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닮은 우리말 '담'

입력
2023.07.22 04:30
22면
경북 안동 하회마을. 이미향 교수 제공

경북 안동 하회마을. 이미향 교수 제공

'벽'을 둘러 '방'을 만든다. 주변 다른 곳과 경계를 긋는 벽의 역할, 바로 벽의 숙명이다. 그래서 벽은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를 빗댄다. '불신의 벽, 자기 한계의 벽, 대립의 벽' 등, 벽은 깨고 싶고 또 깨어야 하는 어떤 대상이다. 벽의 다른 의미는 사람 사이의 단절이다. '벽을 쌓다'는 사귀던 관계를 끊는 일이고, '벽에 부딪치다'는 소통에 장애물을 만난 상태이다. 그런 벽을 허무는 꿈은 모두의 희망이다.

한편, 벽은 고독한 이에게 유일한 지지자이다. 혼자 설 힘조차 없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힘들 때 우리는 벽에 기대어 서는데, 두 손으로 벽을 짚고 서는 것을 '벽을 안다'고 한다. '화가 나서 벽을 안고 돌아누웠다'거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들지 않아 벽을 안고 잠을 청한다'는 등, 벽을 향하여 가까이하는 표현들이 있다.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벽이 보이는 말이다.

방의 주위를 두르는 것이 벽이라면, 집 마당을 둘러막는 것은 '담'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우리말 '담'은 15세기 문헌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 흙, 돌, 벽돌, 싸리나무 등 담을 이룰 재료는 재산과 신분 여하에 따라 다를 것인데, 주위를 두르는 것이니만큼 담도 경계와 구별을 뜻한다. '담을 쌓다, 담을 지다, 담을 두르다' 등이 그러하다. 벽까지 동원하여 '담을 쌓고 벽을 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의좋던 관계를 끊고 서로 철저하게 등지는 삶을 강조한다.

이처럼 벽과 담의 역할은 아주 유사하다. 그런데 '담'은 '벽'과 묘하게 다르다. 한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옥의 담은 마당이 훤히 보일 정도로 야트막하지는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넘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이다. 외국인들과 한옥마을을 돌다 보면 이런 흙벽 담의 쓸모가 무엇인지 묻곤 한다. 골목을 오가는 이웃들이 안부를 살필 수도 있는 한옥 담은 적어도 단절의 아이콘은 아니다. 감나무 가지가 물색없이 옆집 마당으로 뻗기도 하는데, 그 감을 딴 주인이 한 소쿠리 담아 주고받는 장소도 바로 담장 위이다. '무작정 울담을 넘고 들어와 살려 달라고 호소하는데 박정히 내쫓을 수 없었다.'는 소설의 한 구절도 바로 그러한 인간미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담이란 주인 허락 없이 넘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담 구멍을 뚫다'는 바로 도둑질한다는 뜻이다. 적어도 '양심과 도덕이 지켜지는 경계', 그것이 한옥 담의 구실이 아닐까 한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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