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인간' 피해자 대신 가족 합의… 법원 "재판 절차 중단은 위법"

입력
2023.06.15 09:10
수정
2023.06.1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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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반의사불벌죄 본인이 의사표시해야"

광주지방법원 전경.

광주지방법원 전경.

식물인간이 된 피해자 대신 가족이 합의해 재판 절차가 중단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제3형사부(부장 김성흠)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공소 기각됐던 A(61)씨에 대한 원심을 파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의 사건을 다시 광주지법 단독재판부로 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던 이상 반의사불벌죄에 있어 처벌 희망 여부에 관한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소송 능력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아들이 피해자를 대신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원심판결은 법리 오해가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환송한다"고 밝혔다.

A씨는 2021년 4월16일 오후 2시50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한 이면도로에서 1톤 트럭을 운전하다가 행인 B(85)씨를 들이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고로 중상을 입은 B씨는 대학병원 등을 거친 뒤 '난치·불치' 판정을 받았다.

피해자 아들 C씨는 2021년 10월쯤 식물인간이 된 피해자의 성년후견인이 됐다. 1심 재판 과정에서 A씨는 C씨로부터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1억 원을 지급받았다. 가해자의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합의서를 받았다. 1심 재판부는 합의서가 제출되자 해당 혐의가 '반의사불벌죄'(가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 않음)에 해당하는 점을 토대로 공소 기각 선고했다.

검찰은 그러나 '식물인간인 피해자가 어떻게 가해자에 대한 처벌 희망 여부를 표시할 수 있느냐'며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에 원심 선고를 파기했다.


광주= 김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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