다.

길고 어려운 고민 끝에 내가 찾아낸 답은 '차라리 레퍼런스를 찾지 말자'는 것이었다. 어차피 누구와도 똑같이 살 수 없다면, 주변에서 근거를 찾아 모으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배우되 남은 삶에 대한 준비는 결국 내가 내키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야 했다. 그리고 그 동력은 확신이 아니라 믿음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후로는 작은 변화에 흔들리지 않으려 몸에 힘을 주고 버텨 왔다. 그러나 간혹 심신이 힘들 때면 불안감이 어김없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이것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근래의 큰 고민이었는데, 친구가 사주를 봐 주며 '언제부터 잘 풀린다'고 해 준 한마디는 그 어떤 합리적인 전망보다 효율적인 위로였다. 재미있는 일이다. 그 어느 때보다 자기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순간 마음을 달래 준 게 사주 한 토막이라니. 일할 때는 세상 없이 이성적이면서도 사주며 타로를 닳도록 보던 또래들을 갑자기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다들 이 답 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위로 삼아 똑바로 서려고 애쓰고 있었구나.

얼마 전 외국에 가 있는 친구와 간만에 안부를 나눴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외국행을 선택한 친구는 씩씩했지만 불안해했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희망적인 사례를 머릿속으로 뒤적이던 나는 이내 그것들을 다 집어치우고 이렇게 말했다.

"야 걱정 마. 내가 봤는데, 토끼 해에는 용띠가 잘 풀린대."


유정아 작가·'시시한 사람이면 어때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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