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로맨스'는 '데이트 앱'을 타고... 중국 노인들의 새 연애 풍속도

입력
2023.05.07 13:45
수정
2023.05.07 14:3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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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랑' 꿈꾸는 노인들로 북적여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 독신 노인들 사이에선 인터넷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이 '새로운 사랑'을 찾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게티이미지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중국 독신 노인들 사이에선 인터넷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이 '새로운 사랑'을 찾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게티이미지

"퇴직금도 좀 있고, 연금도 매달 받습니다."

족히 70세는 돼 보이는 한 남성 노인이 라이브스트

림에 나와 뜬금없이 재력을 과시한다. 컴퓨터 화면 건너편의 할머니는 이 할아버지에게 어디에 사는지, 취미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만하면 만나 볼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할아버지와 연락처를 교환한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포함한 인터넷 데이트 애플리케이션(앱)이 중국 독신 노인들의 '새로운 사랑 찾기'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사례로 제시한 에피소드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에서 '노인 데이트'를 검색하자, 수십 개의 노인 전용 데이트 앱 광고물이 컴퓨터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바이두 화면 캡처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에서 '노인 데이트'를 검색하자, 수십 개의 노인 전용 데이트 앱 광고물이 컴퓨터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바이두 화면 캡처


데이트 앱 회원 1억 명 중 절반이 50세 이상

중국에서 이제 '블라인드 데이트(서로 모르는 남녀가 만나는 일)' 앱은 더 이상 20·30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탓에 '그레이 로맨스'를 꿈꾸는 노인들로도 북적이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에 따르면, 데이트 앱 '페어'의 등록 회원 1억 명 중 절반이 50세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3억1,000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중국 최대 결혼정보회사 바이허는 2019년 '레저 아일랜드'라는 노인 전용 데이트 앱 사업을 시작했고, '노년의 삶'이라는 이름의 데이트 앱도 황혼기를 맞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 노인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바이두에서 '노인 데이트 앱' 검색어를 입력하면, '50대 이상 중·장년 전용'임을 자처하는 데이트 앱만 수십 개에 이르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노인 전용 데이트 앱이라고 해서 다른 데이트 앱을 통한 만남과 크게 다르진 않다. 앱에 접속한 사용자는 사진과 간략한 프로필이 걸린 방들을 살펴본 뒤, 호감이 가는 상대에게 말을 건넨다. 대화 결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다른 방으로 옮겨 가고, 눈이 맞으면 연락처를 교환한다. 이렇게 '오프라인 만남'이 성사되면, 남녀 회원이 호스트(서비스 제공자)에게 소액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고령 인구 급증... 이젠 부끄럽지 않은 '그레이 로맨스'

중·노년층이 중국 데이트 앱 시장의 주요 고객으로 떠오른 건 중국의 급격한 고령화와 무관치 않다. 중국 국가통계국 조사에서 지난해 중국의 65세 이상은 2억1,000만 명으로 집계됐다. 5년 전 1억6,000만 명보다 7,000만 명이나 늘어난 수치다. 중국의 퇴직 연령은 '남성 60세, 여성 55세'(사무직 기준)로,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예측한 2035년 기대 수명(남성 78.1세, 여성 85.1세)과의 격차가 매우 크다. 배우자가 먼저 사망할 경우, 은퇴 후 혼자서 노년을 보내기에는 기나긴 시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운명은 늦지 않았어'라는 제목의 TV쇼도 중국 노인들에게 그레이 로맨스를 향한 열망을 불어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독신으로 살아온 50대 이상 남녀가 등장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건강과 연금 수령액 등을 뽐내며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한다. 프로그램 PD인 빙렁은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예전엔 부끄러움 탓에 '새 이성 친구를 찾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던 중국 노년층이 지금은 세상에 나와 구애하고 있다"며 "더 많은 사람이 더 개방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다는 건 분명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조영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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