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장난감과 사진 하나도 못 치워" 스쿨존 사망 이군 부모 법정서 눈물

입력
2023.05.02 15:2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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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북초 스쿨존 사망사건' 공판
숨진 피해자 부모 직접 피해 진술
"범죄 반복 안 되도록 엄벌해 달라"
검찰, 징역 20년 구형 "위법 중해"
피고인 "평생 속죄... 뺑소니는 아냐"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앞에 스쿨존 사고로 숨진 초등생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메시지가 놓여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후문 앞에 스쿨존 사고로 숨진 초등생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메시지가 놓여 있다. 한국일보 자료 사진

지난해 12월 2일 오후 만취한 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언북초등학교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초등학교 3학년 이모군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고모씨에 대한 공판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최경서) 심리로 열린 2일 오전. 이군의 아버지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법정 안에 들어섰다. 그가 판사 앞에 선 이유는 고씨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기 위해서였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관은 피해자에게 피고인의 처벌에 관한 의견을 진술하도록 할 수 있다.

"음주 뺑소니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난 OO이의 아빠입니다." 이군의 아버지는 입장문의 첫 문장을 읊자마자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뒤이어 절절한 고통이 법정을 가득 메웠다. 이군의 아버지는 "저와 저희 가족은 너무나 큰 절망과 고통 속에 있다"며 "지금이라도 '아빠'라고 외치며 집에 들어올 거 같아 OO이의 책, 장난감, 사진, 침구 하나도 치우지 못하고, 매일 밤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가슴이 메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아버지는 "동생은 OO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상처가 언제 터질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뺑소니는 아니다"라는 고씨 측 주장에 대한 성토도 쏟아졌다. 아버지는 "고씨는 사고 이후 쓰러져 있는 아이를 방치하고 떠났고, 구호 조처도 하지 않고 방관했다. 변명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저희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특히 "아이를 빗물 배수로로 착각했다"는 고씨 주장에 대해서도 "두개골이 파괴될 정도로 밟고 지나갔으면서 도로 면과 높이 차이가 거의 없는 빗물 배수로인 줄 알았다는 변명은 저희를 두 번 죽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군의 아버지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고씨를 엄벌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아버지는 "음주운전은 너무나 큰 범죄이고, 뺑소니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선택이며, 이들이 결합된 어린이보호구역 사망사고는 그 어떤 사고보다 중한 범죄임을 판시해 달라"며 "이 사회에서 다시는 이와 같은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씨는 아버지의 눈물 젖은 호소가 이어지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이군의 어머니는 방청석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징역 20년 구형... "사죄하지만 뺑소니 아냐"

지난해 12월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앞에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앞에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뉴스1

검찰은 고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고씨의 위법성이 매우 중한 데다 이군의 과실도 없는 걸로 확인된다"며 "이군의 유족도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스쿨존 음주사망사고의 경우 최대 징역 23년을 선고할 수 있도록 양형기준을 상향한 것도 고려해 달라고 했다.

고씨 측은 "반성한다"면서도 "뺑소니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고씨가 아이를 쳤다는 사실을 인지한 뒤부터 현장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짧은 점을 고려하면 도주는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고씨는 최후 변론에서 "제 목숨을 빼서라도 아이가 부모님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매일매일 생각한다"며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피해자 유족을 향해 90도로 사과 인사도 했다. 고씨에 대한 선고공판은 31일 열린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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